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

2014년 4월 27일 10시 만수리공소


진도 앞바다는 '나의 탓' 때문에 ...  

상처는 새로운 삶의 증표



토마스가 오늘의 복음 성경에서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 28)

 

오늘 읽는 복음 성경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이 구절은 토마스의 부르짖음이자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신앙고백을 외친 토마스는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토마스 사도에 대하여 성경은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토마스의 인물 됨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 당일(주간 첫날) 저녁때에(요한 20, 19) 오신 부활의 주님을 뵙지 못하였습니다(요한 20, 24 참조). 다른 사도들과 함께 모여 있지 않고 밖으로 나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분은 오늘날 주일미사에 잘 참석하지 않고 다른 일에 더 마음 쓰는 신자들과 비슷한 인물이었다고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마스 사도는 아마 요즘 흔히 일요일에 혼인 예식장에 인사 가기 위해, 또는 놀러가기 위해, 주일미사를 빼먹는 신자들처럼, 어딘가 다녀온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요일 저녁에 어느 집에 모여 있던 다른 사도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지요(요한 20, 19 참조).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토마스 사도는 밖에 나가 돌아다녔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인 그 유다인들을 겁내지 않고 밖에 나돌아 다닌 것 같습니다. 즉 다른 제자들처럼 소심하지 않은 분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실 토마스 사도는 열정적이면서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같습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리러 유다 지방으로 가시려 하자 모든 제자들이 나서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벼르고 있다면서 가시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만(요한 11, 5∼8 참조), 토마스 사도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 16)하고 말하기도 하던 단순한 성격의 사나이였습니다.

 

이렇게 자기 동료들을 부추기면서 앞장서는 토마스였지만, 또 한편 까다로운 성격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때 고별 담화를 하시면서, 그 자리의 제자들이라면 당신의 가실 길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자(요한 14, 1∼4 참조), 토마스는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일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 5)라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합리를 추구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 사람이었지요. 이러한 면모로 보아 토마스는 말을 먼저 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 같기도 하고, 이유를 많이 내세우는 사람 같기도 하고, 자기 식대로 행동하는 사람 같기도 합니다. 우리 교우 형제자매들 간에도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그러한 토마스는 자유분방한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가 돌아온 그는 다른 사도들이 겁쟁이들처럼 숨어 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고 말하니 가소롭게 여기면서 자기는 눈으로 직접 예수님의 상처를 확인하고서야 믿겠다고(요한 20, 25 참조) 우겨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그에 대하여 제가 추측하자면, 그는 그 대범한 성격으로 능동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성격으로는 아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사흘 전에 처형되어 묻힌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고 떠들썩하게 나도는 시중의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겁내지 않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며 탐문하다가 예수님의 그 무덤에까지 가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토마스 사도의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듭니다. 소극적으로 물러앉아서 다른 사람들 눈치나 살피고, 힘 드는 일에서는 슬며시 몸을 빼기나 하다가 일이 되어갈 때 쯤 생색이나 내기 위해서 끼어드는 사람들, 또는 스스로 실천적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뭘 많이 아는 척 말하는 신자들, 또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간간히 남는 시간 맞춰서 주일미사에나 겨우 참례하는 신자들 등의 소극적이고 나태한 사람들과는 달리, 실제적인 자신의 노력으로 성경이나 교리를 깨우쳐서 기뻐하는 신자들, 그리고 어려움을 무릅쓰고 몸으로써 봉사활동에 나서고 주일미사에 공동체와 함께 하기 위해서 없는 시간을 낼 줄 아는 신자의 모습을 보여준 분이 토마스 사도였다고 저는 보고 싶습니다.

