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ㄴ)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필자는 학교 캠퍼스에 나붙은 현수막에 적힌 '철학도여, 너희가 진리를 자유케하라!'는 말에 깊은 전율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그 시절에 '진리'는 금기어였고, '자유'는 가방에 넣고 다닐 수도 없었다. 여러 대학들이 <진리와 자유>를 교훈으로 내세우긴 했어도,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이고 정치경제학자이기도 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란 작자의 <자유론>이란 책자가 불심검문에서 전경에게 발견되어 한동안 설명을 해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후반부는 대통령 직선제와 맞물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인 6.29 선언을 향해 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전국의 어느 대학이나 하루가 멀다 않고 캠퍼스를 행진하는 시위를 벌이던 때였다. 그리고 대학 울타리 밖에서 전투진영을 꾸린 전경들과 대치전을 벌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전경들은 대학 캠퍼스 밖으로 시위행진하려는 대학생 시위대의 진출을 막는 것이 최대 임무였다. 후임 전경들은 앞에서 방패를 바짝 들고 날아오는 돌이나 이런 저런 자잘한 비행체들을 막는 사이, 그 뒤에는 최루탄을 쏘아대는 선임 전경들이 방패를 든 후임 전경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었다. 무작위로 날아오는 돌들을 막아내던 후임 전경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방어하다가 뒤에 서있는 선임 전경의 몸으로 날아온 돌을 막아주지 못한 것이 뒷통수를 얻어맞는 사연이 될 것이다. 그러던 시절에 간혹 전경들은 학교 도서관 까지 들어와서 사과탄을 던지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민주화의 염원이 한데 힘을 모아 급기야 1987년에 이르러 6월 민주항쟁이 벌어지고 대통령 직선제를 발표하는 6.29 선언까지 이어지던 와중에도 도서관에서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에 매진하던 학생들이 사실상 존재했다. 아니 만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학교 정원대비 턱없이 부족한 그 시절의 대학 도서관들은 아침 7시에 와야 괜찮은 자리 하나쯤 차지할 수 있었고, 부자연스러운 사회의 공기에 갑갑해하면서도 어떤 모습으로든 돌아가는 세상의 일원이 되려고 부지런히 토플 공부를 하던 모습은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갈망했고, 자유와 진실을 원했다. 그것도 아주 열렬히 원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성경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보다는 '너희가 진리를 자유롭게 하라'는 성경 말씀에서 도치된 강력한 주문이 시민사회를 지배하던 때였던 것이다.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하자는 희망이었고 그것이 그 시절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너희가 진리를 자유롭게 하라!'는 인간적 욕망이 반드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 말씀과 대립적인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신앙은 '지식과 관계와 삶의 헌신'을 모두 포함하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의 8장 말씀을 좀 더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8,31 (ㄴ)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 안에서 머무르기를 요청하신다. 그것이 참 제자가 되는 길임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13장 15절에 가서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그래서 실천에 있는 것이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가는 것(요한 3,21)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당신의 길을 따라 가는 제자로서의 삶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정성과 힘을 다해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촉구하고 계신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연민과 자비, 정의와 평화에 헌신하는 삶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머무르는 삶의 자유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 공생활의 중심에 있는 것이 정의를 위한 활동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셨다. 그래서 너희가 진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은 인간인 동시에 신이신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는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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