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간노동 (2)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2015.4.15(수)  밤 10시 03분경 풍경. 제13기 대전사회교리학교 7주차 강의가 끝난 뒤 찍은 사진  


성당 앞의 현수막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단상

제가 성당 앞에 딱 내리니까 현수막이 걸려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신자분들이 다 좋아하시는 거죠? 하하.. 지난 6일(2015.4.6)인가요? 팽목항에서 부활 다음날 엠마오를 했는데요. 거기서 박제준 신부님을 뵈었습니다. 그날 오셨던 분들도 계시고 해서 인사를 드렸는데, 버스를 대절해서 오셨더라고요. 

2015년 4월 6일 엠마오로 팽목항 미사에 참석한 박제준 신부님 모습이 보인다.




(팽목항에 여기 성당에 계신 분들이) 많이 오셨군요. 제가 거기서 뵙고, 또 여기서 다시 만날 것이어서 매우 반가웠는데요. 현수막까지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세월호 얘기를 해도 되는 곳인가?'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달고 있는 노란 뱃지가 있죠. 이게 디자인이 여러개가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님이 만드신 것 중에는 뱃지에 Hope라고 쓰여진 것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게 없어요. 서울에는 이 뱃지를 구하려고 난리가 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즈음하여 품절된 노란 뱃지

새로 맞추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또 제 것을 뺏어가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가방에 두 개를 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샘플로 30개 정도 가져왔습니다.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추모 미사에 가시는 분들을 위해서 준비한 겁니다. 제가 후반부에 좀 더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이야기와 세월호 이야기입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할까요? 혹시 여기 신부님이시거나 수사님 수념이신데 사복입고 오신 분들 계시나요? 신부님이나 수녀님 티가 나는데, 가끔 잘 몰라서 엄청 욕하는데 "저는 어디어디 신부입니다."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 

그리스도인의 여러가지 호칭

저는 그리스도교 신자? 가톨릭 교회에 다니는 사람?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우리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잖아요. 제가 농민회나 여러가지 한국가톨릭교회에 대해 앞서 자랑을 한 바 있어요. 그런데 제가 교회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것이 <새로운 사태>란 교황님 문헌이잖아요? 그것이 1891년 레오 13세가 발표하신 회칙이죠. 작년인가 재작년에 반포 12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여러 군데에서 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1년이 120년이 되는 해)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 기념 세미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4.11자 보도



<새로운 사태>는 노동헌장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사태>가 왜 대단하냐면, 저도 강의를 다니느라고 읽어봤지 이걸 누가 읽어보겠습니다. 어느 누가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찾아가서 읽어볼까요? 강의하는 분들이 아는 척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읽어보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읽어보니까 이게 <노동헌장>입니다. 그리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갈등이 생길 때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가? 그리고 그럴 때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항목들을 살펴보면 대단한 내용들입니다. 

<새로운 사태>는 교회의 사회에 대한 발언의 정당성을 발표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주욱 서술합니다. 아마도 1891년 당시의 노동자들은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했을 것이고, 훨씬 더 봉건적인 사회 안에서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없는 이들을 더 억누르는 사회였을 것입니다. 노조도 없었을 것이며,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거나 의견을 표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텐데, 그럴 때에 <새로운 사태>가 노동에 관한 헌장처럼 발표가 되면서, '가톨릭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을 한다는 것, 사회문제에 종교가 개입하고 입장을 애기하는 것이 복음의 선포이다.'라고 하는 것을 <새로운 사태> 선포 당시에 정해주신 겁니다. 

