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9일(월) 명동성당과 가톨릭회관 모습 . 저녁 6시 45분 스마트폰 촬영. 구글에서 파노라마사진 자동완성
민경일 신부님의 [복음의 기쁨] 강의 (1)
복음의 기쁨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민경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바보의 나눔 재단 사무총장)
2015년 3월 9일(월), 저녁7시,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바보의 나눔 재단은 뭐하는 곳?
서울 교구에 독특한 기구가 하나 있습니다. 바보의 나눔 재단(www.babo.or.kr/)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김수환 추기경님의 자화상 ‘바보야’라고 그 자화상을 재단 로고로, 배지로 사용하고 있고, 추기경님 돌아가시고 벌써 6년이 되었는데요. 선종 1주년 때 추모사업으로 만들어진 재단이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음이 계속 살아있을 수 있도록,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모금하고, 일하는 재단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일하는 신부입니다.
제가 그곳에서 일한 것은 벌써 1년하고 한달 정도 지났는데, ‘바보의 나눔’이 2010년도, 그러니까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시고 1년 후에 만들어졌는데, 그 때 처음 준비하는 초대 운영위원을 했습니다. 그 때는 제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어디 있냐면 다 여기 가톨릭회관에 모여 있습니다. 한쪽 끝에 있고, 다른 자락 끝에는 가톨릭사회복지회가 있고요. [바보의 나눔] 재단법인은 4층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예전에 한마음한몸운동본부하고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두 단체가 같이 준비를 해서 [바보의 나눔]을 만들었고, 당시 저는 한마음한몸 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었기때문에, 같이 준비하면서 바보의 나눔을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주보가 2000호를 발간했다. 관련 전시회를 알리는 명동성당 한 벽면의 현수막 모습 . 2015.3.9(월) 6:46pm 촬영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혹은 글씨보다는 그림보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제 얼굴을 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한달에 한번 주보 사이에 나가는 것에도, 또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는데, 병원에서 가끔 치료비 전달식 하는데, 의사선생님하고 환자분하고 판 하나에 얼마 써가지고, 어색하게 사진 찍는 것 있죠. 그런 것으로 저를 보신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조선족 이주해오신 분이 계신데, 아이가 많이 아파서 저희들이 모금해서 천 오백만원 정도 지원해주는 일을 하고 왔습니다. 아침에 일찍 나가서 안산까지 운전하고 다녀오니 많이 피곤하더라고요. 차도, 길도 많이 막히고, 그래도 저녁에 여러분을 뵌다는 생각으로 피곤함을 다 씻고, 깨끗해보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저의 눈과 얼굴은 비록 피곤해보이나, 제 마음만은 피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에 대해서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제가 왠만한데 가면 신비주의하는데 강의할 때는 소통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회교리학교의 그동안의 스케줄
사회교리학교 지난 강의의 스케줄을 보니까, 지난 주(3/2 월)에 <사목헌장> 하셨고, 그 전에 (2/26 월)<지상의 평화> 하셨고, 그 이전(2/19 월)에 <새로운 사태>를 하셨더군요. 문헌에서는 이렇게 세가지를 하고, 오늘 <복음의 기쁨>을 하는 겁니다. 예전의 사회교리학교 과정에서는 [문헌편] 따로, [이론편] 따로 하기도 했는데, 이젠 합쳐져 있습니다.
[진리안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
제가 작년 2학기까지는 복음의 기쁨이 아니라 다른 문헌을 강의했습니다. <진리안의 사랑>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글인데요. 올해부터는 그것이 다른 강의에 수렴되고, <복음의 기쁨>이 새로 나왔기 때문에 올해부터 한주간 이 강의가 들어간 겁니다. 저도 올해 처음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의 기쁨> 사회교리학교 외에는 다른 곳에선 강의 나누고 했는데, 교구에 사회교리학교에선 처음이고, 여러분이 1세대이다.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발표한 회칙 <진리 안의 사랑>
진리 안의 사랑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심장 - 2009.7.16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작년에는 <복음의 기쁨>에 대해서 다른 문헌 하면서 조금씩 언급하기는 했습니다. (오늘 강의하게 될 복음의 기쁨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고, 특히 역대 교황님 중에 가장 인기 좋은 분 아닌가요? 요한 바오로 2세도 인기 좋았지만, 돌아가신지 어느새 다음달이면 만10년이 됩니다. 벌써 그렇게 되죠? 시간이? 저에 대해 좀 더 설명드리면, 저는 2002년도에 신부가 되었습니다. 비교적 새 거죠? 여기 오시는 분 중에는 제가 신삥입니다.
