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정의철 다마소 신부님의 전례학 강의 3교시 내용입니다.

2015-1-3 토요일 오후 3시20분~4시05분, 가톨릭대학 진리관 3층 대강당

전례학 3교시, 가톨릭교리신학원 2015년 1월 동계연수


아래 내용은 필자의 기록과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기에 실제 강의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강연자 정의철 신부님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읍니다. -필자 주 



전례학 3 교시


2015년 1월 3일(토) 오후, 서울 가톨릭대학 진리관 3층 대강당에서 열린 전례학 특강 모습


회상이 중요했다

초기 교회 신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회상'이었습니다. 우선적 회상! 그리스도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 중에서 예수님의 죽으심 바로 그 사건을 기억하고 축제로 미사 성찬례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이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 이건 그당시 성찬례 모습 미사인데, 뭘 기념하는 것이라고 했죠?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게 초기교회 성찬례 의미입니다. 예수님 사건 가운데도 예수님 죽으심을 기억하는 축제가 초기교회의 모습이었고, 그래서 회상제사입니다

두번째의미는 현존 제사입니다. 누가 현존한다는 것이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성찬례가 이뤄질 때마가 화기애애하고 기쁨에 넘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가운데 계시다'는 어떤 마음자세냐. 성찬례 이뤄지는 건 매일은 아니고, 예수님 최후만찬 따라 저녁, 주님의 날 저녁, 유다인들 시간개념으로 주님의 날, 주일은 토요일 저녁부터 그다음 날 해질 때까지입니다.

그리스도는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그래서 토요일 저녁 성찬례 임하는 마음자세는 우리가 농담으로 학생 당시 바닷가 MT 가서, 토요일밤 '그대를 만나리' 그런 노래 부르죠. 토요일 밤 그대를 만나는 거에요. 내가 성찬례 가야 그리스도 만나는데 매일미사 없으니, 그리스도 만난다는 설레임 갔을 때 그 성찬례 분위기 화기애애하고 기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교회 신자 모습으로 돌아가야하죠. 갈수록 요즘은 감각적인 토마스사도 처럼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니 정말 내가 성찬례의 의미라든가 그런 걸 올바로 알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스도는 현존재라는 것을 체험합니다.

세번째는 종말론적 의미를 포함합니다. 유다인들도 마찬가지로 메시아는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희망제사입니다. 초기교회 성찬례 의미는 종말론적 의미가 있어요. 성탄시기와 대림시기를 거치면서 두가지 사상.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다는 육화의 의미와 대림때 나타나시는 사상 두가지. 미사 안에서도 이제는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를 직접 뵙기 되길 기다리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기도 다음 부속기도로 종말론적 사상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이어지는 주제로 '아멘'으로 끝을 맺는 게 아니라, 다음에 영광을 드립니다. 같은 주제는 끊지 않죠. 부활 때 제3독서 다음인가요? 

이 세가지 의미는 초기교회와 오늘날이 마찬가지죠. 초기교회 성찬례는 어제 예수님을 기리고 오늘 현존 오늘의 그리스도를 기리며 내일의 인자를 기다리는 축제가 미사성찬례 이런 의미 담은게 오늘날 드리는 미사에서 환호로 터져나옵니다. 그게 세가지 의미 담아 환호 터트리는 게 신앙의 신비여! 그랬더니 신자들이 주님께서 오실때까지는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환호죠. 

예수님 생애 사건의 신비 자체를 되새기는 것

오늘날 미사 구조 보면, 말씀 전례란 예수님 생애 사건을 신비 자체를 되새기는 거에요. 그래서 말씀 전례 안에서 중심은 복음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독서의 관계를 보면 예전에는 복음과 독서를 차례대로 읽어왔는데, 오늘날은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성서 주요 부분들 신자들 알아듣도록 미사개편, 신자들이 전례를 통해 알아듣도록 3독서 3년 주기로 합니다.

그건 특별히 가나다해로 돌아가며 성서 주요부분 뽑아서 내가 전례 안에서 성경 주요부분 다 듣도록 하는거죠. 3년 주기 했는데, 3으로 나눠서 1이 떨어지면 가해입니다 복음은 뭐냐면 네복음 있는데 3년 주기 돌리는데 공관복음 중심 나눕니다. 