종북사제 명단 100인 발표한 대수천

그리고 종교가 왜 자꾸 정치에 개입하냐! 종교가 왜 자꾸 사회문제에 대해 얘기하느냐! 교회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천주교 수호모임'이란 것도 있습니다. 여기에 회원님이 계신다면 제가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종북사제 명단 100인] 같은 것도 발표를 합니다. 그래서 100인 명단에 못 들어가신 신부님들 중에 속상해하시는 신부님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다짐을 하기도 하는 겁니다. 주교님도 몇 분 들어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참 억울한 분들도 계실텐데요. 거기 명단을 보면, 안동교구의 안명옥 주교님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강사님의 착각으로 '안동교구'라고 발언하셨는데, 안명옥 주교님은 마산교구의 주교님이심)

출처. 마산교구 홈페이지


그런데 오늘 아침이군요. 안동교구(실제로는 마산교구를 말하는 듯)가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해서 발표했는데요. 그 내용이 엄청 센 거에요. 장난이 아니에요. 그래서 (대수천이 종북사제를) 잘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자 주) 천주교 마산교구 안명옥 주교는 2015년 4월 13일 저녁 창원 사파공동성당에서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개최한 [세월호 참사 추모미사]에서 집전과 강론을 했다.


성당주보 1면 이미지

사파공동 성당주보 2면에 안내된 추모미사


안명옥 주교님의 추모미사 강론 요약


참사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을 바라보는 눈이 확연하게 대립한다. 한편에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가하면 다른 편에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이른바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어떤 사람은 이제 잊어야 할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덮어야 할 기억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해 4월 16일 이후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했고, 마치 사람들이 참사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처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고, 유족의 아픔과 상처에 동조하는 사람의 숫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유족들을 비난하고 모욕을 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비록 그 참사가 아픈 기억이라도 간직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국민들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고, 인간 삶의 의미, 그리고 국민으로서 자세와 국가의 역할을 그 근원에서부터 다시 깊이 성찰해야 한느 국면을 맞이했다.


사건과 역사적인 사건을 구분해야 한다. 사건은 뉴스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사건은 눈물과 절규로 가득찬 비극의 순간을 늘 반복되어 온 평범한 일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는 늘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이와는 달리 역사적인 사건은 일어난 사건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헤아리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사건이 인간 삶에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사건이 참혹하고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불안과 좌절감을 폭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숨기어 은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간직하게 해서 교훈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 취해야 하는 자세는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를 그저 그런 일상적인 사건으로 보내버릴 것이 아니라 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월 참사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사망자'나 '실종자'라는 익명의 추상적인 암호나 기호로 축소시키지 말아야 한다. 희생자들을 죽음으로부터 결코 숨기지 말고, 은폐시키지 말아야 하며,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함께 공유해야 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궁극적으로는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공생하며 살아야 한다... 참사 직후 많은 사람들이 모두의 비극이고 책임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런 발언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 모두 책임이라는 발언은, 한편으로는 따스한 공감의 언어로 들리지만, 죽음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기에 경계해야 한다. 모두의 비극이고 책임이라는 발언은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모두의 책임이기에 내가 책임질 게 없다는 무죄의 알리바이이기에 경계해야 한다. 모두를 공범으로 몰아가는 그런 의도를 내포하는 매우 정교하고 이중적인 발언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다. 유가족에 대해 일부는 유가족의 자격을 따졌다.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으로 목숨을 걸었던 아버지에 대해 이혼했다느니 하면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이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슬퍼할 권리가 없는지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씨름해야 했다. 국가는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보다는 치안을 유지하고 사고의 흔적을 지우려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늘 일상으로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며 의미를 폄하하거나 축소했다. 


국민들은 어떤 위기의 순간에서도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사고를 수습하는 단단한 조직이라 믿었으나, 실제 국민의 눈에 비친 국가는 허둥대며 헛발질만 하는 무능한 조직이었고, 책임 회피하는 후안무치한 조직이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진리라면 하늘도 우리의 국가를 외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참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업체, 행정, 관행, 제도, 의식에서 국민의 목소리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잘 듣는 방향으로 개죄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아픈 영혼을 쓰다듬고 따스한 온기 넘치는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다. 