민경일 신부님
올해가 14년째입니다, 햇수로. 신부되고, 저는 공부를 되게 못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여러 개 다녔습니다. 대학교를 두개 나왔고, 신학교 포함해서, 대학원을 세 개를 다녔어요. 공부를 못해서 공부를 계속 해야 해서요. 신학교 오기 전에 대학 하나 졸업하고, 신학교에서 첫번째 대학원 가고, 잠깐 나가서 딴 거 좀 하고 다시 와서 대학원 다녔는데요. 처음 신학교 대학원에서는 구약성서 전공하고, 잠깐 밖에 나가 있을 때는 전례학이라고 하는 듣기에 따분하지만, 하지만 공부 해보면 재미있는 공부를 했고요. 그리고 돌아와서 사회사목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회기동에 K 모 대학 대학원에서 시민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논문을 ‘유엔의 발전권 선언’이란 문헌이 있어요. ‘발전권 선언’ 1986년 문헌인데, <가톨릭 교회 사회교리 입장에서 본 유엔 발전권 선언>이란 논문을 써서, 졸업을 했고요.
그러면서 가톨릭의 사회교리 전체를 논문에다 다 참조를 했어요. 사회교리를 그 때 다시 많이 공부하게 되었고, 그 이 후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코가 꿰어서 코를 디밀었는지 저쪽에서 갈고리를 내밀었는지 모르겠지만,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동호 신부님에 대해서
여러분 박동호 신부님 강의는 벌써 두 번 들으셨죠? 제가 작년에 박동호 신부님 하시는 걸 다시 들어보니까, "아, 다르다. 깊이와 넓이와 폭이 다르다. 그래서 저는 감히 그분의 신발끈을 풀 수도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동호 신부님이 이것을 계속 다 하시면 좋지만 아무리 엄마가 좋아도 엄마가 계속 잔소리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다양한 신부님들과 교수님들도 오셔서 강의를 하실 것이고, 저도 나름 최선을 다해 강의를 할 것입니다. 저는 국제협력, 국제개발분야 이런 쪽과 시민사회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최근에 대학에서 그런 관련된 것들, 그리고 인권, 국제개발 협력, 해외원조 등에는 나름 전문성 가지고 강의를 다니고 있습니다.
[진리안의 사랑]과 보나벤투라
오늘이 문헌편 마지막이죠? <복음의 기쁨>도 한번 읽어보시는 게 좋습니다. 제가 작년에 <진리안의 사랑> 할 때에는 그게 이 책보다 얇아요. 페이지 수가 작습니다. 그런데 읽는 시간은 오래 걸려요. 글이 어렵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대학자였기에 신학적 지식이 깊이가 있는데 그래서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서 <진리 안의 사랑>을 공부하려년 보나벤투라 철학과 그의 삼위일체 신학을 다 알아야 이해할 수 있어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말 같으면서 아닌 것 같은 그래서 읽기가 어렵습니다.
보나벤투라(Sanctus Bonaventura; 1218년? - 1274년 7월 15일)
중세 시대 가장 뛰어난 신학자. 성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인. 경건하고 사랑이 흐르는 면에서 ‘세라핌적 박사’(The Seraphic Doctor)로 알려진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대전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흔히 프란치스코회 수도복을 입거나, 추기경을 상징하는 빨간예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며, 망토 가장자리에는 세라핌이 장식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의 성인. 축일은 7월 15일이다. 상징물은 책·십자고상·성체현시대이며, 신학자·농부·짐꾼·직조공의 수호 성인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진리안의 사랑]은 <레위기>에 비유될 수 있다
그 대신 <복음의 기쁨>은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매우 친근한 언어로 쓰신 겁니다,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어요. <진리 안의 사랑>은 성경과 비유하면 레위기. 레위기가 읽기 힘들잖아요? 레위기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하느님께 잠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고 레위기를 한 장을 펼치면 두어 장 읽기 전에 주무실 수 있을 겁니다. 다 경험들 있으시죠? (묵묵부답에) 안 읽으시나요? 그 정도로 읽기 어렵다는 것. 그런데 <복음의 기쁨>은 읽기가 편해요. 특히 지금 현대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에 읽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헌편 마지막이어서 그동안 배우신 것 가볍게 정리하고 복음의 기쁨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설명드립니다.
