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위기시대, 환경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1)


사회교리 제11주차. 2015.4.20(월) 오후 7시~9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횐경사목위원회 조해붕 신부님


2015년 4월 20일(월) 오후 7시03분 명동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전경. 

사회교리학교 11주차 강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번 시간은 조해붕 신부님의 환경에 대한 강의였다.


'환경보호'라기 보다는 '생태계 위기'

(수강생이) 130명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아직 오시는 모양이지요? 여러분 교재(서울대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발간 「가톨릭 사회교리」<주제편>) 제11장(환경보호)이 오늘 강의범위입니다. 이 책 내용이 6-7년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제11장 환경보호'라는 제목보다는) 생태계 위기의 시대가 더 맞습니다. 큰 주제 다섯가지 가르침을 교재와 연결해서 진행하겠습니다. 

'환경'은 인간중심적 단어

환경이란 말은 인간에게 해당된 인간 중심적인 단어라고 봅니다. 환경에 대한 표현을 보면, 지구, 대류권, 성층권, 해양권 등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지구오염과 지역오염을 말할 건데, 여기서 지구는 대기, 그 이상의 우주도 포함될 수 있어요. 지역은 현재 환경파괴가 보여지는 현상들을 말합니다.

생태위기의 문제는 정의·평화의 문제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첫번째 환경에 대한 가르침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생태위기의 문제는 정의· 평화의 문제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즉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 등과 공통된 정의다. 등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조질서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이라는 책입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에서 2010년 펴낸 책입니다. 


(이 책은 자연이 창조주 하느님의 거룩한 숨결이 서린 '창조'이고, 인류에게는 그 '창조'를 돌보고 가꾸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환경문제가 신앙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해보는 주교회의 지침서이다.)

- 편   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 규   격: 신국판(148x220㎟), 무선철, 64면, 2,500원
- 발행일: 2010년 11월 30일
- 대   상: 모든 사목자와 평신도





세계 교회에서 유일하게 환경 관련 지침서를 발행한 나라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교님들 대단합니다. 그런데 요즘 하는 거 보면 별로 대단하지 않은 거 같아요. 어찌되었든, 환경의 보존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이 있다는 것이고, 이처럼 환경의 보존에 대한 기본적 인식에선 모든 주교들이 일치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왜냐하면 이 지침서가 나오려면, 모두 동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황청 훈령이나 교령이 번역되어 나오겠지만, 이렇게 지역교회 자체가 하나의 문헌을 발행하려면 모든 주교들이 동의해야 합니다.

'환경파괴'는 시대적 불의

책의 머리말의 후반 부분을 보면,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이미 1970년대 초반에 인류가 환경파괴로 그 희생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시고 환경파괴 문제를 '시대적 불의'로 진단하신 바 있습니다. 이에 관련해서1972년 유엔에서 개최된 '스톡홀름 인간 환경회의' (혹은 유엔인간환경회의)에 보낸 교황 바오로 6세의 메시지는 인간과 환경이 하나의 공동운명체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한 지역의 남용과 파괴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며, 이 때문에 인류 공동의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희망하며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불의와 생태적 불의의 당연한 연관성

이러한 전제는 하느님의 창조 선물인 자연자원의 혜택을 모든 인간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자원, 경제, 돈 모든 게 다 양극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부유한 산업국가들의 소비생활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불의와 생태적 불의는 당연히 연관성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1997년부터 2000년 초반에 필리핀 민다나오 섬 선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1997-3-2] 조해붕, 이효언 신부 필리핀 최남단 민다나오 섬으로 선교사 파견)  원주민들과 살게되는데, 원래 이름이 뭐냐면, 글자는 없지만 말은 있어요. 그 분들을 일컬어 '수바니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수바니야'에서 '수바'는 '강'을 뜻하고, '수바니야'는 '강가의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1천미터가 넘는 산악 고지대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아갑니다. 스페인의 침략 이후에 착취와 발전이 이뤄지면서 원주민들은 밀리고 밀려서 이주를 하게 되어 결국 강가 사람들이 산 속 사람들이 된 겁니다. 그런데 그건 결국 누굴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Vs. 블러드 콜탄

또 하나 예를 들면, 모두가 다 갖고 있는 핸드폰에 들어가는 많은 광물질 중 '콜탄'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프리카 중부 콩고에서 세계매장량의 80프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콩고는 중부에서 최대 빈국 중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고, 또한 분쟁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핸드폰 쓰는 사람은 문명을 누리고 그걸 만들고 제조하고 판매하는 게 어디인가요? 아이폰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희생적 요소? 