이 순간까지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유가족들은 여전히 고통을 당하고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곳곳에서 죽음은 있으나 어디에도 부활은 없다. 희생자들이 죽음을 뛰어 넘어 부활하는 날,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추모 미사를 봉헌할 것을 약속하고,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이미 120년 전에 잘못이라고 결론내린 것


그래서 사회문제에 개입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이미 120년 전 넘는 세월 전에 발표를 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는 종교가 마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럽의 중세시대에 면죄부 판매라든지, 추기경의 횡포 등을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권력을 종교가 쥐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권력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비판하고,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종교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란 사실을 <새로운 사태>가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태>를 계승한 것 뿐

그래서 그러한 전통을 지난 2~3년간 대전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한 각 교구의 정평위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라든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보여줬던 불의한 모습들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들이 <새로운 사태>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사실상 교황님이 다녀가셨던 지난 해 8월을 다 기억하시죠. 대전교구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은혜를 정말 많이 받은 교구이죠. 그런 연유로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님이 올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 되신 건 아닌지 괜한 생각을 해봅니다. 

방한 중인 교황님은 세월호 가족을 매일 만났다

사실상 교황님이 다녀가셨던 지난해 여름은 사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선물이었다고 다른 곳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런 분이, 이런 종교인이 과연 또 있을까요? 이렇게 말 한마디 한마디, 미소 하나 하나에 울림이 있는 분이시구나. 많은 감동을 주고 가셨구나. 그러면서 천주교 이미지가 일반 국민들에게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저는 교황님의 일정을 죽 보니까요. 세월호 가족들을 매일 만나셨습니다. 하루도 세월호 가족분들을 안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대전까지 학생유가족이 900 km를 넘게 행진하며 지고왔던 그 십자가를 교황님께 드릴 때 그걸 기꺼이 받아주셨고, 듣고 위로를 해주셨고, 또 우리 이호진이라는 아버님을 특별히 따로 불러서 세례를 주시기도 하셨고, 무엇보다 감동적인 장면은 광화문 광장 미사하러 가는 과정에서 유민이 아빠가 단식하는 그곳에서 내리셔서 차를 멈추고 손을 잡고 위로하신 장면입니다. 저는 그 안에는 못들어갔는데, 바깥 쪽에 있었는데요. 뉴스로만 봐도 굉장히 감동적인데, 옆에 계신분들은 거의 통곡을 하셨더라고요. 

교황님의 첫마디, 세월호는?

그 과정에서 마지막날 명동성당에서 열렸던 '남북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분들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강정마을 주민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 밀양 송전탑 할매들 다 초대하셔서 자리도 마련하시고 한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주교님들이 로마 바티칸에 가셨죠. 교회 용어로 정기알현이라고 하나요. 전체 주교가 가신 거죠. 그 때 딱 만났을 때 첫마디가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왜관 베네딕토 수도회의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 님이 4월 6일 엠마오에 갔을 때 오셨거든요. 그 분에게 들었던 것인데요. 교황님이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느냐?"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세월호 가족들에게 내가 제일 처음 질문한 것이 세월호 문제였다는 것을 꼭 말해줘라."는 말씀가지 하셨다는 데요. 정말로 대단하신 겁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한국을 떠나실 때 다 기억하시죠?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손수 다 쓰셔서 돌아오길 바란다는 기도와 함께 쪽지를 남기셨는데요. 그래서 길거리에서나 어디서나 추모미사나 시위 등이 있을 때마다 보여지는 대단한 명언도 남기고 가셨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정확하게 언어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대충 종합해보면, 고통을 겪는 사람 앞에서 중립이란 게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죠. 그런 말씀들이 사실은 과연 얼만큼 울림을 우리에게 주고 가셨으니까, 가시고 나서는 잊고 살면 안되니 끊임없이 그런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어제 오늘 내일 이렇게 전국 교구에서 모든 교구에서 17개 교구, 군종교구까지 합치면 17개인데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미사가 열립니다. 이건 지금 지극히 당연한 일이도 했습니다. 지난 1년동안 그러했고, 각 교구마다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들이 있었습니다. 

