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3일 이탈리아 주교회의 주교단의 신앙선서 때 하신 말씀


모두 내어주기

마음을 낮추고 그 무엇도 예측하거나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직무는 주님과의 깊은 친교를 토대로 합니다. 주님처럼 사는 것이 우리가 수행할 교회 직무의 방향을 결정짓는 기준입니다. 주님처럼 산다는 것은 순종과 겸손과 자기를 완전히 내어놓음을 의미합니다(필리 2,6~11).

 

그러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의 결과는 그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곧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목자의 특징입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권한으로 봉사함으로써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과 그분의 활동을 드러내고 형제의 사랑으로 공동체를 세우고 육성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특징은 그것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 사랑의 불꽃은 약해지고 마침내 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원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사도 20,28)

 

사목자는 깨어있지 않으면 미온적인 태도가 됩니다. 태만하고 부주의하게 됩니다. 참을성도 잃고, 출세를 바라게 됩니다. 돈의 유혹에 빠지며 세속과 타협합니다. 그렇게 게으름에 빠지면서, 하느님 백성의 참된 행복과 번영보다는 자기 자신과 외적인 제도와 구조에 대해서만 걱정하는 관리와 같은 성직자가 되고 맙니다. 겉으로는 주님 이름으로 일하고 설교하지만, 속으로는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을 배반할 위험에 빠집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가 통과해야 할 시험이나 시련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각자 자신이 어떤 시험과 시련을 통과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려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반복했던 질문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그 질문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진지하게 반복되는 예수님의 질문은 우리의 자유가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를 위협당하고, 우리는 상실감이나 패배감에 빠져서 믿음까지 잃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의 상실을 주님이 마련하신 것은 아닙니다. 시험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원수인 악마가 우리를 고통과 비탄과 절망에 빠트리게 하는 도구입니다. 악마가 활용하는 도구가 바로 믿음의 상실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인한 수치심으로 더한 절망과 좌절에 빠지고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용기를 주고 사명을 맡기면서 세상을 향해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용서의 불꽃으로 정화된 베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주님,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21,17).

 

은총으로 정화된 베드로는 자신의 첫째 서간에서 우리에게 말합니다.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해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1베드 5,2~3)

 

허약한 우리에게 주님은 날마다 은총과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양떼를 앞장서서 걸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지키는 것은 믿음 속에서 최선을 다해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요한 10,16)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건전한 사도적 활동을 방해하는 쓸모없는 짐은 벗어버리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양 떼를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하느님과 같은 꿈을 꾸십시오.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것처럼 하느님의 집은 어떤 사람도 어떤 백성도 가리거나 배척하지 않습니다(이사 2,2~3).

 

이런 이유에서 사목자로 산다는 것은 양 떼의 한가운데나 맨 뒤에서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소리없이 슬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다시 일으켜주고 격려하고 희망을 북돋아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함께 우리의 신앙을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는 더욱더 강직한 사목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돌보라고 맡겨주신 모든 사람을 향해 마음을 낮추고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미리 예측하거나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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