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

2014년 5월 4일 10시 만수리공소


主日,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날! 


그래서 '주간 첫날'


지난주일 요한복음서에 의하여 “주간 첫날”(요한 20, 19)이라는 날에, 그리고 그 “여드레 뒤에”(요한 20, 26) 제자들이 모여 있음으로 해서, 얻은 부활 체험이 우리의 주일(主日)의 본뜻임을 상기하면서, 오늘의 복음을 읽습니다. 오늘의 루카 복음서 24장 13절 이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체험한 내용 또한 “주간 첫날”(루카 24, 1의 ‘주간 첫날’과 같은 24, 13의 ‘바로 그날’)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날 부활하신 주님을 뵌 체험입니다.

 

이즈음의 세태에 우리 신자들은 주일(主日)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 봄철의 농사 일로 우리 시골 신자들이 실상 주일미사에 나오기가 어려운 것은 농촌 실정이 그러한 까닭이겠습니다만, 농촌 분들이 아니신 분들의 경우에는 대개 행락 행으로 혹은 친지들의 혼인 예식 참석, 또는 이즈음 선거철에 선거 운동에 참가하는 일이라든가 다른 세속 체면상의 이유로 주일미사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거기에 이른바 주간 5일 근무제에 따라서 주일 지키기란 마치 걸림돌 같기도 합니다. 주말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사회적 추세로 말미암아 일요일 주일 미사란 레저 생활에 있어서 일종의 걸림돌이 되는 현상입니다. 주일(主日)이란 이제 교회에 나가야 되는 부담스런 날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주어지는 주말(週末)로 인식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은 이제 ‘주님의 날(主日)’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휴일(休日)’로만 인식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주간 첫날”(루카 24, 1의 날과 같은 ‘바로 그날’)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쯤 떨어진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가던 두 사람(루카 24, 13 참조)의 체험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날”(루카 24, 13) 그들은 무슨 까닭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여행길을 가고 있었는지 복음서가 그 이유를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몇 가지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 엠마오라는 동네에 사적으로 급하게 볼 일이 있어서 갔을 수도 있습니다만, 복음서가 전하는 분위기로 보아서는 아마 예수님에 대해서 이제는 기대를 저버리고 예루살렘을 떠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날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돌아와서 전하는 여자들의 말을 사도들은 “헛소리처럼” 여기고 “믿지 않았다.”(루카 24, 11)는 그 분위기로 보아서 이제 더 이상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식어버린 제자 두 사람이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들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루카 24, 21∼24)

 

이렇게 말하는 그들은 아마도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그 모든 기대가 무너진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었지요. 혹시 그분이 정말로 부활하셨다면 제자들 있는 데로 돌아오셔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겠지만, 하루 종일 기다려도 그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아마 “에이! 무작정 그 분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분명히 참혹하게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겠어? 아마 그 시체를 여우가 물어갔든지 해서 없어졌기 땜에 무덤이 비어있었던 게 아닌가? 바보 같이 기다리지 말고 어서 집으로나 돌아들 갑시다!” 하면서 일어나 낙향하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에 허송세월 한 것에 대한 후회스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었기에, 정작 부활하신 장본인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당신, 요즘 예루살렘에서 나자렛 사람 예수 때문에 소란이 있었던 것을 모르오? 우린 그 사람 따라다니다가 허송세월하고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오.”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것입니다(루카 24, 15∼24 참조).

 

그들은 자기들의 길에 불쑥 끼어들어 대화를 걸어오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지요(루카 24, 15 참조). 아마도 이제는 예수님의 체취나 기색을 더 이상 알아볼 필요조차 느끼지 않을 만큼 이미 그 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루카 24, 16)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치시기 위해 그분은 구약성서에서 알아들어야 할 당신에 관한 예언들을 설명해주셨습니다(루카 24, 25∼27 참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다가 날이 저물어 동네 어귀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그 분은 가시는 곳이 더 먼 듯 계속 길을 가시려 하자 그들이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갑시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습니다(루가 24, 28∼29 참조). 아마 그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던 듯합니다. 왜냐면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자기들의 실망감이 잦아들고 마음에 열정이 솟기 때문입니다(루카 24, 32 참조).

 

그래서 그분과 함께 주막에 들러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그 분의 모습은 전에 자기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시던 그런 분의 모습이었습니다. 빵을 떼어 나누어주시는 모습이 말입니다(루카 24, 30 참조).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는데, 예수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습니다(루카 24, 31).

 

여기서 우리는 그 두 제자들이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자 그분의 모습이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루카 24, 33),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즉시 돌아갔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또한 주목해야 합니다.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본 그들은 사라지신 그분을 보려면 그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예루살렘의 그 제자들의 모임에 어서 빨리 가야 한다는 깨우침으로 그 삼십 리 길을 황급히 되돌아 간 것입니다.

