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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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변증법이란

미국의 주류 학문은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반면 변증법은 반계몽주의적 사고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르크하이머와 마르쿠제 등은 변증법적 사고의 중요성을 확립하는 환경조성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차원적 인간>의 저술 기획도 그러한 차원에서 논의된 것이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 유대계 독일 철학자 · 사회학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주펜하우젠에서 유대계로 태어난 호르크하이머는 그의 저서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철저히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변증법을 알리는 프로젝트를 미국에서 허하라!


마르쿠제는 이 프로젝트를 3년 연상의 형,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진행하기를 열망했다. 왜냐하면 호르크하이머는 관련 단체의 이사직을 맡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이번 프로젝트에 충분히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이후 1940년대에 이르러 호르크하이머와 3년 연하의 마르쿠제 그리고 마르쿠제보다 5년 연하, 호르크하이머보다는 8년 연하의 아도르노, 이렇게 3인방은 캘리포니아로 연구지를 옮겼다. 그곳에서야 말로 철학 연구에 모든 시간을 온전하게 쏟아부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 독일의 사회학자 · 철학자 ·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체계성을 거부하고 근대 문명에 대해 독자적인 비판을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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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마르쿠제는 워싱턴의 전략정보국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그 후 국무부에서 反파시즘 투쟁에 기여했다. 결국 아도르노가 호르크하이머의 협력자가 되어 변증법에 관한 프로젝트를 완성시켰고, 이 프로젝트는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enment)이라는 저서로 출간되었다. 


일차원적 인간의 발생과 전개


<일차원적 인간>은 마르쿠제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함께 일을 한 1930년대에 전개하기 시작한 헤겔-마르크스 철학 프로젝트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30년대 당대의 비판이론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분석한 최초의 학자들이 되었다. 

  •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와 경제의 새로운 특성 분석

  • 대중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적 역할 비판

  • 새로운 기술방식과 사회통제 형태를 분석

  • 새로운 사회화 방식과 대중사회에서의 개인의 사퇴에 대한 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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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관련, 급진적 사회변화 프로젝트에 대한 노동자계급 통합과 자본주의 안정화에 대한 분석


<일차원적 인간>은 1964년에 발간되었지만, 마르쿠제는 이미 1940년대 초반부터 기술적 합리성이 전체주의적 사회통제와 지배 체계를 어떻게 발생시켰는지를 이미 설명했다. 
  • (예) 1941년 논문 <현대 기술에 대한 사회적 의미>(Some Social Implications of Modern Technology) - 마르쿠제는 이 논문에서 부르주아 혁명기부터 현대기술사회가 발생한 시기까지 개인주의의 역사적 쇠퇴에 대한 개요를 제시


마르쿠제에게 비판적 이성은 개인의 해방과 사회발전을 위한 창의적 원칙이었다. 그러나 현대 산업과 기술적 합리성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개인의 합리성의 기반은 약화되어갔다. 자본주의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 산업사회는 점차 경제-사회기구의 편의성을 요구했고, 증가하는 통치기구와 행정기관에 대한 복종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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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순응기제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행정의 효율성과 권력이 개인을 압도했고, 개인은 초기의 비판적 합리성의 기질을 점차 잃어버리고 (즉, 자율성, 의견차이, 부정의 힘), 그로 인해 "일차원적 사회"와 "일차원적 인간"이 나타난다.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 중에는 프란츠 뉴만(Franz Neumann)과의 공동작업을 통한 원고가 있는데, 제목은 <사회적 변화 학설의 역사>(A History of the Doctrine of Social Change)라는 제목이며 마르쿠제 기록보관서에 보관된 미공개 문서였다. 그 원고의 시작은 이렇다. 


사회학이 독립학문으로 인정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래서 사회이론은 철학, 경제학 혹은 법학 같은 다른 학문의 중요한 일부로 여겨졌다. 또한 개념적 구조는 대체로 특정한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철학과 사회학은 본질적으로 긴밀한 관계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안에서 고대, 중세, 현대 사회 초기에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에 관한 각각의 모든 이론 패턴을 체계적으로 구성한다. 결론을 말하면, 사회적 변화는 한 가지 사회과학으로는 해석될 수 없고, 인간 삶의 사회적, 자연적 전체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대체로 이 개념은 사회변화 이론에 심리학적 요소를 사용한다. .... 이는 본질적으로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인 개념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철학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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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제와 뉴만은 사회와 사회적 변화에 대한 당대의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 사회 변화에 대한 고대, 중세, 현대 이론을 체계적으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그들은 현대 사회학이 "마르크스 주의에서 여전히 유효한 사회 이론과 철학 이론 간의 본질적 연관성을 강화했고, 사회변화 문제를 특정한 사회학적 과제로 다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현대의 사회변화 이론에 철학, 사회학, 정치학 이론을 통합할 것을 주장한다.


1940년대 비판이론에는 2가지 경향이 있었다.

  •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제시하는 서양 문명의 트렌드에 대한 철학적 문화적 분석

  • 마르쿠제와 뉴만이 한층 더 현실적, 정치적으로 발전시킨 사회변화 이론으로서의 비판이론




마르쿠제와 뉴만은 비판이론이 철학, 사회이론, 급진적 정치학을 연계할 사회변화 이론이 될 것으로 인식하였으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1940년대 초반 사회이론과 급진주의 정치학에서 분리된 철학, 문화 비판주의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1930년대 비판이론 프로젝트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마-뉴는 호-아가 부인하던 사회변화이론 문제에 정확히 주목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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