추모 미사의 결정은 바티칸을 다녀온 후였던 건 아닌가

그런데 솔직히 일부 교구장님들이 미사를 집전하겠다고 결정을 한 것은 바티칸을 다녀온 이후는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미사를 '한다!', '한다!'는 말은 있었고, 약간 천천히 나갔는데, 그래서 서울대교구도 내일 (2015.4.16) 명동성담에서 염수정 추기경님의 직접 미사가 있는데, 그것이 3월 말까지 전혀 결정된 바가 없었던 것 같고요. 할지 말지도 왔다갔다 하다가, 바티칸을 다녀오자 말자 바로 세월호 유가족을 초대하기로 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그런 변화를 주신 겁니다. '세월호 문제가 잘 되고 있느냐?'라는 질문 하나로 변화가 이뤄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교님들 돌아가시면 세월호 유가족들 더 위로해주시고, 더 애써달라는 말씀으로 주교님들이 알아들으시고, 교구장님들이 나서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드리고 감동스러운 이야기라고 봅니다. 

제가 인권활동가로 교황님의 방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 얘기였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말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를 이해해야 하고, 우리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차별에 대해서

제가 문헌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가톨릭 문헌들, 특히 교황님 문헌들을 보면, 대단한 이야기들이 많슶니다, 특히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인권에 대해서 아주 정리를 하셨는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간기본권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성별, 인종, 신분, 종교, 피부색 이런 것들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제거되어야 강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요즘 많이 나오는 얘기입니다. 

요즘 이슈를 이미 1960년대에 언급했다

저 사람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출신지역이 다르다고, 못생겼다고 잘 생겼다고,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전과가 있다고, 병을 앓은 적이 있다고, 학력이 딸린다고, 이런 것을 가지고 '차별'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요즘 3~5년간 인권활동의 전체를 지배하는 개념이 되었는데, 이미 1960년대에 발표된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에 나와있고, 다 일일이 열거가 되며 나온 겁니다. 여러분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도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발표된 교리서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보통 동성애를 부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동성애'라는 것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란 점을 꼭 알아야 한다. 마치 유행이나 사회적 트렌드를 따른 게 절대 아니라 이들이 타고난 것이란 걸 알고 이들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어떤 차별의 기미라도 보이면 안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사실 그러면서도 교회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히는 모순점이 있지만, 그것이 1960년대 언급되어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대단한 인권감수성을 가졌다고 생가을 합니다. 그런 문제들을 이미 많이 얘기한 것이죠. 

마음만 먹으면 변화시킬 수 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아직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신 것인데요. 이 세월동안 이분의 일거수 일투족이 얼마나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감옥에 가서 수감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부활절 예배를 소외된 사람들과 같이 하시고 하니까, 우리 주교님들도 그렇게 하십니다. 복지원에 가서 미사를 보시고, 제주교구의 강우일 주교님은 아예 부활절 당일 11시 미사를 강정마을 정문 앞에서 보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 숙소의 청소노동자들, 식당 일하시는 분들과 정기적으로 밥을 드신다고 합니다. 역대 교황님들 중에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사도 따로 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가 가톨릭교회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가 마음만 먹으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사립학교 개정에 얽힌 일화

한가지 사례로 2005년인가요. 사립학교법 개정이라는 큰 화두가 우리나라를 점령한 적이 있습니다. 사립학교가 가톨릭 학교들도 해당됩니다. 성모여고나 전국 가톨릭대학들도 사립학교입니다. 이 학교법인에 이사가 있죠. 여기에 공익 이사라고 해서 감시하고 비판하고 뭔가를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꼭 넣어야 한다는 취지로 개정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어떤 사립학교들은 대대로 이어가면서 부를 축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그러한 족벌 사학들이 대체로 엄청난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그 당시 가톨릭에 소속된 고등학교가 전국에 70여개인데,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고 처음에는 선언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계와 불교계에서도 반대 선언을 합니다. 그런데 제도 자체가 큰 문제점을 갖고 있거나, 종교나 학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나서는, 이사 제도의 명칭을 바꾸면서, 이 법을 가톨릭 교회가 제일 먼저 수용합니다. 그래서 70여개의 학교들이 내년 신입생을 다시 받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런데 전체의 비율로 따지면 전체 고교 중 얼마 안되는 수치입니다. 10%가 될까요? 그렇게 선언을 하고 나니까, 나머지 종교계 사학이나 나머지 사학들이 모두들 손을 들어버렸어요. 그래서 그 해에 그 제도를 받아들이고 법이 개정되고, 사실상 신입생을 받지 않는 공백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힘

