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

2014년 5월 25일 10시 만수리공소

살아있는 확신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있나?'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4, 19)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문득 저의 오래전 편지 쓴 내용이 회상됩니다. 45년도 더 된 오래 전, 제가 월남 전쟁터에서 조국 고향의 부모님께 보내던 편지의 내용을 오늘의 예수님 말씀에 감히 얹어 회상해봅니다. 그 월남 전선에서 고향의 부모님께 가끔 편지를 드리곤 했었지요. “부모님, 저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전쟁터에서 결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갈 것이니, 부모님께서는 아무 걱정 하시지 말고 건강하게 사시면 제가 살아 돌아가서 부모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이 편지는 아마 열흘도 더 넘겨서 한국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이 편지를 받으실 그때까지 저는 다치거나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에 편지 보내면 그걸 받으실 때 제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증명이 될 것입니다. 매번 저의 편지 받으시는 것으로 부모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세요. 꼭 저는 살아서 건강하게 고향에 돌아갈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기다리세요.”

 

이제 45년도 더 지난 옛적의 그 추억입니다만, 그 전쟁터에서 저 자신은 죽는다는 불행을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 없이 멀쩡한 몸으로 귀국할 것이라 믿으면서 그 1년 동안 전쟁터에서 지냈습니다. 며칠 동안 야전에서 빗물 피할 지붕 없이 물구덩이 속에서 밤을 새워 매복하던 중에, 또는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상처투성이로 며칠간을 기진맥진으로 정글 작전에 이끌려 다니면서 가끔 부모님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만, 제가 그 전쟁터에서 죽게 되어 부모님을 뵙지 못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생각해도 그것이 이상합니다. 작전 중에 실제로 제가 죽게 되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질 않았습니다. 그 점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저희 부대가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여하튼 제가 속한 부대의 작전은 다른 부대와는 달리 늘 접적실전(接敵實戰)의 위기 상황을 당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늘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파월기간을 마치고 귀국선에 몸을 싣던 날에도 저는 사지(死地)를 벗어났다는 안도의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저는 그 전쟁터에서의 처절한 실감 없이 귀국하였습니다. 귀국선을 내린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제가 부친 짐을 서울역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아 다시 고향으로 부치고 저녁때가 되어 모교인 신학교에 가서 자려고 혜화동에 갔습니다. 때는 12월 중순의 겨울 저녁시간이었습니다. 마침 신학생들이 저녁 식사 후에 삼삼오오 운동장을 거닐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묵주기도 시간 후에 이어질 저녁의 끝기도에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성당으로 가기 위해 신학교의 복도에 들어섰습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방에서 신부님 한 분이 나오시다가 저를 보시고 “누구냐?” 하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이셨습니다. 군복 입은 제가 이름을 대자 “너, 군대에서 오는 길이냐?” 하시고는 무슨 부대에 있느냐고 재차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 1년 동안 월남 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하고 제가 대답하자 그 신부님은 덥석 저를 끌어안으면서 “그래? 어이구 내 새끼야, 살아 돌아왔구나! 어이구 이 새끼야, 그래서 얼굴이 이렇게 새까맣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 최민순 신부님의 “살아 돌아왔구나, 어이구 내 새끼야!” 하시던 그 말씀을 그 순간엔 참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나를 낳은 아버지도 아닌 분이 “어이구 내 새끼야!”라고 말하다니…! 그런 다음에 성당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서 신학생들 모두 바치는 저녁 끝기도를 함께 바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그 끝기도 마지막으로 바치는 ‘성모 찬송’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그만 성당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혹시라도 신학생들이 눈물범벅의 내 모습을 볼까 해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운동장을 마구 뛰어가서 캄캄한 구석의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을 뵈올 때는 참으로 더욱 이상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저를 맞이하시는 부모님은 최민순 신부님처럼 “살아 돌아왔구나, 어이구 내 새끼야!” 하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의 손과 얼굴을 만져보시면서 아무 말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리시고, 아버지께서는 돌아앉아 담배만 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님이 저에겐 이상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 1년 동안 객지 나갔다가 돌아온 것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월남 전선에서 보름 정도 간격으로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드렸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있을 것이니,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저와 부모님 사이에는 서로 ‘살아있는 확신’으로 지내왔기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으로 그 때를 회상해야 할까요? ‘늘 살아 있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아들은 그 살아있는 아들로 왔을 뿐이다’라고 저의 부모님은 생각하셨나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곧 죽으실 시각을 목전에 두고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과 제자들 사이는 결코 갈라질 수 없다는 확신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이는 죽음도 갈아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몸으로는 십자가에 달려 죽지만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사이에서는 결코 죽으시는 분이 아님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점을 그분의 제자인 베드로 사도께서 오늘 제2독서의 서간에 다음과 같이 확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적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살아계십니다(Mortificatus carne, vivificatus autem spiritu. - He was put to death physically, but made alive spiritually.)”(1베드 3, 18) 라고 말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이란 그래서 우리와 주님 사이에 죽음일 수 없다는 뜻으로 베드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살신성인한 전명세(바오로, 1931~1971) 부기장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러한 사이에 대해서 제가 인상 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 43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이었는데 육군 파일럿 출신으로서 대한항공의 국내선 부기장으로 근무하던 전명세 씨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속초와 서울 간 노선의 항공기 내에서 갑자기 무장 간첩이 수류탄을 들고 항공기의 기수를 북한으로 돌리라고 위협했습니다. 기내의 모든 탑승객들이 전율하고 있는 그 순간에 그 전명세 씨는 수류탄을 들고 있는 그 무장간첩을 끌어안고 함께 나뒹굴었습니다. 그 순간에 폭발한 수류탄의 파편들이 그 전명세 부기장과 무장간첩의 몸에 박히고 탑승객들과 항공기는 무사할 수가 있어서 기장은 기수를 돌려 속초 공항에 무사히 귀항(1)할 수가 있었습니다. 1971년 가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 용감한 전명세 씨, 즉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그분 장례식 후에 제가 만난 그분의 미망인은 담담한 어조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을 하여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저의 남편은 항공기와 함께 늘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의 가슴 속에 그렇듯 멋있는 남편으로 저와 함께 늘 살아있을 것이고, 그러한 살신성인으로써 목숨을 살려준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1). 비행기는 속초로 무사귀환하지 못했고, 휴전선 부근 초도리 해변에 비상착륙하며 대파되었다.