교회가 곧 국가였던 시절이 있었다
1891년 <새로운 사태>, 이 때는 무슨 때입니까? 1891년도의 시대적 배경이 중요하죠. 바로 산업혁명 때입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난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굉장히 오랫동안 중세시절부터 해서 교회와 행정이 거의 하나였어요. 행정의 기본 단위, 권력의 기본 단위가 원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행정의 기본단위나 권력의 기본단위를 하지 말자고 한 것이 언제였습니까?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1648)
세계사 시간에 나오는 ‘30년 전쟁’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구교와 신교 사이에,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30년 동안 피가 엄청나던 전쟁이었는데, 그 전쟁이 1648년에 끝나고, 베스트팔렌 조약이라고 유럽에서 조약을 맺습니다. 베스트팔렌 지역은 독일의 서북부 지역입니다. 서북부의 한 주 이름입니다, 그 주의 주도는 뮌스터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거기서 공부하셨어요. 뮌스터의 주교좌 성당 옆을 보면 사람을 가뒀던 새장 같은 곳이 있습니다. 사람을 가둬놓은 곳이었는데, 가톨릭이 우세하면 개신교 신자가, 개신교가 우세하면 가톨릭 신자가 그 새장 같은 곳에 갇혀있기도 한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가시면 볼 수 있어요. 보존 되어 있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비준. The Ratification of the Treaty of Munster, Gerard Ter Borch (1648)
1648년에 배스트팔렌 조약이 종교적 측면에서 보면 전쟁이 끝나고 화해한 정도로 보이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굉장히 큰 역사적 전환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교회가 모든 권력과 행정의 중심이었고 국가가 있었지만, 그 개념은 희미하고, 교회의 주교와 추기경 등이 굉장한 실제를 가졌고, 교회가 세상을 관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때문에 싸움이 나고, 믿음 때문에 싸움이 났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무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안되었을 것입니다. 현재 IS(이슬람국가)는 무력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는 직접 무력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정교분리가 되었던 것인데, 그런데 그 정교분리의 효시가 30년 전쟁 끝나고 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 개념의 등장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으면서, 우리가 왜 싸웠나? 신앙이 달라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신앙이 다르면 각자 믿으면 되잖아! 그러면 이제 행정이나 권력을 교회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되겠다. 자기가 믿음이 다른 것에 따라서 그것으로 해치거나 전쟁을 일으키면 안된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입니다. 옆 집에 성당을 안다닌다고, 교회를 안다닌다고 싸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적인 국가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 베스트팔렌 조약의 핵심입니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유럽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그것이 교회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신 구교의 전쟁이 끝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회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국가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것. 그래서 국가가 모든 걸 조정하면 평화가 있을거야 라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국가에 모든 걸 맡기면 다 잘 살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에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절에 산업혁명으로 자동화, 시장이 발달하고, 국가의 모순들과 실패들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시장이 탄생입니다.
시장에 대한 장미빛 전망
그래서 그 장밋빛 전망은 ‘시장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시장은 아주 좋은 것. 세계 어디에 내놔도 좋은 법칙이 있다고 본 것이죠.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있죠. 그래서 시장이 모든 걸 다 알아서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걸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노동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어떤 균형 맞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장의 원리에 따라서 주욱 가면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레오 13세는 왜 <새로운 사태>를 반포했나
첫번째 권력이라고 볼 수 있는 교회를 제외하고, 국가의 실패, 다음에 시장이 나왔는데, 1891년의 <새로운 사태>는 교종 레오 13세께서 시장의 실패를 바라보고 반포하신 것입니다. 시장의 논리와 산업혁명의 장밋빛 전망과 미래가 피 빛 미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로 노동자의 피를 본 겁니다. 그 당시 가장 약한 사람은 노동자들이었다. 바로 그러한 배경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학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즉, 첫번째 권력이 국가이고, 두번째 권력이 시장 혹은 기업이나 자본, 그 다음에 국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 이후에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시민사회’입니다, 어쩌면 교회도, 예전에는 권력을 독점하던 기관이었지만, 이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서 연대해서 시민사회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래서 물질주의적이고 반성직주의 그리고, 노동자들 처지가 열악해졌다. 특히 노동문제에 대해서 임금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까지 다 나오죠. 임금(급여)은 그 당시 생각에는 고용주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된다. 둘 사이에 합의로 결정되는 것이니까 임금결정은 언제나 정당하다는 게 당시 시장논리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마치 오늘날 한국사회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당시에 산업혁명이 생기고, 공장들이 생기면서, 대형 상인들이 생겨나고, 소액거래나 물물교환 위주에서 아예 대량생산과 대량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경제로 (자급자족경제에서) 경제체제가 바뀐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 이후 이농현상이 생긴 것처럼, 노동자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듭니다. (계속)
2015년 3월 9일(월), 가톨릭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제109차 사회교리학교의 여섯번째(6주차) 강의가 열렸다. 서울 중구 명동2가 1번지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린 6주차 강의는 민경일 아우구스티노(바보의 나눔 재단 사무총장) 신부님이 강사로 나섰다. 강의 주제는 교종 프란치스코의 <복음의 기쁨>이고, 다음은 오늘 강의 중 1교시(약 55분)의 전반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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