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승천대축일, 광복절

2014년 8월 15일 새벽 2시 30분 만수리공소에서


오전 10시 대전 월드컵 경기장의 교황님과 함께 하는 미사에 가기 위해

출발하기 전, 오늘의 특별한 축제에 대한 묵상


마리아의 처지, 우리 민족의 처지 

'마리아의 노래'를 '광복절 노래'와 같이 



믿음의 축일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듯이 성모님도 그 현세적 생애의 마지막에 하늘로 올림을 받았다는 믿음의 축일입니다. 예수님부활 후 하늘로 올라가심을 ‘주님승천(The Ascension of our Lord)’이라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돌아가시자 하느님께서 그분을 살려 육신과 함께 하늘로 불러올리셨다하여 오늘 축일을 ‘성모몽소승천(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이라 합니다. 몽소승천(蒙召昇天)이란, 승천의 은덕을 입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능동형이라면, 성모님의 승천은 수동형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신 당신 자신 능력으로 하늘로 올라가신 반면에, 성모님께서는 인간으로서 하느님께로부터 하늘에 불러올림을 받으셨다는 뜻이 오늘 축일의 경축 내용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수동형

 

그런데 여기서 ‘승천’이라는 말의 뜻은 하늘과 땅과 지옥이라는 세 층에 의한 실존적 삶의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신앙적 표현입니다. 우주에서의 공간적 비상(飛上)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즉 실증 과학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적 차원에서 얻어지는 실존적 삶의 완전한 상승을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승천을 통해 알아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모승천’의 의미는 그분의 생애 끝에 하느님께로 가신 분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그러한 승천에 대한 믿음은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4세기부터 교회 안에 전설로 전해져왔습니다.

 

믿음의 근거


그러나 성모승천의 그 의미는 단순히 전설적인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삶이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가장 예수님과 가까운 삶이었기에 당연히 마리아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겪으셨고, 그럼으로써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듯이 마리아께서도 하늘로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계신다는 뜻이 성모승천의 믿음에 대한 근거입니다.

 

대축일이 된 건 한국전쟁통이던 1950년 11월 1일


이 축일이 그러나 교회의 ‘대축일’로 제정 공포된 것은 1950년 11월 1일 당시 교황 비오 12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오늘 교황님과 함께하는 올해의 이 축제에 특별히 상기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은 그해 8월 15일에 지옥의 터널 같이 길고 긴 일제강점의 종말을 맞이하였지요. 세계대전으로 인한 폐허 위에서, 그리고 우연찮게도 우리 민족의 해방의 날을 삼아 이 ‘성모승천대축일’이 제정되었다는 점을 저는 상기하고 싶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생명이 대량으로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의 가을은 6․25 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기간이었습니다. 밀고 밀리며 총과 대포와 전투기로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참극 속에 국제적 참전군들과 어울려 내 나라 내 땅을 난도질 하던 그 늦가을에 교회는 ‘성모몽소승천’을 세계가 기억해야 할 축일로 선포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그 야만적 살상, 그리고 인간들 스스로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폭력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세계가 끊임없이 실감하고 우리 민족이 절망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의 사랑이 선포되는 땅에서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며 죽이고, 삶의 터전을 초토로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독일인들이 600만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양대 진영 수천만 명이 희생되었고, 연이어 한국 민족은 동족상잔의 광기 속에 휘말려 있던 그 비극…! 이러한 야만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인류와 우리 민족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인류에게 가장 혹독한 체험, 결국 실존철학


그러한 비극은 인간들 자신이 인간에게 절망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한 체험이었던 것입니다. 도대체가 그럴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인간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참람한 회의(懷疑) 속에 빠진 인류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비극 체험으로 가득했던 그 시대에 풍미했던 사상이 그래서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일컬어 실존주의 철학이라 했었지요. 그 실존철학의 시대는 인간들 사이에서 이제는 신(神)을 논하거나 신을 대할 생각의 장(場)을 마련할 수 없다는 무신론적 사유(思惟)의 갈래와, 또 한편 그러할수록 하느님 앞에 인간 자신의 절망적 실존을 낱낱이 되짚어야 한다는 유신론적 사유의 갈래로 고민을 엮어나갔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들 자신에 대한 절망만이 가득하던 시기,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즉 동족과 형제 사이에서, 더욱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게 무서운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모 승천과 광복의 운명


그러한 암흑의 한 가운데서 우리 신앙으로 인간을 다시 보게 하는 희망의 터무니를 교회가 제시한 것이 곧 ‘성모승천’에 대한 확신이었던 것입니다. 성모승천,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그러한 확신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비감의 마리아 처지가 승천의 삶으로 운명이 바뀌는 그것, 그것이 우리의 바뀌는 운명과 같은 광복(光復)에 맞닿아있습니다. 성모승천이 왜 그러할까요?