그것이 한국 가톨릭 교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주교는 단일화된 조직체계입니다. 교구를 중심으로 하느 체제이니까 어떤 이들은 그게 마피아같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종파가 엄청 많죠. 대충 따져봐도 장로교가 있고 그 안에도 몇 개가 더 있죠. 다른 종교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하느님의 성회 등등 한국에서 엄청 많고, 불교도 종단이 처음 알았는데, 27개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조계정, 천태종, 태고종 정도만 알고 있지만요.

노동의 문제... 교회 내부로부터 시작해야

그러니까 먹히기가 쉽지 않은 걸 수 있습니다. 아무튼 가톨릭 교회의 결심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노동 이야기를 할 때, 이번 주교회의에서 정평위를 할 때 [노동소모임]이라고 해서 신부님들이 노동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단위가 만들어지고, 상임위원회에서 인준을 하셨는데, 각 교구별로 보면, 노동사목위원회가 있는 데가 있고 없는 데도 있습니다만, 노동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노동문제에 대해 교회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저는 그런 출발을 이 교회 안에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겁니다. 

교회 내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바꾼다면

올해가 춘계 주교회의가 끝났나요? 이제 추계 주교회의를 가을에 할 때 그런 발표를 하는 겁니다. 전국 17개 모든 교구는 앞으로 교회에서 향후 3년간 비정규직과 파견과 계약직을 모두 없애고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을 한다고 가정하자고요. 그러면 난리가 날 겁니다. 일간지의 1면 탑을 장식하고 기업에서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전경련에서 성명서를 내고, 한국 가톨릭교회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요. 어쩌면 후원금을 안내겠다는 압박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아마도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물론 잘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2,600여명의 서울시의 비정규직은 다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그 당시 전임 서울시장이나 서울시 의회에 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서울시가 부도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규직 전환 하고 나서도 4~5년이 지났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 내애서 큰 문제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해보지도 않고, 돈이 더 들 것이다.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걱정하는 게 <새로운 사태>나 <바티칸 공의회>나 교황 프란치스코의 정신과 거리감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신자분들이나 신부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교회 안에서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교회가 영리추구집단이 아닌데, 파견근로자나 계약직이나 용역회사와 계약을 해서, 서울의 가톨릭 관련 단체에서 일하시는 분들, 예를 들어 주차관리를 하시는 분들이나, 관리직 일 맡고 계시는 분들이 다들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용역회사에서 또 돈을 떼고 준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변화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이 변화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한국교회가 많은 공을 세웠던 '사회복지', '교육' 등의 부분에서 더 인권친화적인 곳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시설'과 관련된 일도 많이 했습니다. 이른바 '다수인 보호시설' 흔히 말하는 기도원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건이 접수되면 거기에 가서 실태조사를 하고 시설을 폐쇄시키는 일도 했는데, 가끔은 걱정이 됩니다. 전화가 오면 보통 이름이 '은혜의 집', '사랑의 집', '평화의 기도원', '요셉의 집' 이런 이름들입니다. 그러면 덜컥덜컥 합니다. 이게 '마리아의 집'이란 건 아직 없었어요. 그렇지만 이게 천주교 시설이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들이나 성직자분들이 일하시는 곳에서 들어온 제보라면 어떡하지?라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아직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올만한 못되고 나쁘게 운영하는 시설은 없었어요. 

