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원양어선 광명 87가 남중국해의 망망대해를 지나던 1985년 늦가을의 어느날. 당시 40대 중반이던 전재용 선장이 이끄는 배는 1년 간의 조업을 마치고 부산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114일 오후 5시경, 전재용 선장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바로 그 남중국해 바다에서 그는 베트남 보트피플의 작은 배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애타게 구조를 요청하는 그 보트로서는 광명 87호에 앞서서 수십여척의 선박들이 이미 외면하고 지나쳐버렸던 상황이었습니다.  


1975년 베트남(월남) 공산화를 전후로 수많은 베트남 국민들이 남중국해로 탈출을 시도하였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약 100만명이 조국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해로를 통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 와중에도 당시 베트남 부유층은 홍콩을 경우해서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등지로 빠르게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산층 이하의 경우는 망망대해에서 기약없이 떠다니면서 2,000km를 떠돌아다니면서 보트 안에서 생계를 간신히 유지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해적에게 걸려서 목숨을 잃은 난민의 숫자도 약 5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주변국가들에게도 보트피플은 환영받지 못한 신세였습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보호소를 운영하긴 했어도 적극적으로 이들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나라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부산에도 당시에 베트남 난민보호소(1993년 폐쇄)가 있었지만, 찾아오는 난민 손님을 쫓아내지는 않는 수준의 소극적인 운영이었던 같습니다. 이처럼 보트피플들은 주변국의 냉대와 때론 강제송환 방침 등으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었고, 이러한 방침은 광명 87호 원양어선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원양어선 본사와 관계당국 또한 구조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상황이었던 것이죠.


<사진설명. 남베트남이 베트콩에 의해 공산정권이 된 후 탈출하는 보트피플>


상관하지 말라는 본사의 지시와 양심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 전재용 선장. 배는 이미 스쳐지나서 멀어져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파도에 부서질만한 작은 보트 안에서 굶주리고 지쳐가던 96명의 베트남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그들을 외면하며 수십여척의 선박들이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렇게 보트 안의 베트남인들은 굶주림과 실의에 빠져있었지만, 한가닥 희망으로 선박이 지나칠 때마다 구조를 외치면서 더욱 더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전재용 선장은 말리는 동료선원들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각오로 회항을 지시하고 이들을 구출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남은 열흘이었습니다. 부산항에 입항하까지는 열흘의 기간이 남았지만, 배 안에는 그저 25명 선원이 먹을 식량과 생수 뿐이었습니다. 이 얼마 안되는 양식을 96명의 베트남인들과 함께 나눠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우선 여성과 아이들에게 선원 침실을 내주고 노인과 환자는 선장실에서 치료를 해줍니다. 선원 25명의 열흘치 식량과 생수를 96명과 나눠먹어가면서, 지쳐있는 베트남인들의 불안감을 달래주는 심리적 위로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잡은 참치가 많으니 안심하세요.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하지만 부산항에서 전재용 선장을 기다린 것은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회사는 곧장 해고를 통보하였고 선장의 면허는 정지되었습니다. 게다가 관계당국은 그를 불러다가 가혹한 조사를 받았고, 베트남인들과의 면회는 일체 금지당했습니다. 한 마디로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실업자가 되어버린 그는 다른 일을 찾아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선박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그를 뽑아주는 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난센상의 최종 후보자가 된 전재용 


유엔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난센상 최종 후보자까지 올라온 전재용 님의 이야기입니다. 전재용 선장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정착촌을 건설한 베트남 커뮤니티가 그를 유엔 난센상 후보로 추천한 것입니다. 이들은 19년이 지난 2004년. 전재용의 나이 64세가 되었을 때 오랜 세월의 수소문 끝에 전재용 선장을 찾았고 미국으로 초청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베트남인들은 자신들을 구출해주었던 전재용 선장이 겪은 고난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재용 선장은 부산항에 도착한 즉시 해고통지를 받았고, 당국에 불려가 조사까지 받았던 사실을 알았던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선장의 답장에 적힌 마지막 구절이었답니다.


보트피플을 구조할 때 저의 미래와 경력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96명의 생명을 살린 당시의 선택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고난을 알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선택할 만한 자신만의 안정을 선택하지 않았던 전재용 선장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예수님의 말씀이 겹쳐집니다. 그래서 저는 팔레스티나에서 공생활을 하시던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많은 이들의 배를 불리우고 공동체의 진정한 번영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셨던 것처럼, 만일에 예수님께서 팔레스티나에서 활동하신 게 아니라, 광명 87호 배위에서 공생활을 하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가 잡은 참치가 많으니 안심하세요.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전재용 선장님(74세)


* 참고. 1985년 96명의 난민을 구한 기적같은 이야기는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장호 감독(69)이 차기 작품으로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영화 가제는 <96.5>입니다.





한편 2014년 올해의 '난센상'은 콜롬비아의 여성인권단체 '버터플라이즈'(Butterflies)가 수상했습니다. 이 단체는 강제이주와 성적 학대의 피해자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으며, 불법 무장단체간의 충돌로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 콜롬비아의 산업항구도시 부에나벤투라에서 목숨을 건 헌신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참고. 여성신문 2014-9-12

콜롬비아 여성인권단체 '버터플라이즈', 세계최고 난민영예상 수상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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