 

그러한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을 뵙고 나서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저 감격적인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말입니다. 다른 사도들은 기뻐서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예수님 앞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드렸다는 보도 내용이 없습니다만, 토마스는 그렇게 즉시 감격적인 신앙고백을 했다고 성경기자는 강조하여 보도하고 있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여 오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평화를 선사하셨지만, 그리고 그 평화를 전하도록 그들을 내보낸다고(파견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불어넣어주시고 죄 사함을 세상에 선포하라 하셨지만, 그들은 즉시 밖에 나가지도 않고, 밖에서 돌아온 토마스에게 자랑만 했습니다(요한 20, 19∼24 참조). 그리고 그 후 일주일 동안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주일 후(여드레 뒤)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모두 모여 있었지요(요한 20, 26 참조). 그 여드레 뒤의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한 토마스는 아마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다시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증표의 상처를 보여주시자 토마스는 거침없이 저 유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 때문에 토마스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하시는 주님의 질책을 듣습니다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은 사실 그 자리의 모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 29 참조)

 

사실, 예수님께서 일주일 전에 오셔서 당신의 그 모습을 보여주실 때까지도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믿지 못하여 불안해만 하다가, 그분을 뵙고서야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던 그들이므로, 그들 모두는 주님을 보고서야 겨우 믿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일주일 후(여드레 뒤)까지도 불안해서 문을 다 잠가놓고 모였습니다.


매주간 일요일에 즉, 주간 첫날에(요한 20, 19 참조) 모이는 오늘날의 우리들도 사실은 전주일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을 모신 후 일주일(여드레)(요한 20, 26 참조) 지나고 다시 일요일(주일)에 모여도, 그 지난 일주간 동안 별로 더 나아진 것도 없고 사회에 나가 신앙 증거와 주님 사랑을 실천한 것도 없이, 그저 우리끼리만 문 닫아걸고(성당에 모여) 습관적으로 미사 올리는 것이 아닌가요? 이러한 우리들에게 확실한 신앙고백의 생활을 하라고 깨우쳐주기 위해서 요한복음서의 기자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문안인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외침을 토마스의 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토마스의 신앙고백을 상기하는 부활 제2주일은 부활주일과 똑같은 날이 되어 그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기에,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들이 오늘까지 흰옷을 입었던 풍속으로 ‘사백주일’이라 불리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부활 제2주일은 그게 여드레만의 날이듯이, 일주간마다의 매 주일은 주님 부활을 체험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부활주일의 반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끼리만 미사 봉헌하고, 즉 문 닫아걸어 체험하고, 세상에 나아가서는 신앙인다운 실천 없이 폐쇄적이고 피동적인 삶이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오늘 복음서는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토마스 사도가 확인한 예수님의 손과 발의 못 자국과 가슴에 박힌 창의 상처를 우리의 기억에 강렬하게 담아두고 우리의 신앙을 실천으로 고백하는 삶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못 박히고 창에 뚫리신 자국이 뚜렷이 남아 있는 그분의 모습이란, 곧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여 오신 분임을 믿게 하여 주었다는 그 사실로 우리도 부활하기 위해서는 많은 상처를, 즉 죽음의 상징을, 온 몸으로 얻어가면서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 인생의 길에서 얻는 상처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젠가 인터넷의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고도원 씨가 ‘캐롤라인 미스’라는 분의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상처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피해자의 행동과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피해를 입었다는 감정은 병을 덧나게 할 뿐이다.”(캐롤라인 미스의 《영혼의 해부》중에서)

 

이러한 글에 대하여 고도원 씨는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였습니다.

“상처는 눈물로 아물지 않습니다. 땅을 치고 통곡해도 상처는 그대로 남습니다. 상처의 순간은 아프고 쓰리지만 모든 걸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 꿋꿋이 걸어가십시오. 어느덧 상처는 불행의 흔적이 아니라 행복의 꽃으로 피어나게 될 겁니다.”