 

저는 우선 세상에서 가장 비극을 체험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성모 마리아가 아닐까요? 아들 하나 낳으면서 떳떳하게 낳지도 못한 일종의 미혼모로서 손가락질을 당하던 여인이었지요. 하느님의 계시로 알아볼 줄 아는 눈이 아니고서는 그 여인의 처지란 알 만한 사람들로부터 일생 비웃음거리일 뿐이지요. 그러면서 어렵사리 아들 하나 키운 것이 가출하더니 천한 것들하고만 사귀면서 드디어 정신 나간 짓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동네 사람들이 어서 찾아가 그 아들 붙잡아오라는 것입니다. 하여, 아들을 찾아간즉(마르 3, 21∼35 참조), 엉뚱한 소리나 하고 어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던 아들이 드디어는 역적으로 몰려서 젊은 나이에 붙잡혀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고 처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되는 꼴을 어머니로서 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죽어가는 아들이 뭐 보잘 것도 없는 자기 패거리 중 한 젊은이를 지목하여 대신 모자지간처럼 인연을 맺어 지내라고 말하고는 처참하게 죽어버렸습니다(요한 19, 25∼27 참조).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묻는 것


이러한 성모 마리아의 처지를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네 말로 하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도 가기 전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앞이 안 보인다 하지요. 그런데 어렵사리 시집가서 남편 의지하고 애 낳아 살다가 어린 것 놔두고 남편이 죽게 되면 하늘이 무너진다 하지요. 그나마 아들 하나 키우느라고 갖은 고통을 참아나가는데 갑자기 그 아들마저 사고로 죽어버리면 그걸 뭐라 합니까? 가슴에 못이 박힌다 하기도 하고 그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하지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성모 마리아의 처지를 상상해보면 그분의 처지보다 더 못한 여인이 또 있겠나 싶습니다.

 

그러한 성모 마리아께서 그 생애의 평소에 어떻게 사셨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알려지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분의 삶이란 이 세상에서의 희망이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여인이었을 성 싶습니다. 그분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의 삶에 대하여 알려진 이야기라고는 어려서 서울 데리고 갔다가 미아 되어 찾느라고 혼비백산 한 일(루카 2, 41∼50 참조), 그리고 그 후 성장하더니 가출하여 정신 나간 짓을 하고 다닌다는 창피한 소문 때문에 그 아들을 찾아간 일 말고는, 그 아들과의 관계에서 기껏해야 조금 그럴싸하게 자랑스러운 일화 딱 한 가지 밖에 없지요. ‘카나’라는 마을의 어느 혼인 잔치 집에서 아들의 실력발휘를 기대하여 어머니로서 언질 한 마디 했더니,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해줘서 사람들을 즐겁게 한 일이 그것이지요(요한 2, 1∼11 참조).

 

이렇듯이 알려지지 않은 그 여인의 삶, 그리고 그 아들과의 삶에서 이렇다 할 것이 없는 어머니로서의 삶이 성모 마리아의 삶이었고, 결국 비극의 종말에 그 자신의 여생이 어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만 처녀였던 그 여인이 하늘의 기운으로 애를 갖게 되는 운명이 기구하게 설정 되었고, 그 하나의 아들을 초라하기 그지없이 출산했다는 짤막한 이야기 밖에 그 여인을 우리에게 더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그 짤막한 이야기 중에(루카 1∼2장 일부 참조) 우리가 그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듯한 것이 딱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곧 오늘의 이 대축일에 우리가 복음으로 읽는 ‘마리아의 노래’라는 것입니다. 이 ‘마리아의 노래’ 그것 한 가지로써 성경은 사실상 마리아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것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당한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되길 바라가기보다 자기의 마음속에 모두 간직한 입장에서(루카 2, 19 및 51 참조), 주님께 찬미를 올렸습니다(루카 1, 46∼55).

 

마리아의 노래


성경이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하여 전하는 오늘의 이 성경구절, 즉 ‘마리아의 노래’란 사실상 마리아 자신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들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노래이자, 더 나아가 인류 모두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사실상 이 노래가 하느님 백성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뱃속에 하느님의 아들을 임신하게 되어, 그 하느님 아들의 소개자 노릇을 할 아기(요한)를 갖고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읊었다는 마리아의 이 노래는, 사실상 마리아 혼자서 읊은 찬송의 노래라기보다는 그 마리아와 더불어 하느님 백성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인 것입니다.

