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 월 16일 저녁 7시, 가톨릭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사회교리학교 제 109차 기본과정의 세 번째(3주차) 강의가 명동성당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총 13번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109차 과정은 2015년 2월 2일부터 5월 4일까지 매주 월요일 총 13주간 동안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가톨릭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됩니다. 그리고 2월 16일은 그 3회째 강의입니다. 강사는 서울대교구 목3동 성당의 주임이신 최부식 사도요한 신부님. 


봄을 알리는 보슬비가 서울의 저녁을 적시고 있는 탓인지, 강의에 참석한 분들은 지난 1주~2주차 보다는 약간 줄어든 모습이었습니다.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저녁 6시 40분경 명동성당과 가톨릭회관의 모습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님에 대한 추억


최부식 신부님이 칠판에 적습니다. 2009.2.16? 그리고 말씀하길, "2009년 2월 16일은 무슨 날이죠? 그렇습니다. 2월 16일은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날입니다." 최부식 신부님은 6년 전 오늘,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강의 내용입니다. 

다음 내용은 강의 정리자의 기억과 기록을 바탕으로 재편집된 것이며,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강사 신부님의 의도나 맥락과는 다른 의미와 표현이 발견될 수도 있음을 참고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인권과 민주화의 등불을 밝혀온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은 2009년 2월 16일 오후 612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선종(善終)하셨다. 1922년~2009년(87세)


19225월 대구 출생으로, 1951년 사제품을 받고, 1966년 초대 마산교구장,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 1969년 한국인 최초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1971년 성탄 자정 미사에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 의도를 비판하는 강론을 시작으로 19876월 민주항쟁까지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의 큰 어른이었다. 

 

오늘은 바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하신 날입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그 시절 제가 세례를 받았던 어린 시절은 요한 23세의 세상이지만, 실제로 가톨릭 세상 안에서 바라보던 시절의 모습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세상이었고, 추기경을 약 30년 남짓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몰랐어요. 놀랍게도 그 분이 보여주신 삶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 분이 살아계실 때에는 그러려니 했던 겁니다. 우리의 엄마와 아빠가 살아계실 때, "밤에 일찍 들어와라, 왜 문 잠궈놓고 뭐하냐 뭐하냐?"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 때는 몰랐지만, 간섭인 줄 알았던 그것이 사랑인줄이야. 


추기경님의 빈자리

진정한 사랑은 다르구나. 참 다르구나. 추기경님이 계실 때, 그 분 교구장이실 때 사제가 되었지만, 떠나시고 나서야, 훌륭한 줄 알았지만, 비로소 이토록 훌륭하신 분이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상대적인 차원에서도 이 분이 얼마나 고뇌 속에서 "예스"할 것은 "예스"하고, "노"할 것은 "노"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오늘 어느덧 6년이 흘렀습니다. 그 때 명동에 와보신 분들은 기억할 겁니다. 눈보라치고, 을씨년스러운 계절이었는데, '또로로르르르~' 이 둘레를 싸돌고 신자, 비신자 할 것도 없이, 스님도 서계시고, 그것이 인원동원해서 될까요? 정말 우러나오는, 대체 무엇이 가톨릭 신자 뿐만 아니라 무엇이 종교를 뛰어넘고, 어떤 면에서는 그 분에게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존엄성',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그래서 가르쳐서 될 것이 아니라, 공감해야 할 것. 그래서 '도로로로르르' 들리는 소리가 뭐죠? 공명이라고 하죠. 소리에 머물지 마시고, 인간 마음을 두드리는 울림, 그 공명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됨을 실천하셨던 일관된 모습들. 다른 이는 엄두도 못 내죠. 지위가 높고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 어떻게 바른 소리를 낼 것인가, 설령 바른 소리를 했다가, 내 역할이 끝나면 내 사랑하는 가정과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불안감이 생길 수 있어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군가 제3자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진정 중요한 것은 나의 변화입니다. 제가 어렵게 느끼는 것은 걸어오면서 전철타면서 느끼는 것 하나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들은 바를, 내가 암기했던 것, 내가 앞서 배웠던 것 여러분에게 전달해주는 '강사의 역할'로만 온다면 얼마나 헛되고 헛되고 헛될 것인가. 그것이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 해야죠. 그러나 여기는 지식을 원하고, 암기 암송하는 자리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자유 안에 열려있어요. 그런데 이 내용 중 한 문장이라도 내 것이 되는 순간, 놀랍게도 내 인생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저녁 6시 55분경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모습. 비가 오는 날씨 탓인지 참석자가 적었다.


