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강아지 새끼인가? 

모욕감을 못 견딘 압구정동 한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자살 시도 


2014년 10월 7일,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53세의 남성 한 분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전신 3분의 2에 3도 화상을 입었으며 의식은 희미하고 위중한 상태라고 합니다. 


원인은 한 아파트 입주민의 잦은 잔소리와 모욕적인 행동들 때문이었습니다. 청소 상태를 지적하기도 했고 떡을 1층으로 던져주며 먹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해당 입주민은 74세의 여성이니 할머니인데, 그 사람의 주장어린 입장은 이렇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불행한 일이 벌어져서 가슴이 아프다. 오랜 기간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조언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 (떡을 던진 건) 몸이 불편해 직접 1층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음식을 챙겨주려던 것이었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한수진의 SBS 전망대 동료경비원 "5층에서 음식 던져줘... 우리가 강아지 새끼인가? 10-13.

"떡 던진 이유..." '경비원 분신' 입주민 가족 해명  SBS 뉴스 2014-10-14


그러나 동료 경비원들에 따르면 5층에 사는 74세의 잔소리 할머니는 5층에서 '경비, 경비' 부르고, '이거 받아먹어'하면서 먹을 것을 5층에서 던진다는 것입니다. 경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입주자 대표회의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대표회의는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74세 입주민 할머니는 경비 아닌 사람에게도 똑같이 행동했을까?


평소 경비원들을 하인 부리듯 하며 인격모독적 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이 압구정동 S아파트의 74세 할머니의 진정한 모습일까요? 자신의 자식들이나 손자손녀들에게는 아주 따뜻한 감성으로 부드럽게 안아주는 할머니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노령의 여성은 두 얼굴을 가졌던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점점 더 두 얼굴을 쉽게 용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해당 사건이 벌어진 압구정 S아파트의 커뮤니티가 74세 여성의 행동이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사회란 두 사람 이상이 사는 공동체이기때문에 타인의 손가락질이 가능한 행동에는 스스로 제어를 합니다. 그런 도덕적 반복학습이 건전한 사회를 형성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이 74세 여성에게 그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조언을 해준 사람이 그 노인이 속한 커뮤니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을 갑을병정으로 구분하여 보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진 서글픈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일 수도 있습니다. 


2014년 10월 14일자 경향신문 16면(사회)에는 분신 사고로 본 경비원의 '감정노동' 실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언어.정신 폭력 시달려... 우린 감정노동자"



경향신문은 이 보도에서 아파트 경비원들의 '감정노동'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이 고령인 경비원들이 보통 24시간 교대근무라는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육체적으로 시달리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합니다. 장시간 노동에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경비원들은 상시적 언어폭력,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동영상은 위의 경향신문 기사의 인터넷 판에 연결된 내용입니다. 분신사고에 대한 규탄과 재발방지에 관련된 기자회견 영상입니다. 



감정노동은 노동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고객이며 소비자이기 때문에, 내가 고객이며 소비자인 동시에, 내가 또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처지로 변신해야 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낮은 계층의 사람일 수록 고객이기보다는 고객을 모셔야 하는 처지에 더 오래 서있을 확률이 클 것이겠죠


감정노동이란 용어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83년의 일입니다. 자기의 감정상태와 상관없이 미소짓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등의 긍정적이고 보편화된 감정 상태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야하는 노동의 한 유형입니다. 고객이 어떤 억지와 지랄을 떨어도 참아야만 하는 경우로 콜센터, 택배, 대리점이나 백화점 직원, AS 수리기사, 항공승무원 등 서비스업종에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노동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이라는 책에서 항공기 승무원 사례를 소개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해인 2013년 10월에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로 총 6주에 걸쳐 14개의 연재글을 실은 바 있습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회사와 고객'의 친절 요구의 적나라한 상황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기사를 연결합니다.


2013년 11월 한겨레 연재기획 [마음을 짓밟은 감정노동]

① 질식: 회사와 고객 사이에서 숨이 막힌다 (10-31)

     밤 9시 그 곳에선 ‘한밤의 인민재판’이 시작됐다

    오늘 만난 ‘진상 손님’, 회사가 보낸 ‘암행 감시단’?

    청소기 속 개똥까지 치우라고 해도 “고객님은 항상 옳습니다”

    (일하며 느낀 수치심... 무력감-분노 오가며 인간성 무너져)


     2013.11.7 한겨레 캐스트 전체 노동자 절반인 '감정노동자' ... 실태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② 트라우마 (11-7)

     치떨리는 경험 후 나도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감정노동 확 늘었어도 ... '마음산재' 요구는 이제서야 꿈틀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③ 마비: 쌍욕도 아무렇지 않아요 (11-14)

    욕설 들어도 협박 받아도 무덤덤 ... 망가진 '감정의 문'

    “감정노동자, 주변환경에 예민하고 긴장감 높아”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④ 소진: 열정은 어떻게 착취되었나 (11-21)

    장갑도 못 끼고 장애인 대소변 닦다 옴까지 옮아

    소외층 보듬다 겪는 마음의 상처…복지사들 오늘도 ‘방전’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⑤ 비굴: 최선을 다해 낮아져야 한다 (11-28)

    손님 발길질에 차여도…비굴하게 더 비굴하게

    “영업사원, 과도한 자기애의 이면엔 불안감 잠재”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⑥ 확산되는 감정노동,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12-5)

    감정노동 시달리던 선희씨 ‘공감과 연대’로 희망의 싹 틔웠다

    책속의 감정노동

   “힘든 마음 드러내라, 동료 손 잡아라, 보상 요구하라”



2013년 11월 한겨레 연재기획 [마음을 짓밟은 감정노동] 특집페이지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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