 

그 노래는 마리아가 처녀이면서도 세상의 갖은 수모를 앞에 두고 미혼모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낳게 될 그 처지로 운명이 바뀐 사실에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비극적이면서도 하느님 때문에 운명이 바뀌게 된 사실에 대한 전적인 자기 긍정이자 감사의 발로가 그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받아드린 신앙의 발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앞에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루카 1, 38) 하면서 자신 안에 어떤 형태로든 하느님께서 이루실 것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불렀던 마리아처럼, 우리 모두 또한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써 참 삶을 살게 된다는 확신에 차서 그 ‘마리아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마리아 개인의 노래라기보다는 초기 교회에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운명이 하느님 때문에 전적으로 달라진 삶이라는 확신으로 불렀던 노래인 것입니다.

 

박해받던 그리스도인들은 왜 마리아의 노래를 불렀나


그래서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들이 저 비극적 운명의 여인 마리아와 동일한 운명의 노래로써 즐겨 불러 신앙을 고백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저지르는 비극과 절망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 우리 신앙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더불어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의 최악의 절망 가운데서 저 마리아의 처지를 회상하여 하느님을 향한 신뢰로써 희망을 얻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 아들의 비극에 함께한 신앙의 모범으로 그 아들 예수와 함께 하늘을 차지하게 되었음을 오늘 축제로 승화 표현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 때문에 절망에서 희망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고 그 ‘마리아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부르는 축제가 곧 오늘의 성모승천 대축일인 것입니다. 죄악과 슬픔의 깊은 나락에 떨어져본 우리라면,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배척과 생명의 위협을 당해본 우리라면, 또 그리고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식민지의 수모와 압제와 전쟁의 참화를 당해본 우리라면, 그래서 암울의 삶을 빠져나오게 되고 사람들 사이에 새롭게 인정을 받으며 사랑하는 사이로 변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그 광복의 체험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왔을 때, 오늘 축제에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해서, 우리는 작금의 우리 인류 세계의 암울한 현실과 우리 민족 분단의 지속적인 어려움의 상황에서 우리 민족해방의 이 광복절에 맞물려 신앙의 고백으로 마리아의 이 승천대축일을 지냄에 대한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나아감이 우리 그리스도인과 인류와 우리 민족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감사하여 오늘의 축제를 올려야겠습니다.

 

이러한 축일을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올리게 된 우리 한국인들의 오늘은 더욱 각별한 희망의 축전이 됩니다.

 

동족의 남북 분단 7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체험한 상호증오의 부끄러운 업보에 관하여, 우리나라의 국가원수라는 분은 교황님 환영 연설에서 그 원인과 현재의 상황 탓을 북한 당국자들에게만 전가하면서 교황님께 한반도 평화를 기도해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교황님께서는,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정의의 실현으로 진정 평화는 가능하다고 천명하셨습니다. 불의를 척결할 그 정의의 실천은 자제와 관용을 통한 인간 상호이해의 용서와 화해를 전제로 한다고 또한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이 사회의 저변에서 절박한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들어 올려주는 데에 정의가 실현되고, 거기에 진정 평화가 있다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남북 간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갈등 관계에서도 동질적으로 적용됨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목하 현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말씀을 하시기에 앞서, 서울 공항 도착 시 거기 마중 나온 이들 가운데 높은 직위의 사람들에게는 의례적 인사를 나누시던 그분께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시고 한 손을 당신 가슴에 대면서,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시던 표정은 우리 모든 상처 받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찾아오신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절인 오늘,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우리와 함께 봉헌하실 교황님께서는 그렇듯 당신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것을 우리에게 털어놓으시면서 아마도 마리아처럼 주님께 기도하실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당하신 비극을,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이자 세월호 가족 및 제주도 강정마을 사람들과 밀양 고압선 마을 사람들과 장애인들과 기타 모든 우리 주변의 비애에 젖은 사람들의 처지로 보시면서, 교황님은 우리와 함께 기도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처지에서 참다운 정의의 실천을 우리 모두에게 촉구하시면서 우리 민족과 세계의 평화에 대한 희망을 던져주실 것입니다. 아마 무덥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교황님과의 한 자리에서, 정의의 바탕 위에 평화가 퍼지는 희망이 햇발처럼 오늘 거기 퍼지리라 기대하면서 대전으로 출발하는 지금 이른 새벽, 가슴이 뛰고 있습니다. 광복의 기쁨처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면서 출발합니다. 그 노래는 우리 민족의 광복절 노래와 같습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07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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