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도보순례미사강론
2014년 3월 30일 오후 2시 @서짓골성지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빛'으로 오신 분을,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눈은 수천 수만 년의 삶을 바라본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넘게 걸은 이십오 리의 도보순례로써 우리는 148년 전 3월 30일의 사연을 우리 몸에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순례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한결 거룩해졌습니다. 그리고 또한 도보순례로써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피곤해지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서짓골 성지에서 (유흥식 라자로) 대전교구장 주교님의 집전으로 여러분이 바치는 미사성제의 제물은 다른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거룩하게 피곤해진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여러분은 참으로 장한 분들이십니다.
150년 전을 체험한 오늘의 도보 순례길
오늘의 순례로써 여러분께서는 일백오십 년 전을 체험하셨고, 앞으로의 수백 수천 년도 더 살 수 있는 생명을 여러분 몸속에 담았습니다. 그러한 여러분들은 순교자들을 닮은 분들입니다. 여러분께서 그런 분들이라는 점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확인합니다. 148년 전 이곳 서짓골의 신자들이 갈매못에서 치명하신 성인들의 시신을 천신만고로 여기까지 모셔다 안장해드렸던 그 길을 여러분께서 오늘 걸어오셨습니다. 그 옛적의 서짓골 신자들 또한 나중에 발각 체포되어 여기 묻어드린 성인들의 뒤를 따라 목숨 바치게 되었는데, 오늘 그 길을 걸어오신 여러분 또한 지친 몸을 주님께 바치는 미사성제를 올리는 모습을 보니, 혹 그 옛적의 서짓골 신자들이 여러분의 모습으로 환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옛적의 서짓골 신자들과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옛적 그 신자들은 치명하시어 돌아가신 주교님과 신부님들과 회장님의 시신을 모시고 왔는데, 오늘 여러분들은 살아계신 주교님과 살아있는 사제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옛적 그 신자들과 여러분들이 똑 같은 점이 두드러집니다. 그게 뭐냐? 목숨 바쳐 죽을 수 있는 신앙의 소유자라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몸 돌보지 않고 지치도록 걸어오신 것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다블뤼 주교님과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같은 점, 다른 점
그런데 오늘 걸어오신 분들 가운데 옛적에 여기 묻히신 다블뤼 안돈이 주교님과 매우 닮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 역시 주교님이십니다. 안돈이 주교님은 당시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으로서 치명하셨는데, 오늘 여기 우리와 함께 걸어오신 주교님은 대전교구 제4대 교구장이십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주교님 사이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안 주교님은 서양 사람이었고 오늘 여기 오신 우리 주교님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히 다른 점입니다. 그리고 앞의 주교님은 돌아가셔서 여기 오셨지만, 오늘의 주교님은 살아계시면서 여기 오셨다는 것 또한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두 주교님께서 같은 모습을 보이고 계시는데, 그건 오늘 사순 제4주일에 이 두 분이 취하신 행동이 그렇습니다. 오늘 즐거워하시고 매우 기뻐하시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이 두 분의 주교님께서 오늘 그렇게 기뻐하시는 까닭이 있습니다. 오늘 사순 제4주일 미사의 주제가 ‘우리 신앙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사도적 권고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신 말씀의 제목이 ‘복음의 기쁨’이듯이, 우리는 우리 신앙 때문에 기쁜 삶을 산다고 오늘 사순 제4주일에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쁨의 표현으로 오늘 미사 주례사제의 제의가 핑크색입니다. 미사의 입당송으로 그래서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이사 66, 11)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전갈을 노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순 제4주일의 사연은 148년 전에도 똑 같았습니다. 안돈이 주교님께서 합덕 근처 신리에서 체포되신 날이 바로 사순 제4주일이었습니다. 그 해의 사순 제4주일은 3월 11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체포되신 그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그분의 행적기록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안 주교님은 인근에 피신한 오 베드로 신부와 민 루카 신부에게 교우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수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주교님과 두 분 신부님 함께 압송될 때 “마치 큰 잔치를 하는 것처럼 즐거워하고 만족해하셨다.”고 그 날의 정황을 기록한 칼레 신부가 전하고 있습니다. 148년 전의 사순 제4주일은 그날 체포되신 안 주교님과 두 분 신부님에게 있어서 기쁜 잔칫날 같았습니다. 그렇듯이 오늘 사순 제4주일에 우리 또한 여기서 즐거워하시는 우리 주교님과 이렇게 순례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래서 즐겁고 기쁘지 않습니까?