가해는 주로 마태오, 나하는 마르코, 다해는 루카 그리고 요한은 특별시기인 사순, 부활, 대림, 성탄 등에 봉독됩니다. 

그래서 이 공관복음 중 가장 짧은 게 마르코에요. 다른 건 다 채우지만, 마르코는 짧아서 한 해 못 채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끌어 들입니다. 연중 17주일부터 21주일은 요한. 그중 가장 긴 장이 성체 생명의 빵 요한6장을 4주간 계속 나해 마르코 때 읽습니다. 반복해서. 그러다보니 사실 나해는 17주 부터 21주까지 힘들어요, 같은 주제 계속 강론하면 주제는 생명의 빵이죠. 

그 다음 복음 중심이니까, 주제가 용서이거나 회개라면 1독서와 복음은 연결됩니다. 구약인 1독서와 복음은 주제의 조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복음은 예를 들어 마르코복음을 차례대로 죽 가요. 그래서 1독서는 복음과 주제 조화시키니, 여기저기서 뽑아옵니다. 이사야서, 열왕기 봉독하다가 이렇게 복음과 주제조화로 하는 겁니다. 대신 2독서는 차례대로 합니다.

말씀 전례에서 중요한 건 말씀 봉독자는 누구나 할 수 있죠. 그런데 유독 우린 일독서는 남자가 해요. 그래서 시복식 미사에서 전 제1독서를 여성 시켰어요. 그런데 규정없는데 자꾸 어느 본당이나 1독서를 남자가 해요, 봉독자가 봉독을 하는데 두가지 영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이고 기술적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리 읽고 묵상해서 그것을 선포해야 하고, 기술적 준비는 인간의 말로 표현되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잘 듣도록 어떤 속도, 높낮이 음정 등을 감안해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독서자가 봉독하며 책 이름 중심입니다.

예를 들어 코린토 1서의 말씀입니다. 거기 저자명 붙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봉독자는 몇 장 몇 절이라고 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회중들이 하느님 말씀을 집중 선포하기 위해 해야 합니다. 비록 해설자가 해도 다시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이 필요하고, 준비하는 사람이나 봉독 듣는 이는 편안하게 들을 준비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죠. 그러나 준비 안되면 다른 게 눈에 안보입니다. 전례적 밀씀 전하는 것과 아나운서의 멘트는 틀려요. 전례에 기교는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전해야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러다보니 독서와 복음 통해 하느님말씀 잘 들으면 자연스럽게 성찬전례로 흘러가는 겁니다. 

감사의 기도

미사의 중요부분에 감사의 기도부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라틴말로 할 때는 사제가 혼잣말로 하면 혼자 빨리 하고 지나가니,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따라서 여러분에게 메모리를 시켜줘야 하는데 혼자 다해버리니까 뭔가 붕 떠버리는 거에요. 오늘날은 사제가 뭐 하냐면 이 기도 부분 와우는 신자들이 알아듣도록 이 부분 그리스도 인격이 대해 탁별히 성찬제정 축성문에서는 너희는 받아먹어라 내 몸이다 내 피다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중요한 곳인데, 감사기도 부분 보면, 항상 중요한 순간 들어갈 때마다 사제들 신자들에게 어떤 의식 고취시켜준다고 했죠? 

감사기도는 3중 대화
그래서 감사기도 들어갈 때마다 3중대화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그러면 사제가 '마음을 드높이'라고 해요
'주님께 올립니다.'

그리고 나서 이 바쳐질 감사기도의 내용과 의미를 미리 신자들에게 알려줘요. 그래서 주례 사제가 신자들에게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면 신자들은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래서 이 의미를 미리 알려주는 것은 여러분이 일독서 하고 나서도 화답송 하기 전 후렴 먼저 불러요. 시편 부르기 전에, 그 후렴은 시편 내용 요약이죠. 불려질 시편 내용 먼저 알고 부르라는 뜻으로 후렴 먼저 하고 시편하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기도하기 전에 자세와 그 기도 바쳐질 기도 의미와 내용을 미리 신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뭘 하죠? 또 메모리하죠? 하느님 위대하심을 사건을 통해 알려줍니다. 사제가 감사의 성호를 바칩니다. 하느님 이룩하신 사건들을 계속 알려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기도를 만들 때, 규정된 양식 만들 때. 일단 하느님을 불러옵니다. 뭐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하느님 속성 말해요. 빠다를 바르죠. 나열을 해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간이란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이게 기도 형태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느님 사건 세상에서 이룩하신 사건을 감사기도로 계속 메모리하니 자연스럽게 환호가 터져나옵니다. 그래서 '쌍투스 쌍투스 쌍투스' '거룩하시도다' 라고 세번이나 터트립니다. 세번은 한번 성부 삼인 최상급입니다. 