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바뀌어야

다만 이런 경우는 있었어요. 천주교 시설을 가보긴 했는데요. 수녀님이 좋은 마음으로 하실 수 있는 겁니다. 아침에 가서 할아버지를 깨웠는데,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미사 안 가면 밥 안줍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기준으로 따져보면 명백한 종교행위 강요가 됩니다. 미사에 오지 않으면 밥을 안주겠다는 것은 엄청 심각한 인권침해적 멘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 수녀님이 그러신데, "수녀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인권침해입니닷!"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는 말해보았죠. "수녀님, 할아버지가 미사를 보기 싫으면 안가도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면, 수녀님께서, "난 강요한 적이 없는데?"라고 하는 거죠. "아니 밥을 안 주신다고 하셨잖아요?"하니까, "에이, 농담이지 밥을 왜 안 줘!" 하시는 거죠. 아무튼 저는 수녀님들하고 그곳에 계신 종사자분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런 공간들이 과연 인권친화적 공간으로 변화해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예로, 성 매애 여성들, 또 결혼하지 않은 엄마들을 보호하는 천주교 시설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공간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법을 제한하는 시행령

마지막으로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가겠습니다. 다들 똑같은 마음으로 슬퍼하셨고 분노하셨겠지만, 이 얘기를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얘기는 다 아실 것입니다. 지금 가족들이 시행령 싸움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 시행령이 그 전에 만들었던 6백만명이 넘는 국민의 서명으로 만들어진 법인데요. 물론 그 권한도 참 미약한 것이지만, 그 시행령이란 것이 법 밑에 있는 것이니까, 법에서 정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정한 것이죠. 그런데 그 시행령은 법을 무력화시키는 겁니다. 언론에 나오는 것은, 법에는 120명까지 둘 수 있는데, 정부 시행령은 90명만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90명 중에서 45명은 공무원으로 파견하고, 45명만 새로 뽑는다는 게 핵심이고, 또 하나는 기획조정실이라고 해서 모든 사무처의 운영을 관장하는 기획조정실 권한이 막강해서 일부 민간에서 들어간 사람들을 통제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획조정실을 해체해야 한다는 2가지 쟁점입니다. 

쟁점은 조사 범위

제일 중요한 쟁점이 조사범위라는 겁니다.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을 했는데, 실제로 세월호 참사사건을 조사해야 하는데, 시행령에는 해양수산부에서 조사한 내용만 조사하라는 겁니다. 뭐냐면 검증하라는 겁니다. 해수부에서 조사해온 기록을 특별심사위원회가 보면서 이게 잘 된건지 아닌지 조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적 조사의 길을 막은 겁니다. 그런 부분을 가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거부하는 싸움과 서명을 다시 하는데 여론이 안좋아졌죠. 여기에 돌아가신 성완종 리스트가 터졌죠. 그래서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에 기자들 얘기로는 팽목항에 가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인양을 발표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가족 말도 좀 들어보라고 하면서 바뀐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행령에 대한 부분이 특별법을 온전하게 하도록 싸움을 하는 것인데, 그래서 그게 개정되지 않으면 내일 추모식도 안하겠다는 겁니다. 무슨 추모식이냐. 제대로 진상도 못 밝히는데, 자식들의 죽 죽음을 슬퍼할 자격도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내일의 안산 합동분향식을 취소하겠다고 하면서 거리로 나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내일과 4월 18일 서울광장에서 큰 집회 구상이 있는데, 어떤 불상사가 날 지 모르겠습니다. 