정의란 무엇인가를 말할 때, (아이폰 제조사 애플에게) "너희는 그렇게 정의와 빈부격차에 관심갖고 나눔가지려고 하는데, 너희가 세우는 공장 지역 노동자들과 농민들이나 지역인들의 월급이나 혜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니까, 이걸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적 요소라는 부분을 스스로 말합니다. 해결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말합니다. 그런 것처럼, 생태적인 것은 정의와 반드시 밀접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핸드폰 쓰는 인구는 (국제전기통신연합 ITU가 2014년 6월 6일 발표한 '2014 정보통신기술(ICT) 통계보고서'에 따르자면) 개발도상국에서의 가입자 증가 추세에 힘입어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70억명에 도달할 것으로 봅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추정하는 전세계 인구는 71억명이지만) 사실상 첨단을 걷는 한국은 한사람이 두 개 가까이 핸드폰을 쓰고 자주 버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지도에서 사라지는 섬나라 

지도에서 사라지는 섬나라가 있습니다. 투발루는 생태적 위기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나라는 이미 나라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국토포기선언은 와전된 말이란 얘기도 있음) 과학 문명과 별로 관계가 없는 나라인데, 국민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 떠돌고 있는 것이죠.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투발루의 인구는 1만 6천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를 보면, 투발루는 전 국가적 차원으로 최초의 환경난민이라로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선진국의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화석 연료를 과다 사용하고, 그로 인하여 지구온난화가 촉진되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일인당 이산화탄소배출량이 가장 작은 나라가 어이없게도 나라를 잃게 된 입니다. 또 다른 게 온실가스인데, 2001년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기후협약 탈퇴합니다. 

사라질 위기의 섬들이 여럿이 있는데, 그 중 세이셸 공화국이라고 있습니다. 인도양의 마지막 낙원인데, 얼마전 TV 홈쇼핑의 관광상품으로 보이기도 했던 나라입니다.


세이셸 공화국


몰디브 공화국


우리는 죽고 싶지 않다 - 수중 각료회의 

이런 피해의 나라들은 지구온난화로 또 있어요.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몰디브, 모잠비크 등이 있습니다. 몰디브 대통령이 2009년도에 호소를 합니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다. 손자들도 몰디브에서 키우고 싶다." 지상낙원으로 불리우는 몰디브의 대통령 모하메드 나시드가 2009년 10월 17일 각료 13명과 함께 '수중 각료회의'를 마치고 올라와서 한 말입니다. 이들은 스쿠버 다이빙 복을 입고 바닷속 6미터 지역에 마련된 책상에 둘러앉아 <온실가스 배출규제 촉구 결의안>에 서명을 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수몰의 위기에 처해있는 국가의 절박한 상황을 알리려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후변화로 생긴 2004년도 12월 동남아 (특히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 등) 쓰나미(희생자 22만명), 2005년 8월말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국 뉴올리언스는 여전히 아직도 피해당시 그대로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인명피해는 사망과 실종자 등 2,541명이란 통계가 있습니다. 