인생 전체를 동시에 바라봐야

우리가 보통 아픈 이가 일어서고, 그런 기적 기대합니다. 가까운 분 아프면 낫기를 바랍니다. 사람이라면 그걸 가장 먼저라고 생각하는 게 사람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너머도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 다음도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으로 보았을 때, 나는 사람이니까, 내 인생 너머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내 인생 전체를 내 인생으로 바라보는 눈을 이 시간을 통해서 가지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겁니다. 그래서 눈 앞의 결과가 아니라, 그러나 동시에 부분적으로 눈 앞의 변화부터 시작되어야 전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작년에 102살, 올해 103살이 되신 자매님이 계십니다. 이 분 앞에서 저는 꼼짝 못합니다. 저에게 작년에 질문하시길, 막달레나 할머니이신데, 왕언니입니다. "제가 하느님 앞으로 가는 때는 언제입니까?" 그래서 저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계절이 흐른 후에 하느님께 물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봄입니다!" 그리고 "여름입니다." 그래서 그분 성체모시러 올 때 늘 떨려요. 작년 가을에는 "신부님도 거짓말하시오?"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님은 지체는 좀 연약해도 의식은 또렷하십니다. 한편으로 수명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같은 반에 7학년 2반이 더 흔들립니다. 저를 선생님이라고 하다가, 성체 모실 때는 신부님이라고 했다가, 갈 때가 되면 언제 오실랑. 저를 자식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10학년인 분은 의식이 매우 또려하십니다.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저녁 7시 02분. 소개를 받고 등장한 최부식 신부님이 강의를 시작하려는 모습



회갑 이후의 삶

회갑이라고 하죠. 다시 돌아오는 것이죠. 그래서 회갑 이후의 삶은 그가 60년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생각과 말과 행동 안에서, 그리고 정신과 영적인 면을 포함해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 이후의 삶을 판가름하는 건 아닌가? 사제로서 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이가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추기경께서도 22년생이세요. 87세이시네요. 8학년 7반이셨죠. 그런데 그토록 의식이 또렷하셨습니다. 그런데 15년인가 20년간 불면증이셨죠. 추기경님 상당히 힘드셨지만,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문헌 내용이 교황님 얘기라는 겁니다. 세상은 잘 돌아가면 하느님이 개입을 안 하시겠습니다만, 세상이 그렇습니까 여러분? 최근 뉴스에 가슴아픈 얘기가 있습니다. 콥트 교회. 서로마의 가톨릭은 아니지만, 로만 카톨릭을 대장으로 인정하는 가톨릭 신자로 볼 수 있는 그들을 IS 가 동시에 목을 쳤죠. 무슬림 여인들을 학대했다고.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그들이 종교적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연합뉴스 2015년 2월 16일자 교황 "참수된 콥트교인도 기독교 형제"

매일경제 2015년 2월 16일자 IS에 교인 21명 살해당한 콥트교는?

우리의 착각

공교롭게도 우리가 읽는 독서가 창세기입니다. 카인과 아벨 나옵니다. 이번주 계속 나옵니다. 창세기 나오죠. 굳이 이야기하면, 그것은 쓰여진 시절 2700년전, 2800년전인데,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나. 장벽이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느껴집니다. 여기 계신 분들을 보면서. 다만 또다른 숨은 단서가 있죠. 가족이 없다. 집에 있느니 차라리 밖에 나가는 게 낫다. (장내 웃음.) 하여튼 세상은 이렇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만사가 좋을 것으로 아는 가장 큰 착각 속에 삽니다. 그 착각은 부모 품에서 살았기 때문에 착각을 하는 겁니다. 실은 그 부모가 계셨기에 내가 평화를 누렸구나를 깨닫고, 이 부분을 확산시키는 데 노력하는 데 한발 더 나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실은 나는 부모가 지켜주는 세상 속에 있었던 거지, 그 부모가 살던 세상은 평화롭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난 의정부 화재인가에서 대부분이 부상당했는데, 그 중 몇 분 돌아가셨는데, 그 중 한 사람이 26인가 스물 둘인가 스물 넷인가 젊은 엄마였는데, 아기를 안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기는 살았어요. 그래서 부모라는 그 놀라움. 나라고 하는 인생의 오늘을 살게 해준 부모라고 하는 이 때의 부모는 단순한 아빠와 엄마가 아니에요

우리에게 평화가 무엇인지 알려준 것이죠. 그리고 그 평화가 퍼트려주기를 하느님이 우리에게 평화의 씨앗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착각은 온 세상이 평화로운지 알아요. 성경적으로 에덴 동산 추방 이후로 그런 평화는 없어요. 유일한 길은 그 평화로 나아가는 길 뿐 입니다. 언뜻 우리가 뒷걸음질 쳐보이고, 세상에 열받기도 하고, 그것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들이 우릴 좌절시킵니다. 이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회교리를 바운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여정 속에 있는 나를 보겠다는 겁니다. 나라는 존재가 인간 역사 한 위치에 서있음을 인식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다, 알겠다. 역사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래서 희망적이다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서 사제라고 폼도 잡고, 제가 먹을 것 갖다주시는 수녀님도 계시는데, 200년 전에 주문모 신부님은 어떠했나요? 그런 분들이 계단 한 칸을 올라가게 해주신 것입니다. 