배상의 문제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의 핵심은 배상의 문제입니다. 가족들은 배상 얘기하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누가 배상이나 돈 얘기하면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얘기하고 자식 팔아서 돈 벌려는 사람 취급하냐고 말씀하시지만, 전 너무나 속상합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그런 사건으로 잘못한 사람들이 유가족에게 피해를 복원하는 일은  다시 살려낼 수가 없으니, 그것에 대한 마땅한 배상을 하는 게 왜 자식을 팔아먹는 일인가? 당연한 권리이고 더 주장하고, 정부 제시 배상금은 터무니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배상의 비용을 정부에서 하나도 책임지지 않고, 민간에게만 돌리는가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배상을 돈으로만 생각합니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상대방 보험회사로부터 차량 수리비와 병원비 등을 배상받습니다. 그리고 뭐가 필요합니까? 이 사건을 조사해야 합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밝혀내야 하고, 누구의 과실이 더 큰 것인지 밝혀내야 하고, 이 차량의 수리비는 얼마나 들 것인가를 정확히 계산해 내야 하고, 내가 장애를 입거나 사망했을 때 얼마나 큰 피해인지 계산해서 배상받습니다. 교통사고에서 그러한 과정은 자연스럽죠. 그리고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된 배상을 받으려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필요한 겁니다. 이 과정이 배상에 전제된 것이고, 배상의 개념은 돈을 받는 것이라기 보다는 진실을 밝히고, 제도를 바꾸고, 재발의 경우를 방지하는 법까지 만드는 것이 배상의 일환인 겁니다.

배상도 중요한 부분이다

명예가 회복되고 아무리 많은 돈을 드린다고 해도, 사실 배상이 제대로 된 배상이 되지는 않는 겁니다. 솔직히 유가족들에게는 돈이 필요합니다. 지난 1년동안 아무 일도 못했어요. 생계가 막막하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식당 아르바이트 하고 일 다니시는 부모님들이 계셔요. 계속 그런데 집회 나오고 행사 나오셔야 하니까 고정적인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같아서는 유가족들이 왜 당당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사회분위기때문입니다. 미국같은 나라는 소송할 때 몇천억 소송을 하죠. 세탁소에서 바지 하나 잃어버렸다고 백억 소송하는 미국의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한국사회는 마치 이런 문제에서 배상이나 보상이나 돈에 대해 꺼내는 것이 삼강오륜에 어긋나는 것 같은 짓으로 주위에서 만드는 것,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식 팔아먹고 부자됐네.'라는 조롱이나 혐오가 더욱 더 유가족분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가족들이 돈을 요구한다든지, 더 받아내려고 땡강을 부린다는 험담들은 곁에서 1년간 지켜본 바에 따르자면, 진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가족들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그런 분들이 없다는 게 더 안타깝습니다. 세월호 해결은 시작도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들을 계속 지켜봐 주셔야 하고, 기도해주셔야 하고, 1주기 미사 하고 끝나면 안되고,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가족이나 피해자 가족들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곡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시간 가까이 일천한 제 강의를 한 분도 졸지 않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누가 졸고 있어야 정상인데, 신부님 강론이라도 아무도 졸지 않으면 신부님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경우도 있어서 걱정은 됩니다만,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처 못다한 얘기들 - 생존자의 어떤 아픔

끝으로 세월호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더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생존자 중에 화물트럭 기사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평생 모은 재산으로 몇 천만원을 들여서 그 트럭을 사서 제주도에 가서 새롭게 인생을 사려고 했는데, 그 트럭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보험금 지급이 1년동안 미뤄지고 있어요. 그래서 1년동안 이 분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인생이 거의 망가진 겁니다. 배에서 일한 조리사분은 배가 거의 시간을 보내서 집이나 마찬가지였고, 선실안에 모든 게 다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사진, 앨범,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 등이 다 그 배안에 있었는데 못 가져오고, 자신의 삶이 다 망가진 겁니다. 그런데 자식잃은 부모 앞에서 내 차가 없어졌어. 내 어머니 유품이 없어졌어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는거에요. 이런 분들도 역시 가슴이 문드러지고 힘드신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아직도 많을 거고, 생존자들이 제대로 치유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할 수 있는 기도와 여러가지를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리며 마치겠습니다. 

2015.4.15(수) 밤 10시,  2교시 종료

2015년 4월 15일(수) 하기동성당 저녁 10시경.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님의 대전사회교리학교 제13기 7주차 수업 [인권과 인간 노동] 강의가 끝났다. 이 강의는 필자의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된 것이며 실제 강연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강의자의 의도와 맥락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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