‘순교(殉敎)’와 ‘치명(致命)'의 차이
사실 우리 모두 체포 된 것처럼 신앙의 끈으로 묶여서 하느님께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죽으러 가야겠지요? 순교자들과 같이 치명의 길로 함께 가는 것입니다. ‘치명(致命)’이라는 말의 본뜻은 ‘삶을 건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순교(殉敎)’라는 말보다 ‘치명’이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옛적에 중국에서 황제가 죽으면 그 신하들이 따라서 무덤에 묻히는 것을 ‘순장(殉葬)’이라 했습니다. ‘따라 죽는다’는 뜻이지요. 이건 어쩌면 수동적 태도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법에 따라 또는 명령에 따라 죽는다는 것인데, 그렇듯이 ‘순교’라는 말은 ‘가르침을 따라 죽는다’는 뜻이 됩니다.
전에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박해의 상황에서 죽으신 분들을 ‘치명자’라고 일컬었는데, 언젠가부터 ‘순교자’라고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만, 그 말은 실상 개신교 사람들이 쓰는 말을 따른 감이 있습니다. 체포 되시고 또 동료 선교사들도 자수하게 하신 안 주교님께서 교우들의 당할 위험을 줄이게 된 것을 즐거워하신 모습을 연상하면서 저는 그분을 순교자라고 부르기보다는 ‘치명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교우들 대신으로 건네신’ 치명의 길로 들어선 날이 그분의 오늘 사순 제4주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19일 후인 3월 30일에 ‘갈매못’에서 치명하셨습니다. 그해의 3월 30일은 ‘주님 수난 성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분이 동료 선교사들과 신자 회장 두 분과 함께 다섯이 치명하시던 그 날짜에 우리는 여기 서짓골 그분들의 무덤 위에서 사순 제4주일 즉 기쁨의 일요일에 이렇게 주교님과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치명’하는 분위기이지요?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치명하게 된 걸 매우 기뻐했던 안돈이 주교
안돈이 주교님께서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치명하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날 함께 죽게 된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이었지요. 그 까닭은 단순히 그 날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형을 집행할 충청 수영에서 안 주교님과 다른 네 분을 함께 인근 동리에 하루 이틀간 끌고 다니며 조리돌림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외교인들 틈에 섞여서 보게 될 교우들이 얼마나 두려워하고 슬퍼할 것인가 하고 염려하신 안 주교님께서 사형 집행관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조리돌림을 생략하고 그날 사형이 집행 된 것입니다. 안 주교님의 그러한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르시던 예수님께서 슬퍼하는 예루살렘 부녀자들을 위로하시던 모습과 너무너무 닮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안 주교님도 발가벗겨져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갈매못에서의 그날 다섯 분 중에 가장 먼저 죽음을 당하신 안 주교님의 최후 순간에 대해서 지금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발가벗겨져 장대에 묶인 주교님의 목을 망나니가 반쯤 벤 다음에 수고비를 더 달라고 한참동안 집행관과 흥정하는 동안 주교님의 고통을 저는 상상하기조차 너무 끔찍합니다. 십여 분간의 흥정 후에 주교님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고 이어서 다른 네 분의 목이 차례로 베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머리가 며칠 동안 장대에 매달려 전시 된 후 몸과 함께 바닷가 자갈모래에 묻혀 방치 되다가 먼저 황석두 루카 회장님의 시신이 가족들에 의해 홍산 삽티에 모셔지고, 이어서 서짓골 신자들에 의해서 주교님과 다른 세 분의 시신이 참으로 어려운 과정으로 여기 묻히시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 분들 유해를 안장해드린 교우들 또한 체포되어 치명의 길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곳 서짓골의 성인들 묻히신 곳은 황량하게 방치되고 잊히어진 채 148년 흐른 오늘 우리들이 여기 모여와 미사성제를 올립니다.
‘한 빛이어라, 임께 다다른 숨!’ ... 光榮爲主致命
여기 묻히신 성인들의 존재는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영광으로 승화되었기에 제각각의 모습을 드러내는 육체는 보이지 않고 하나의 빛으로 오늘 우리 눈에 들어오는 신앙의 목숨인 것입니다. 그러한 뜻으로 여기 높게 세워진 큰 돌에서 光榮爲主致命이라 우리는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심정을 절절히 표현하자면, ‘한 빛이어라, 임께 다다른 숨!’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기 우리 주교님께서 축성하시고 미사성제를 봉헌하시는 하나의 큰 돌은 四聖祭臺라 일컬어집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가 성인들 안장지를 참배하며 기도하는 경내를 敦伊園이라 합니다. 안토니오 주교님의 조선식 함자 ‘안돈이’를 따른 기도의 정원입니다. ‘안토니오’라는 이름의 약칭을 ‘토니(Tony)’라 하듯이 ‘토니 정원(Tony Garden)’이 되고 있습니다만, ‘돈독하고 후덕하게’ 후대의 우리들을 맞이하여 주시는 안 주교님을 애정어린 이름으로 ‘토니 주교님’이라고 여기서 불러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 덕의 그늘에 앉아 기도할 수 있는 자리를 그래서 安敦亭 즉, ‘안토니오의 정자(亭子)’라 하겠습니다만, 그래서 ‘편안하고 따뜻한 자리’라 할 것입니다. 우리들과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여기 와서 돈독하게 신앙을 다지고 새로운 삶 즉 부활을 향해가는 믿음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여기입니다.
