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법동 성당 바오로 신부님 강론말씀
2014831일 연중 제22주일

다음은 연중 제22주일의 대전 법동성당신부님 강론을 받아적어 재구성한 것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죽음 뒤에 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의 가르침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이 예수님 말씀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분들은 듣기는 좋지만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일만 생각하면 망하기 십상이고, 산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타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열심한 신자분들 중에서는 수도 없이 내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한다고 듣고 배우지만, 사실상 막상 시련이 닥치면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닥쳤는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성당에 다니고, 단체활동도 많이 하고, 또 교무금도 열심히 다 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야 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한 끝에는 과연 하느님이 계시기는 한 걸까?’ 회의하면서 성당을 떠나기도 합니다.


사실 성당에 다니면서 가족의 행복과 평안함을 바라는 마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모든 이의 마음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 사도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함께 동고동락하던 스승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한 바 있던 바로 그 분이 이제는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을 시켜주시고 열쇠를 주시겠다던 그 분이 스스로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많은 시련과 고난 후에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시니 제자의 입장에서 그 말씀을 말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장 믿고 따르는 분이 조금 있다 고통과 시련 끝에 죽임을 당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앞에서 ! 그러십시요!” 그럴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결코 그런 일 없도록 돕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베드로처럼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도리로 말하는 베드로에게 전혀 배려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단호하게 질책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그러니 베드로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만일 예수님이 내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보통 어째서 스승님께서 그런 심한 말을 이렇게 한단 말인가? 이런 배려없는 분을 과연 내가 따라다닐 수 있겠는가?’하면서 실망을 하면서 떠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하느님 일과 사람의 일 사이에서 자주 긴장과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일을 가장해서 사람의 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것과 과연 사람의 일이고 하느님의 일인 것인지 분간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지극히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비다. 사람이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우리 가정과 본당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일이란 것은 바로 하느님 관심에 우리 마음을 맞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이란 사람들 관심에 우리 마음 맞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께 맞추지 않고 나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면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외치실 것입니다.

 

어느 아이가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다가 미끄러져서 얼음물 아래로 발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어서 집에 달려갔는데 집에는 막상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얼음물에 빠진 발을 녹이는 중에 문득 어항 속의 물고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발만 빠져도 이렇게 추운데, 저 물고기는 항상 어항 속에 있으니 얼마나 추울까?’ 그래서 소년은 뜨거운 물을 어항 속에 부어줬다고 합니다. 물론 고기는 죽고 말았습니다. 과연 소년이 그 물고기를 사랑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아주 뜨겁게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기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이 베드로나 소년의 모습은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가 지닌 얄팍한 지혜로, 또한 사랑이라는 허울로 은근히 상대방을 억압하는 사람은 아닙니까하느님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이성적으로, 경험적으로 판단으로 생각을 했기에 베드로는 엄한 질책을 받은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요구하신 것은 해탈을 하라거나 도를 통하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그냥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갖고 오라는 한 것입니다. 더 큰사랑을 위해서 자기자신을 버리는 고통과 십자가를 질 때 더 큰 사랑과 생명에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 사랑의 방법이고, 그 모든 일에 방해되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김장김치가 잘 되려면 다섯번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추가 땅에서 뽑히면서 한번 죽고, 통배추가 날카로운 칼로 배가 반으로 갈라질 때 두 번 죽고, 굵은 소금에 무참히 절여지면서 세 번 죽고, 다시 맵고 짠 고춧가루와 젓갈에 양념되어 뒤범벅이 될 때 네 번 죽고, 다시 장독에 차곡차곡 쌓여서 땅에 묻힐 때 다섯 번 죽는 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인기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생즉필사, 사즉필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말입니다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자신이 믿은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이니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신자 앞에는 그리스도가 가신 길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십자가에서 못 박히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하루하루 우리 의무에 충실하고 내 생각과 고집대로가 아니라, 복음의 말씀에 비추어, 그리스도와 이웃형제를 위해 봉사하는 것, 다시 말해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의 죽음이라는 체험은 모든 믿는 이들이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모세가 한 체험이며 많은 예언자들이 겪었던 체험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체험 중에서 오늘 제1독서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체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예형처럼 체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탄식의 표현, ‘주님의 말씀에 저에게 치욕만 되었습니다.’ 그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예언의 소명을 버리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버리고 싶어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주님 의 말씀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주님, 저를 당신께서 꾀시어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을 받습니다.’(예레미야 20,7)라고 말합니다예레미야는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그 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작정을 해도 심장에서 불타오르는 것을 간직하기에 지치고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게 쉽지 않고 너무나 힘겨운 일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위로를 찾고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믿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레미아처럼 그 말씀이 그심장 속에서 불타오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 제2독서의 말씀(로마서 12,1-2)처럼,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1 형제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서 12,1-2)


부활은 분명 십자가의 죽음 뒤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이미 그분 나라에서 그분의일을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이도 있지만,아직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우물 안에 갇혀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대부분의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를 오고가며, 마음속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살고 싶지만,쉽게 타협하며 삽니다.


그래서 오늘 하느님께서 강한 처방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유혹이 찾아올 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상의 작은 악습과 작은 유혹에서부터 강한 결단이 있을 때, 우리의 십자가는 하느님 나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2독서에서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 기도를 드리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도록 합시다.

 

2014-8-31 오전 10:30분 교중미사

대전 법동성당 바오로 신부님 강론말씀


이 글은 강론 말씀을 필자가 재구성한 것이기에 실제 말씀과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 내의 성경구절은 글의 구성을 위해 삽입된 것입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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