2016.2.12(금)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천주교 대전교구 전민동 성당 금요 저녁 7:30 미사
단식으로 자유로워지면 예수님을 더 받아들일 수 있어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오소서 성령님 (교중. 새로 나게 하소서)
요즘 단식이나 금식하는 일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피치 못하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하는 사람, 가난과 갑작스런 경제몰락으로 단식을 하는 사람, 종교와 정신의 건강 위해 단식을 지키는 사람, 투쟁과 호소를 위하여 단식을 지키는 사람, 이처럼 다양한 부류에서 단식을 지키는 사람은 이토록 많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9,14~15)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말씀을 나누며 단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 9,14~15)
단식은 특정한 기간동안 음식과 음료의 섭취를 자발적으로 끊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를 우리는 '절제'와 '나눔'이란 단어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려고 단식과 고행을 했던 중세 시절의 모습도 우리는 살펴볼 수가 있겠습니다. 예전 주엣시절에는 못 먹던 어려움도 있었지만, 예수님의 고통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려고 단식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안 먹고 안 마셔서 단식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보면 요한의 제자들은 그런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안 먹고 안 마시는 것으로 단식한다고 여겨서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옆의 예수님 제자들을 보아하니 단식을 안 지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겼습니다. 요한의 제자들 마음 안에서 증오와 미움이 가득 차면서 남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식이란 첫번째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두번째로 자신을 비우고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통해서 예수님을 더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현대에 와서 우리는 이 두가지의 단식의 의미를 소화해 낼 수 있겠습니까? 즉 왜 단시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단식은 언제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것은 특히 사순시기에 하면 좋습니다. 그 단식은 건강과 풍요로움을 위한 단식이 아닙니다. 그 단식은 보속와 참회의 의미입니다. 바로 신랑을 빼앗기는 사순의 시기에 단식을 지키도록 합시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단식의 의미와 왜 단식을 지켜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 단식을 지켜야 하는지 헤아리는 시간만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그 때를 헤아리는 시간을 자기면 좋겠습니다. 그 헤아리는 시간 안에서 주님께서는 사랑의 음성으로 주님과 우리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더 바라시고 계시니, 조금 더 주님과 함께 더 지내려는 마음과 몸 가짐으로 사순시기를 보내도록 합시다.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끝)
2016.2.12(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저녁 7:30 미사
전민동성당 박종민 프란치스코 보좌신부님 강론
이 기록은 당일 신부님 말씀을 필자가 받아적은 것으로 원래 강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복음 말씀(마태 9,14~15)는 필자가 임의로 삽입한 구절입니다.
'가톨릭노트 > 강론종합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순 시기에 유혹은 더 크게 다가온다 (0) | 2016.02.14 |
---|---|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0) | 2016.02.13 |
오늘 우리는 자선과 단식과 기도로 초대받았습니다. (0) | 2016.02.10 |
우리가 제대로만 살았다면 이미 우리는 세상의 빛이고 답이었다 (0) | 2016.02.07 |
가시밭길이라도,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이면 평화의 길입니다 (0) | 2016.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