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2014년 3월 9일 9시 @도화담공소
만수리공소성당 윤종관 신부
우리 모두 "부자 됩시다!"
빈곤을 벗어나라!
매년 그렇듯이 올해의 새봄과 함께 사순절을 맞이했습니다.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사순절을 시작하는 지난 수요일은 마침 공교롭게도 경칩(驚蟄) 전날이었습니다. 긴 겨울잠을 자던 땅속의 미물들이 깨어 일어나 활동을 개시하는 절기와 함께 사순절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걸 화답하듯이 우리 만수리 공소의 밭에 있는 몇 그루의 산수유나무 가지마다 샛노란 봉오리들이 막 터질 듯합니다. 마치 사순절 메시지를 전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올해의 사순절 메시지를 일찌감치 먼저 보내셨습니다. 오늘 사순절 첫 주일에 저는 교황님의 그 메시지를 인용하여 교우님들께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우리가 걸어야 할 ‘참회의 길’이 어떤 것인가
사순절에 우리가 걸어야 할 ‘참회의 길’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교황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 중 다음 구절에서 깨닫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 9)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에 대해서 교황님께서는 역시 바오로 사도의 다른 말씀으로 그 설명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아지시기 위해 당신의 영광을 제쳐두셨고 자신을 비우셨습니다.”(필리 2, 7 ; 히브 4, 15 참조)라고…
여기서 교황님께서는 “그러면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그 ‘가난’이란 무엇인가?”하고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이웃이 되시는 그분의 방식 말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길가에 초주검이 되어 버려진 사람에게 이웃이었던 것과 똑같습니다(루카 10, 25 이하 참조). 우리에게 참된 자유, 참된 구원, 그리고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은 그분 사랑이 지닌 연대, 동정, 애정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사랑 방식’은 곧 그분이 우리와 같이 가난해지시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부유함을 누리게 된다고 교황님께서는 설명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부유한 가난’(poverty which is rich)과 당신의 ‘가난한 부유’(richness which is poor)로 부유해지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계시다고 교황님께서는 설명을 붙입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가난’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로서 살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
부유한 가난과 가난한 부유 그리고 실질적 가난
이러한 교황님의 말씀에 대해서 저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나 자신에게 던지면서 깨닫고 싶습니다. “나는 가난하여 행복할 수 있나? 아니면, 부유하여 행복할 수 있나?” 이에 대한 대답으로 “가난하여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한 부유이다.”하고 말하면 될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덧붙이는 대답이 있다고 봅니다. “가난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게 빈곤이고, 반면 가난을 함께 하는 건 부유이다.” 그래서 결국 후자의 경우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다면 이미 부자가 된 것이지요. 이게 말장난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교황님께서는 설명하십니다. ‘가난’과 ‘빈곤’은 같은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빈곤’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음’ 즉 결핍(destitution)을 뜻합니다. 그러나 ‘가난’이란 ‘비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늘 비어있는 삶을 ‘청빈(淸貧 poverty)’이라 하듯, 진정 가난한 삶이란 ‘채울 수 있는’ 큰 그릇과 같습니다. 가진 것(재물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나 명예이든) 많을수록 자신만을 내세우는 사람이라면 그건 ‘빈곤한 부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는 ‘가난한 부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교황님의 메시지 중에 ‘빈곤’을 세 가지로 구분하신 대목에서 오늘 사순 제1주일의 복음 말씀을 연상하고 있습니다.
빈곤과 가난의 차이점과 물질적, 도덕적, 영적 빈곤
교황님께서는 물질적(material), 도덕적(moral), 영적(spiritual) 상태의 ‘빈곤’을 지적하셨습니다.