자비송에서도 자비를 비푸소서 세번 하는 건, 중세 때 모든 가르침은 한번 성부, 한번 성자, 한번 성령이지만, 원래는 그리스도께 자비 구하는 겁니다. 세번 다! 그런데 세번 나오면 무조건 성부, 성자, 성령 말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벳사이다 성모 추종자

제가 명동 보좌할 때 벳사이다 성모 추종자들 많았어요. 지금 [미카엘즈]라는 소식지 없어진 모양이네요. 뉴욕에서 한시간 떨어진 벳사이다 거기 성모님 발현하셨는데. 질못 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걸 따르는사람들의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성체를 손으로 받지 말고, 혀로 받고 받을 때는 무릎을 꿇고 받아야 한다. 꼭 성모님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명동 보좌 때 그런 사람 많았어요. 외국사람 탁 오더니 무릎 꿇어요. '하 벳사이다구나,' 그래서 명동 사제단에서 하도 그런 세상으로 이렇게 오는 사람들 교육상 일어서라고 해서 서서 손으로 받는 형태로 권유하자고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올바른 신앙은 개인신앙이 아무리 무릎을 꿇고 더 훌륭하다고 보아도,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게 올바른 신앙입니다. 우리 교회는 서서 손으로 받는 것을 1970년대 주교회의에서 허락한 겁니다. 

참고. 
잘 못하는 영어로 말하니 안 일어서요. 세번까지 참는다 했는데, 그냥 나가버려요. 성체를 받는 게 중요하지 무릎꿇고 혀로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추종무리가 이런 식이었는데, 불충인식이 있지만. 사실 손보다 혀가 더 더러워요. 그러나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에피클레시스

이런 걸 보면서도 가톨릭교회 오랜 기간 이런 걸 잘 준비해놓았다. 그래서 개신교는 간절히 원하죠. 우린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쌍투스' 그러다보니 이게 끝나면 제대 위에 놓인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 ... 그래서 성령 내려오는 안수동작, 축성 전형적 표시 십자표시 막 환호하다가 이렇게 들어가면 어색하니, 여기 연결기도 하나 넣습니다. 그래서 더할 수 없이 거룩함을 표현하고, 이 제사가 하느님 아버지께 드린다는 걸 위해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우리가 매일 듣는 얘기입니다. 연결기도를 하죠. 이 기도가 끝나면 제대에 올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누구의 작용이죠? 성령의 작용을 위해 불러들입니다. 내려오라는 기도, 성령강림 기도죠. 내려오라는 기도죠. 에피클레시스. 성령청원기도라는 희랍말이죠. 

어떤 목적이죠?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려는 축성 기원의 의미이죠. 그래서 기원문이니, 어떤 단어 나오나? 빌고 간구하는 기원 관련 단어 나오죠. 성령 불러드리니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제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 

너무 뚜렷해요. 신학적으로 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동작하면서 성령 내려오는 동작은 빵과 포도주에 축성하고 십자 표시를 하죠. 너무 당연한 동작이라 흘려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주의깊게 보셔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찬제정축성문을 바칩니다. 온 마음과 정신을 제대로 바치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 또 기념하길 예수님 수난과 죽음과 부활사건을 기억합니다. 아버지 ... 봉사하게 ... 계속 반복해서 

기념과 봉헌하고 또 성령 불러들이는데, 이 때 목적은 영성체 의식이 가까워지니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신자 상호간 일치위해 성령을 끌어들여서 일치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기원문에 성령을 간절히 청하오니...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 그리고 전구부분 ... 기도마무리는 영광송

짧은 한마디지만, 다 받아들이겠다는 허밍이죠. (3교시 끝)


위 내용은 필자의 기록과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기에 실제 강의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강연자 정의철 신부님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읍니다. -필자 주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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