 

한 칸씩 올라가는 것일 뿐


아마 예수님 이후로 보자면 우리는 완성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윗 칸으로 좀 올라왔다고 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다만 정상을 욕심내지는 맙시다. 내 당대에. 그러나 우리는 가늠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요. 우리가 제대로 걸었을 때, 다음다음 세대는 올라간다는 것. 내가 못 올라가더라도 후손들, 그 후손의 후손들은 올라간다는 것. 


교황 레오 13(라틴어: Leo PP. XIII, 이탈리아어: Papa Leone XIII)

256대 교황(재위: 1878220- 1903720)


본명은 조아키노 빈첸초 라파엘레 루이지 페치(이탈리아어: Gioacchino Vincenzo Raffaele Luigi Pecci). 93세가 될 때까지 교황좌에 머무른 가톨릭 역사상 최고령 교황이자 역대 교황들인 베드로와 비오 9세 그리고 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에 더불어 재위기간이 네 번째로 길었던 교황이다.

 

그는 주지주의적인 교황으로 유명하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현대적 사고와 연계하여 정의를 내리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사회에 대한 가르침을 발전시켰다. 특히 1891년 공표된 그의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는 교황 제도가 노동 운동 진영으로부터 처음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주었다. 레오 13세는 이 회칙에서 교회는 결코 귀족과 착취 계급의 동맹이 아니며 노동자의 적법한 요구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이후로 레오 13세는 노동자의 교황이라고 불리게 된다.


1891년 5월 15일은 개교기념일

 

1891515일 이날 어마어마한 일이 로마에서 선포가 됩니다. 그 당시는 그 선언이 그 선포가 그 훗날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24년이 흐는 동안 어떤 일을 가져왔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바로 교황 레오 13세가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앞에 12분의 레오 교황이 계셨어요. 그래서 열 세번째 레오 교황입니다오늘 저와 하는 시간은 기초과정이기에 잘 배우지 않으면 어려워집니다. 1891515일은 마치 개교기념일인 것처럼 여겨야 합니다. 누가? 레오 13세께서, 무엇을? 선언을 어마어마한 선언을 합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한 달 후 독일로, 두달 후 영국으로 그렇게 한류처럼 퍼져나갑니다. 대장금의 인기가 폭발하면서 일본이, 한달 후 대만이, 중동에서 6개월 후에 인기가 폭발하듯이, 교황님의 선언으로 한달에 한번씩 온 나라가 빨갱이 교황 물러가라. 이제 쓰러져가는 교회 사라져가라. 그렇게 외쳐댑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선언이었다


그렇게 보았을 때,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예"할 것과 "아니오" 할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그렇고, 아모스 예언자는 농사짓는 나를 왜 이렇게 불러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냐고 하느님께 대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피눈물이 담겨있는 외침처럼, 레13세는 어마어마한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황청의 수녀님들까지도 교황님 미쳤다고까지 몰아쳤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됩니다. 조금만 품위있게 바라보면 당연한 소리라고 우린 생각하지만, 그것이 124년 밖에 안된 것입니다.

 

당시 우리 한반도는 조선시대 후반입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단발령, 민비 살해 등 청일전쟁 무르익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면에 비하자면 우리가 많이 의식수준이 뒤쳐져있던 것이었고, 그러나 우리의 자발적 신앙, 북경 교회를 가서, 유럽 교회에서는 상상을 못해요. 그들은 모든 게 선교사를 보낸다고 보는데, 우리는 자발적으로 신앙을 가졌다는 위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교황 레오 13세가 선언을 했는데, 왜 새로운 사태인가? 종합적인 뜻인가 그렇다. 그러나 교황청의 문헌은 앞 글자를 딴다. 그래서 새로운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이 말은 그런데 딱 맞아요. 공교롭게도 맞아요. 그런데 유럽교회 전통은 맨 앞글자를 딴다는 것. 그 전에도 회칙은 여러개가 있는데, 유독 이 회칙만 온통 난리가 나고, 교회가 주인공이 됩니다. 왜 그랬을까? 그 전 교회는 '죄짓지 마십시요. 고해성사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 문제가 없죠. 그런데 레오 13세 교황 부터 임금 제대로 줘라, 월급 제대로 줘라 그렇게 말하니, 당신 사업해 봤어? 이 말은 신도림동 본당에 있을 때 어떤 대기업 다니시는 분한테 제가 직접 들은 말입니다.