요한의 백과사전.


멋있게 삶을 바친 남편에 대한 그 미망인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당신이 죽으신 후의 부활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분명 새로운 삶의 성취에 대한 언명인 것입니다. 그것은 즉 육체에 따라오는 것 그것이 죽음이지만, 영(靈)으로 성취하는 것은 삶이라는 선언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Seminatur corpus animale, surget corpus spirituale. - When buried, it is a physical body; when raised, it will be a spiritual body).”(1코린 15, 44) 그렇습니다. 부활이란 곧 그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물질적 삶, 즉 돈과 세상 명리에 의한 삶의 추구는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말 할만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 물질적 삶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죽음이라는 마지막 지점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이 세상 삶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영역은 ‘지나가 버리는 한 구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간을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의 신앙으로는 이 구간 안에서 미리 이 구간의 다음에 올 삶을 끌어다 살고 있습니다. 즉 세례 받아 새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지니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 부활한 생명이란 다른 말로 영적 생명(靈的 生命)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이란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영적 세계로의 전환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여 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22) 하신 그 부활의 선물은 그렇듯 영적인 삶을 부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넣어주신 것은 곧 우리의 삶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소멸할 육체의 삶을 마감하고 영적 삶으로의 전환을 이룩하는 것이 곧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 삶은 우리가 세례 받은 순간에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육체적 기운으로만 추구하던 삶을 마감하고 이제 성령으로 채워진 영적 삶을 살기 시작한 시점이 우리의 세례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례 받은 이후 우리는 이제 사라져 가는, 즉 땅에 묻히게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삶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즉 끝나버리게 될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을 육체의 욕구를 채우는 삶이 아니라 성령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정말 살아있는가?” 이 질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 우리 사이에 살아계심을 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그분을 지금 뵙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즉 살아있다면 그 신앙을 고백합시다. 사도신경의 끝말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있는가?”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92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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