부활을 체험하는 곳은 예수님의 빈 무덤입니다
부활을 바라고 체험하는 곳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안식일 다음날 아침에 찾아갔던 예수님의 빈 무덤입니다. 거기서는 죽으신 분을 눈으로 발견하는 곳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분을 신앙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앞서 간 분들의 육신적 유적이나 혹은 오늘 어느 공적을 쌓아 놓은 물체로서의 찬란한 볼거리를 찾아오는 곳이 아닌 여기 서짓골은 순례자의 눈에 마치 마리아 막달레나가 발견한 빈 무덤과 흡사한 곳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도 그런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여기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순절의 길고 긴 터널의 중간에서 미리 부활절의 맛을 보는 기쁨으로 사순 제4주일에 주교님의 집전으로 주님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는 미사성제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미사를 집전하시는 오늘 우리의 교구장 주교님께서는 여기 안장 되신 옛적 교구장 안돈이 주교님을 계승하실 만큼 확실하게 그분을 닮으신 주교님이십니다. 그건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안돈이 주교님은 조선에 입국하실 때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그리고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입국하시는 페레올 주교님과 함께 우리 충청도 강경에 상륙하시고 부여지방 은산 산골의 교우촌에서 몇 달 동안 조선어 공부를 하신 후 21년 동안 주로 우리 충청도 즉 오늘날의 대전교구에서 사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주교 서품을 받으신 분이시며 선임 주교님의 계승권 교구장이셨습니다. 그분을 교구장 계승권 주교로 선임하신 분은 페레올 주교님으로서 그 주교님은 또한 강경에 상륙하시어 거기 유숙지에서 비밀리에 조선교구장직에 착좌하셨습니다. 우리 대전교구의 땅에서 교구장 착좌를 하신 페레올 주교님에 의해 선발 되시고 그 다음 베르뇌 교구장 주교님의 계승권 승계를 하신 분이 안돈이 주교님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우리 교구장 주교님과 안 주교님의 사이에 처지가 매우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 더욱 두 분 사이에 중요한 관련점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사순 제4주일의 메시지 주제가 ‘기쁨’입니다만, 그 기쁨이란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된 기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탁 뜬 눈에 우선 들어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달려 나가는 게 모두 돈 벌려고 나가는 요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돈부터 봐야 좋겠습니까? 그게 아니지요! 생각은 돈 같은 물질에 먼저 가 있다 하더라도 눈 뜨면 자연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빛입니다. 그 빛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 돈이든 사람이든 눈에 보이는 게 순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빛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세상을 밝히는 빛을 찾으라고 역설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여기 오늘 우리의 교구장 주교님이십니다. 라자로 주교님께서 주교 품에 오르시며 선택하신 좌우명이 곧 ‘세상의 빛’입니다. 라자로 주교님의 인장이 그래서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 ‘Lux Mundi’(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시지요?
빛이 들어오는 우리들의 눈은 곧 ‘믿음의 눈’입니다.
우리 주교님의 좌우명이 그렇듯이 오늘 사순 제4주일 복음은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만나게 되는 기쁨의 날입니다. 캄캄한 박해 속에서 치명의 길에 들어서신 안토니오 주교님의 사순 제4주일에 우리는 오늘 역시 라자로 주교님께서 우리에게 늘 전하시고자 하시는 ‘세상의 빛’을 우리 눈에 오늘 담아 가지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빛이 들어오는 우리들의 눈은 곧 ‘믿음의 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눈멀었던 사람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요한 9, 35)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 눈멀었다가 뜨게 된 사람과 같이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요한 9, 36) 하고 여쭈어야겠지요. 예수님께서 단언하십니다. “너는 이미 나를 보았다.”(요한 9, 37) 여기서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 9, 37)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하고 정말로 말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여기 서짓골 ‘빈 무덤’의 현장에서 믿음의 위대함을 보는 눈을 지니신 여러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빛의 주일인 이 사순 제4주일의 오늘 안 주교님 등 다섯 분의 옛적 갈매못 3월 30일을 동시에 기념하면서 여기 걸어오신 여러분들은 과거 치명으로 고백한 성인들의 신앙을 똑 같이 현재의 오늘에 고단한 몸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빛’으로 오신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알아보았기에 세상에서의 오늘만 사는 게 아니라, 치명하시어 영원히 사는 치명자들처럼 수천수만 년도 더, 아니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얻으신 분들입니다.
또한 이 사순 제4주일은 부활절에 세례 받을 준비를 하는 예비자들의 ‘수련 주일’이듯이 오늘 우리는 여기서 믿음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이 수련으로 얻은 힘으로써 여러분의 삶이 더욱 거룩해지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82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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