 

이러한 글을 읽으면서, 오늘 부활하여 오셨지만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뚫렸던 손과 발과 옆구리의 그 상처를 보여주시는 분 앞에서 저는 생각합니다. 그분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 눈에 당신 자신을 보여주시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로, 즉 삶의 고단함과 죄악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후회로, 주저앉아 있을 때 부활하신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당신의 그 찬란한 모습 속에는 사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고난의 증표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시면서 우리가 나아갈 신앙의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우리의 상처에 대하여 당신의 대답을 들려주십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단다.”하고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 병고로 신음하는 사람,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 멸시와 갈등으로 마음을 상한 사람, 장애에 억눌린 사람, 늙음과 따돌림으로 희망을 잃은 사람, 저버림과 싸움으로 절망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죄악 속에 헤매는 사람의 모습......,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요 동시에 예수님 당신 몸으로 얻으신 상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세상에 우리를 내보내시며 성령을 부어넣으시고 세상 모든 죄의 용서(불행의 해소)를 우리 사명으로 맡기신 것입니다(요한 20, 21∼23 참조).

 

지난 성주간 화요일의 저 남해 진도 앞바다에 참혹한 일이 벌어진 후, 부활주간을 넘기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엄청난 상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희생된 사람들의 부모와 가족들이 당하게 된 고통에 대하여 지금 아무도 위로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성주간 금요일의 주님수난을 서짓골 성지에서 묵상하면서 기도 했습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간 숱한 생명들이 곧 살아 올라오게 해주십사 기도했습니다. 희망의 불처럼 부활성야의 초를 밝히면서 또 기도했습니다. 캄캄한 밤이 부활의 새벽으로 밝아오듯 진도 앞바다에서 살아나오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런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실종’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생때같은 생명들의 숫자는 감소해가면서 무덤 행으로 가야하는 ‘주검’의 숫자만 늘어갔습니다. 결국 진도 앞바다는 생때같은 우리 아이들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두고 부활의 주님께 뭐라 기도해야 하는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의 이 엄청난 상처를 어이하면 좋겠습니까!

 

상처, 그것이 우리 몸에 남아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제 원망과 좌절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어이 해야 하겠습니까! 저 진도 앞바다 물의 무덤에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묻혀야겠습니다! 저 생때같은 생명들의 죽음에 대한 탓을 모든 국민들의 몫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신앙으로 물에 잠기는 세례가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죽음이듯이, 우리 모두 그런 세례로 물에 잠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 당국이나 국가 최고 책임자나 언론의 장에서 떠드는 사람들도 모두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탓만을 지껄이고 있습니다만, 지금 당장 우리 모두는 ‘나의 탓’을 통렬하게 고백할 수 있는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즉 이 나라가 온통, 썩은 모습입니다. 이 나라 도처가 무덤 같습니다. 모두 ‘남의 탓’만을 지껄이는 그 말들은 썩어가는 시체들 사이에서 들리는 귀신들의 아우성인 것입니다. 이제라도 썩어가는 시체들의 무덤을 거부할 정신이 든다면 기꺼이 모두가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의 탓’을 깨닫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채는 사람이라야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탓’을 깨닫는다면 응당 죽어 마땅한 자신임을 인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죽어야지요! 그게 바로 세례입니다. 물에 잠겨 죽는 일인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께서 우리를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삶으로 일어나기 위해 세례로써 예수님의 무덤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로마 6, 4 참조).

 

그렇듯이 진도 앞바다의 그 참혹함은 ‘나의 탓’에서 비롯되었음을 정부 당국도, 대통령도, 돈벌이 기업체도, 그리고 나만 살기로 버둥대는 우리 국민 모두도 깨달아야합니다. ‘나의 탓’ 속에 나를 묻을 수 있는 새로운 깨달음이 없으면 참혹한 죽음의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도 앞바다의 그 참혹함은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상처입니다. 이 상처는 ‘나의 것’이라는 그 깨달음으로 우리 모두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도 앞바다는 ‘나의 탓’이올시다.” 하고…

 

그 고백이란, 참혹한 상처를 몸에 지니고서 부활하신 분을 향하여, 오늘 우리가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상처의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늘 알아채면서, 우리 또한 불신으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음을 그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는 고백입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새로운 삶으로의 부활에 이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처란 다시는 죽지 않는 삶에 이른 증표일 것입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88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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