‘물질적 빈곤’이란 통상적으로 일컫는 가난을 뜻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회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필히 우리의 양심을 올바름, 평등성, 검소함, 나눔의 기조로 회복하여 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검소함(simplicity)’을 강조하십니다. 권력과 사치와 돈을 우상시하는 태도를 버린 순박성 회복의 세상이라야 정의와 평등과 나눔이 가능하고,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라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도덕적 빈곤’이란 죄악의 노예상태라 하시면서, 퇴폐풍조와 불의한 사회상황과 교육 및 건강 환경의 부도덕성을 교황님께서 지적하십니다. 그러한 도덕적 빈곤으로써 필연적으로 ‘영적 빈곤’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며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듯이 하느님 필요 없다면서 인간 스스로 파멸하는 지경이 곧 영적 빈곤이라고 교황님께서는 진단하십니다. 이러한 영적 빈곤의 참된 해독제(antidote)가 곧 ‘복음’이라고 선언하시는 교황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사순 시기에 교회 전체가 물질적, 도덕적, 영적 빈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 메시지를 증언할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이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감싸 안을 준비가 되신 자비로운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신 그리스도를 닮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금욕하기에 좋은 시기입니다. 우리의 가난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부유하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 물어보도록 합시다. 진정한 가난은 아프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러한 차원의 참회 없이는 그 어떤 금욕도 참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아무런 희생도 따르지 않고 아픔이 없는 자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성령에 힘입어 우리는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2코린 6,10 참조) 성령께서 우리의 결심을 굳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인간의 빈곤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키우도록 도와주시어, 우리가 자비로워지고 또 자비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희망으로 저는 또한 모든 신자 한 사람 한 사람과 모든 교회 공동체가 사순 시기를 풍요롭게 지내시기를 기도합니다.”
교황님의 이러한 사순절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저는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하시고 이기신 세 가지 유혹을 연상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시고 이기신 세가지 유혹
‘물질’(빵)의 유혹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하십니다(마태 4, 2∼5 참조).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당하신 ‘고독’의 유혹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대답하십니다(마태 4, 5∼6 참조). 또 세상의 ‘영예’(권력)의 유혹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대한 충성’으로써 물리치십니다(마태 4, 7∼10 참조). 사순절을 통하여 나에게 다짐해야겠습니다. 물질적 빈곤과 도덕적 빈곤과 영적 빈곤에서 예수님 따라 해방되어야 합니다.
가진 것(물질)이 부족하다해서 사람들 사이에 빈곤(야박)해지면 아니 되겠습니다. 나(고독)를 이기지 못하여 추락(도덕적 해이)을 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세상의 체면(명예욕) 때문에 하느님과의 (영적)관계가 등한시 돼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서의 ‘아니 되겠음’을 다짐하고 나 자신을 곧추 세우기 위해서는 ‘광야’(마태 4, 1)에 가야 합니다. 그리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야 합니다(마태 4, 1 참조).
광야는 비어있는 내 마음입니다
‘광야’란 어디일까요? 그건 비어있는(가난한) 내 마음입니다. 그래서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진 것 없어서가 문제일 수 없고, 나를 이길 수 있고, 세상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부자로서 부유한 가난을 기꺼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고독하지 않은 부자가 되어 하느님과 돈독(부유)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에로 우리 모두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곧 ‘참회’이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순절을 지내고 새로운 삶을 실제로 얻는 부활절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을 우리는 이미 세례성사로 우리 자신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이끄심 대로 가자고 타이르는 교황님의 메시지였습니다. “빈곤을 벗어나라!”고… 그래서 우리 자신들에게 외칩시다. “부자 됩시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77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가톨릭노트 > 신부 윤종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의 두레박에서 마신 물은 목마르지 않다 (0) | 2014.03.23 |
---|---|
참 모습이란 삶이 다하고 나서야 드러나는 것 (0) | 2014.03.16 |
지금의 처지에서 삶의 성취를 가장 완벽하게 하라 (0) | 2014.03.02 |
예수님께 반문하고 싶습니다. “사랑? 그게 뭡니까?” (0) | 2014.02.23 |
얼굴에서 미움이 엿보인다면 그게 불행입니다 (0) | 2014.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