당신! 사업해봤어?

 

그런데 주위에 있는 누군가는 신문을 통해 '교황청은 호도하지 마라. 계약대로 월급 주고 있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자 레오 13세는 다시 '제대로 읽어라. 적정임금을 주라는 것이다. 계약대로 주라는 게 아니다!' 지금보다 더하죠지금도 교회가 모든 사업하시는 분들에게 월급 제대로 주십시요. 아니 그 계약 다시 맺으십시요. 그 가장이 부양하는 최소한 예컨데 4인이 먹고 살 수 있을만큼 주시오. 그러자 그게 안되니까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연대성입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노동자 한 명이 회사 이깁니까?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러나 공산주의로 가자는 건 아닙니다. 교회는 집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와 내가 함께 유익한 것입니다. 노사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을 치열하게 연구하자는 겁니다. 그것도 아니고 우르르 몰려가서 한 사람 사주를 팬다? 이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러한 다섯가지. 제가 실은 외치면서 다 나왔어요.

 

적정임금, 연대성의 원리(단결권), 더 놀라운 건 국가를 향해서, 요즘 국가가 아닌데, 그 당시 국가는 왕정이거나 권세정치였던 시절에 그 이익을 노골적으로 결정하는 국가를 향해서, 국가는 공권력이다. 어느 한쪽만의 권력의 집행기관이 아니고, 모두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일정부분 개입해서 사측이나 기업주에게 개입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라. 그것은 보조성의 원리의 일부분입니다. 너무 간섭하고나 너무 방임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사주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 나가! 너 없어도 저거 봐봐. 줄 서 있어!' 그렇게 그런 상황의 계약대로 임금을 줬다는 겁니다. 그런 걸 교회가 모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많은 연구를 통해서 그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굴뚝 청소하는 아이들


이런 모든 부분에서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돌, 한살, 두살, 세살 이런 아이는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 울타리를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굴뚝 어른이 청소할 수 있나요? 영국에서는 어린이를 올려보내요. 일곱살, 여섯살 이런 애를 껌값 주며 올려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그 사회는 멍이 듭니다. 그래서 적정임금과 가정은 직결되어 있습니다지금 사실 시대는 바뀌어 맞벌이가 많지만, 당시 여성 직장 다닌다는 생각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가장이라면 가정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택도 없는 말, 사업이나 해봤어? 추기경 교황 되더니, 온갖 매도와 험담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소유욕이 있다 


그와 동시에 한사람 한사람에게 인간의 본성에 해당되는 문제. 소유의 문제, 사유재산.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또 동시에 불명확히 얘기를 교회는 합니다. 명확하게, 인간은 소유욕이 있습니다. 욕구가 나쁜 말입니까? 욕구는 가치중립입니다. 선 악이 아니고, 욕구가 어떻게 발휘되는가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것. 그런 면에서 욕구란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유재산, 그것은 소유권과 사용권이 있습니다. 이 둘이 구분됩니다. 소유는 당연히 누군가 침해해선 안됩니다. 그런데 사용을 내 것이니까, 5만원권 불태운다. 이 자리에서. 내 돈이니깨. 그러면 모라고 그래요? 놈친미라고 그러죠. 관여는 안하지만, 녀친미?

 

그래서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합당하게, 그것을 뭐라고 하냐면, 보편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 불명확합니다. 구체적 부분이 없어요. 양심이라고 하면, 그건 급이 달라요. 사회교리하는 분들은 급이 높아지는 겁니다. 남성들은 명예욕이 있죠. 그래서 지위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품위는 올라가나요품위는 경쟁하는 게 아닙니다.


강의실 앞에서 나눠준 교재들. 지난 주부터 배포된 <새로운 사태>는 3주차인 당일 강의자료이고, 당일 처음 배포된 <지상의 평화>는 4주차가 되는 다음주인 2월 23일 강의 교재다. 



2015년 2월 16일 열린 제109차 사회교리 기본과정 3주차 강의 첫번째 시간은 50분이 경과된 7시 50분에 끝나고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위 내용은 이 글을 정리한 필자의 기억과 기록을 바탕으로 재정리된 기록이기에, 다소 부정확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실제로 강사 최부식 신부님의 의도와 맥락과 다른 표현이 발견될 수도 있음을 참고해야 합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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