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신앙의 빛> 4항과 34

 신앙의 빛


신앙의 빛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빛의 원천이다. 그 빛이 꺼지면 다른 모든 빛도 힘을 잃는다. 신앙의 빛이야말로 인간 실존의 모든 면을 비출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는 이 신앙의 빛이 가진 바로 이 특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시대에 서 있다. 그런데 신앙의 빛은 다른 빛의 원천이지만, 이 보다 앞선 더욱 근본적인 원천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신앙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언제나 부르신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은 사랑을 드러내시는 살아계신 분이시다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은 우리를 앞장서 인도하신다. 우리는 앞장 서서 부르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기대어 서서 굳건해지고 우리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기대어 섰을 때 변화된다. 그리고 변화된 시각을 갖는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충만함에 대한 위대한 약속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펼쳐져 있음을 느낀다신앙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그것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선물이다. 그 선물이 우리의 길을 비추는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 발걸음이 가야할 길을 비추는 하느님의 빛은 과거에서 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거란 과연 어떤 과거일까? 그것은 예수님의 삶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기억이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다. 죽음마저도 이겨낼 수 있는 그 사랑의 삶을 살았던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다.

 

다른 한편으로 신앙은 미래에서 오는 빛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 너머로 끌어주신다. 그래서 신앙의 빛을 앞으로 펼쳐지는 우리 앞의 광대한 지평을 보여주신다. 펼쳐서 보여주신다. 그래서 나 자신안에 고립되어 있는 내가 더 폭넓은 친교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신다. 그래서 신앙이야말로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 신앙은 어둠을 비추는 빛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적인 삶에만 유효한 것일까? 개인의 주관적인 확신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축소하여 해석해야 할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 공통된 하나의 진리는 전체주의적인 강력한 명령과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강력한 명령은 우리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신앙과 들어맞는 사랑의 빛은 진리에 대한 우리의 시대적 물음을 밝게 비춰줄 수 있다. 진정한 진리는 사랑의 진리이다. 사랑의 진리는 절대적인 분과 인격적인 만남을 열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도 인격적인 만남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는 개인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선에 속하는 것이다.

 

공동선은 강제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을 억압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랑에서 비롯되는 진리는 마음에, 곧 모든 인간의 인격적인 중심점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은 외면하고 외롭게 홀로 서는 것이 아니다. 오만하고 교만한 자세로 혼자 서있는 것도 아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삶에서 성장한다.

 

진실된 신앙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래서 진리는 우리가 소유한 게 아니다. 우리가 소유당하는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껴안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품 안에서 우리는 긴장을 풀고 경직된 마음에 여유를 불어넣을 수가 있다. 그러한 신앙에 대한 확신의 단계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떼어서 다른 이에게 다가갈 수 있다. 다른 이들에게 믿음을 증거하고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