 

황급히 돌아가서 합류한 제자들의 그 모임에서 그들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는 시몬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루카 24, 34 참조). 그리고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루카 24, 35) 전하게 됩니다. 이 극적인 상황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주일미사란 공동체적 체험


여기서 저는 주일미사가 주말의 레저 생활에 있어서 일종의 걸림돌이 되어 가는 작금의 사회적 현상 속에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주말 레저란 단적으로 말하여 개인적 휴식 내지는 각자의 즐기기를 위한 여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주일미사란 즉, 일요일(주간 첫날)에 모여서 주님의 빵을 나누는 일(미사·성찬)이란, 공동체의(개인적이 아닌) 체험인 것입니다. 길을 가던 그 사람들은 즉, 예루살렘 공동체에 머물러 주님을 기다렸을 제자들의 모임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주일 신앙이란 ‘공동체의 날에 오시는 주님 만나기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인의 편의와 각자의 즐기기가 우선인 추세라면, 우리 천주교의 신앙은 현대생활에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제자들의 체험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 때문에 혹은 힘겨워하고, 혹은 공동체에서 실망하고, 그리고 세상살이 때문에 시달린 몸을 안위 받고 싶으나, 교회에서 얻는 기대는 찾기 어렵고, 그래서 더더욱 주님이 제시하신 삶의 길이 현실과 상충되어 방황하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엠마오로 낙향하던 그 두 사람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문득 다가와서, 왜 그런 방황을 하며 절망의 길을 가고 있느냐고 묻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다시 달구어 주시면서 희망을 키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함께 애환의 식사를 하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믿음의 공동체에 다시 돌아가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주일이면 공동체에 돌아와 그분이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다시 모인 사람들로서 희망을 증거 하면서 그분과 빵을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주일미사란, 사실 개인적으로 각자 흩어져 가던 사람들을 일주일 마다, 즉 ‘주님의 날’마다, 함께 사는 새로운 삶의 자세로 돌아오게 하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그렇듯 우리는 세상에서 일주일간 헤매다가도 주일이면 방황을 멈추고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주말 레저의 걸림돌 또는 주말 사교의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되살리는 부활의 날입니다. 그 날 그렇게 부활의 주님은 우리 공동체에 즉, 우리의 모임에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렇게 오셔서 당신 자신의 몸을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바치시던 모습이 되어 우리의 빵으로 떼어 나누어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주님과의 이 모임은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행복하게 합니다.

 

주일미사란, 주간 첫날 그리고 그 여드레마다 즉, 일요일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뵙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엠마오 체험’은 주일(主日)이 어떤 날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닫는 체험입니다. 그 체험이란, 빵을 떼어 나눔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밥을 함께 나눠 먹는 체험’인 것입니다. 그건 삶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한 식탁에 모이는 체험인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성찬(빵 나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主日)’이란, 세상에서 각자 흩어져 자기 갈 길로만 치달아 가던 사람들이 삶을 함께 하는 자리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가정의 일에서, 사회나 교회 공동체의 과업에서, 국가적 책무에서 우리 각자가 소홀히 하고 개인적 이유를 달아 비겁한 행로로 일탈되었던 마음들이 가정과 공동체와 국가적 자기 책임의 마음을 되찾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일요일’이라 부르는 날은 ‘주간의 첫날’로 우리 교회가 표기하여 세계 모두 그런 캘린더를 사용하고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여, 일요일은 ‘주말’이 아니고 ‘주초(주간 첫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롭게 한 주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혹 주말로 착각하여 휴가차 객지로 떠난 교우들이라면, 그 유원지나 관광지 근처에 ‘엠마오의 주막’ 같은 인근 성당을 찾아서 거기 주님을 만나 함께 빵을 나누다가(미사를 봉헌하다가) 그 두 제자들처럼 문득 정겨운 자기 본당 공동체가 연상될 것입니다. 그리고 엠마오의 그들처럼 급히 공동체로 돌아가시고 싶은 뜨거운 마음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삶을 함께 하는 자리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은 것, 그것이 눈을 뜬 것입니다.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주간의 첫날, 그 함께하는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삶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가정, 공동체, 국가)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 그것이 곧 주님을 뵈옵는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별히 이번 부활절에 당한 세월호의 참사로 겪은 슬픔의 자리에 주저앉아 절망하고 있는 국민 일원들의 마음을 함께하는 오늘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다시 일어나야 할 국가공동체 앞에 우리 모두의 각자가 책임을 통감하는 새로운 사회를 기약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각자 각자가 자기 탓을 깨달아 불행을 기꺼이 짊어져 삶을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님을 만나는 새 날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이 그 날입니다. 주님의 날이자 공동체의 날, 그 날이 오늘 주일(主日)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이란 ‘모두 함께 주님 만나 새로운 세상을 여는 날’입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89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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