2008년도 5월 12일 쓰촨성 지진 (리히터 규모 8.9의 대지진으로 약 7만명 사망 추정, 실종 1만8천명, 중상 37만4천명), 2009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2010년 아이티 지진, 파키스탄 대홍수, 2010년 간쑤성 산사태 등,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쓰나미, 핵발전소 폭발 등 무수히 많은 참사가 지구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첫번째 가르침에서 말하는 불균형이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첫번째 환경에 대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아요. "생태위기의 문제는 정의· 평화의 문제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즉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 등과 공통된 정의다. 등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번째 환경에 대한 가르침

두번째 환경에 대한 가르침은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 생태계 위기 극복을 위해 과학기술적 방법의 긍정적 기여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신앙적인 접근이 함께 필요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간추린 사회교리 제459항>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459 
모든 과학적 기술적 적용의 핵심이 되는 준거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며, 이는 다른 모든 생물체에 대하여 존중하는 태도를 수반하여야 한다 . 생물체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는 생각을 할 때에도 "각 사물의 본성과 질서 있는 체제 안에서 그것이 지니는 상호 연관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물학 연구의 엄청난 가능성들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우리는 아직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이나 비도덕적인 새로운 형태의 동식물 생명의 개발로 야기될 수도 있는 생물학적 혼란을 평가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으며, 인간 생명그 자체의 기원에 관한 용납될 수 없는 실험에 대해서도 아직 무엇을 얘기할 만한 처지에 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과 농업 분야에서 이러한 발견들의 적용이 오랜 기간 폐해를 미치는 결과를 불러일으켜 왔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지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생태계의 한 영역에 개입할 때에 그러한 개입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결과와 미래 세대의 행복에 대하여 모두 마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교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처럼 발전을 해 나가고 있다는 것은 인간인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죠. 그것이 특정한 사람이나 지역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과학기술과 종교가 대립된 것처럼 보이는데, 영역이 다를뿐 본질이 다르진 않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 우주만물에 대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리가 아는 과학기술 내용만 봐도, 얼마나 많은 은하계가 있나. 하늘의 별과 여기 한정된 모습만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핵 방사능과 고엽제의 해악

과학기술은 참으로 양면성을 갖고 있어요. 그것은 가치중립적이면서도 인간이 잘못 사용해서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핵과 고엽제 등입니다. 핵 방사능과 고엽제에 대해서는 약이 없습니다. 고엽제는 베트남전에 쓰이고, 1970년대 전장이 잘 보이게 하려고, 당시 군인들이 휴전선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죽을 때까지 병원에 가는 신세입니다. 더더욱 불행한 것은 그것이 유전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핵방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1백여가지 요소가 있는데, 보이지도 않아요. 이것은 한번 분열이 생기면서 에너지가 나오는데, 분열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생기는 게 심야전기죠. 그러면 전기가 남아돌아서 쓰는데, 또 뭐가 좋아하죠? 가전업체!

냉장고 최소한 2대?

냉장고 한 대 있는 집 손들어 보세요. 김치냉장고, 와인냉장고 별의 별 것이 다 있죠. 지금 우리는 보통 웬만하면 냉장고 기본 2대 이상입니다. 그것에 대해 대비하는 게 미니태양광 발전을 합니다. 남향으로 240~250 와트짜리 냉장고 한대를 돌립니다.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들고 다녀도 됩니다, 솔라시계 보셨죠? 똑같습니다, 인버터가 있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게 있는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왜? 한국전력 망할까봐? 모든 걸 돈으로 생각하고, 돈이 될 건지 안될건지 먼저 생각하니, 돈이 되는 것만 하는 겁니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관련해서 발표할 내용을 다 알고 있었어요. 이미 기술과 내용은 다 알지만, 요때쯤 써먹으면 좋겠다. 그렇게 인간위주, 환경위주, 생명위주가 아니라 돈 위주, 금권주의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과학기술 남용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었기에, 인간이 책임있다는 걸 교회가 가르치는 겁니다. 

환경에 대한 주교회의 지침서인 <창조질서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책에서 7항을 보면 주교님들이 이야기하길 4대강 정부가 하는 국책사업을 반환경적인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관련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4대강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대표적인 난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이 홍수를 막고 물을 깨끗하게 하며, 물 부족을 해결할 세가지 목적으로 강을 정비하는 공사라고 한다. 4대강 정비의 핵심내용은 강바닥의 준설과 수중 보(堡)의 건설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보의 건설로 물이 갇히면 오히려 홍수의 위험을 증대시키고 수질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반대에 직면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홍수 피해의 97%는 4대강이 아닌 지방 하천과 소하천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4대강 본류가 아닌 지류와 상류의 물을 잘 관리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홍수를 예방하고 물을 깨끗이 하는 것에 해당한다. 전 국토의 구석구석을 흐르는 4대강 유역 곳곳에서 단기간에 강변의 모래톱을 없애고 대신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고 자전거 길을 내는 대규모 토목 공사는, 생태계에 어떤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반환경적인 계획이다.

제가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 대표였는데, 4대강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환경에 대한 주교회의 지침서에 담았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것인데, 이게 다 어디로 가냐면, 교황청으로 다 보내지죠. 문서로 가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4년간 <4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재원은 22조 28억원입니다. (이것은 국토해양부, 환경부, 농림수산부 3개 부처가 4대강에 투입한 예산 총액이다. 국토부가 15조 4,3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환경부가 3조 8,900억원, 농림수산식품부는 2조 9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본 사업 외에 지류지천 소유예산이던 18조 4천억원을 포함하면 4대강 예산은 40조원이 넘는다.)




22조면 한 청년이 월급 250만원으로 하면, 20만명이 넘는 젊은이가 삼십년동안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면 한 세대가 완전히 세상을 다 바꿀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아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10여년동안 3십 몇조가 더 들어간다고 합니다, 엄청난 사건인 겁니다. 지금 젊은이 취업율은 10%도 안 되고 7%, 6%,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50대와 60대는 십 몇 프로입니다. 40대부터 시작하면 20프로 가까이 됩니다. 우리의 미래를 살리려면 더 살아야 합니다. 그냥 간단하기 표현하지만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쓸 수 있을 때 우리가 살 수 있는 겁니다.  

자연은 내버려두면 똑같이 안되지만, 복원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도 내버려두고 관심만 가지고 있으면 사춘기를 죽을 때까지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인간인데, 인간이길 포기하면 안되는 데, (그러면서, 양재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다음으로 고향이 근처 지역이라면서 장호원의 이포? 장면을 보여줌) 

세번째 가르침... 즐거운 불편

쉽게 말하면,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는 게 좀처럼 쉽지 읺습니다. 그래서 실천적 운동을 하기 위해서 즐거운 불편이란 것 해보자! 이 얘기하면서 여학교들은 교훈이나 교풍이 진선미 같은 게 있죠. 제가 중학교때 급훈이 "사람되자"였습니다. 하도 중학교 애들이 망나니 짓 하니까, 성실 이런 거 떼어놓고 '사람되자'고 한 겁니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의 생활양식과 사고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사실상 커다란 것부터 하자는 게 아닙니다. 

소비가 미덕?

예전에는 70년대부터 '소비가 미덕이다'란 말이 있는데, 왜 소비가 미덕이라고 그랬을까요? 못 찾겠어요. 그래서 유명한 문헌을 봐도 안 나오고, 절제가 미덕이란 말은 수도 없이 나오죠. 맹자, 장자 등 많은 분들이 얘기했는데, 소비가 미덕이란 건 상업적 용도였던 거죠. 단순한 소비논리를 장려한 것입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필요한 데, <간추린 사회교리 486항>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486 
심각한 환경 문제들은 "진리와 미와 선의 추구와 공동선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맺는 친교가 소비, 절약 그리고 투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채택하도록 이끄는 사고방식의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검약, 절제, 자제로 생겨나야 한다. 단순한 소비 논리를 깨야 하며, 창조 질서를 존중하고 모든 인간의 기본 요구를 충족시키는 농산품과 공산품을 장려하여야 한다. 지상의 모든 사람은 상호 의존한다는 것을 새로이 깨우침으로써 오는 이러한 태도는 수많은 생태계 재난의 원인을 근절하고, 그러한 재난이 인간과 영토를 덮칠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해 줄 것이다. 환경 문제에 대처하는 이유가 오로지 환경 파괴가 가져오는무서운 전망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환경 문제는 무엇보다도범세계적 차원의 참된 연대를 촉구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


왜 교회는 가난해져야 하는가?

먹고 사는 기본적 욕구 이상으로 99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 것을 빼았습니다. 수출은 흑자라는 데 경제는 쪼그라드는 게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낙수는 있나? 없습니다. 우리의 도덕과 윤리가 다 완성되면 가능한 얘기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은 도덕적 윤리적 상실때문인 거죠. 예전에는 <상도>란 드라마도 있었죠. 인간의 도리를 행하는 것. 교회도 소유에서 존재 중심으로 생활 방식을 바꾸고,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저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가난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본래 신앙이 살고, 박해를 받아야 신앙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맞아야 정신을 차립니다. 신앙을 내 편의와 내 중심적으로 가져온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을 해야 하죠. 

계시란 간단히 한 마디로 하느님이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신 것이죠. 그 계시를 믿는 게 신앙입니다, 어떻게 드러냈는지 표현한 것이 뭐냐면, 성경입니다. 성경에 뭐가 나오죠? 구약시대부터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과 하느님이 함께 하시고, 또 어떻게 하라고까지 보여줍니다. 대예언자, 소예언자, 판관들을 보내면서, 세상의 어렵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면 다 철퇴를 받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하는 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계속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경의 예언자들 다 핍박을 받습니다. 인간 사회가 그런 거죠. 요즘같으면 종북이라고 하는 겁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는 게 예언자

여러분의 신앙은 예언자인 겁니다. 소리 치라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통해 여러분을 통해 하느님이 드러나는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는 게 현실 속에서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신앙을 얘기하면서 내가 힘들고 고통받는 거 싫어하고, 손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손해보는 것에 민감합니다. 아이들도 그런 걸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 자기만 아는 겁니다, 다행히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불의한 것을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

불의한 것을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 그런 게 세상을 드러내는 이들의 역할인 겁니다, 시회에 내가서 대단한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먼저 내쪽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그 모습을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중심의 삶입니다.

존재 중심의 삶으로

2006년부터 서울교구 환경사목에서는 즐거운 불편 운동을 합니다. 소유에서 존재로 바꾼 것입니다.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조금은 불편해도 즐거운 여러가지 과제들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신앙실천운동. 작은 것이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것이 좋으며, 소박한 것이 멋있다는 새로운 전환 운동입니다. 

수도권에 2,500만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60세가 청년입니다. 생활의 모습이 바뀌어 주변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 에너지가 필요없이 몸만 움직이면 되는 것들을 모두 돈을 내고 사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행복을 얻었을까요?

네번째 가르침

생태위기 극복의 열쇠는 그리스도교 인간중심주의의 올바른 구현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은 인간은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하며, 창조주를 무시하는 일이나 인간과 인간의 환경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39항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339 피조물은 저마다 고유한 선과 완전성을 지니고 있다. '6일 동안' 하신 일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한다. "만물은 창조의 조건 자체에서 고유의 안정성과 진리와 선, 또 고유의 법칙과 질서를 갖추고 있다." 저마다 고유한 존재를 지니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신 다양한 피조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의 빛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하여, 창조주를
무시하는 일이나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한다.

2008년도 교황청 내사원에서는 무엇이 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 환경파괴는 죄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만일 환경파괴를 하는 순간에 처해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결은 나에게 있습니다.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생태적 고해성사가 필요합니다. 고해소에 가서 고해성사만 하는 게 아니라, 이거 한번 해봐야지 하면 그게 고해성사이고, 하느님 창조질서 보존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2008년 3월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금세기에 회개가 필요한 '세계화 시대의 신(New) 7대 죄악'을 제시했다. 교황청 내사원 지안프랑코 지로티 주교는 사순절 세미나를 마친 뒤 “사제들은 멈출 수 없는 세계화의 과정에 따라 수반되는 새로운 죄악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 7대 죄악을 열거했다. 신 7대 죄악은 △환경 파괴 △윤리적 논란을 부르는 과학 실험 △유전자(DNA)를 조작하는 유전 실험과 배아줄기세포 연구 △마약 거래 △소수에 의한 과도한 부의 축재로 인한 사회적 불공정 △낙태 △소아 성애(性愛). 등이다. 한편 새로운 7대 죄악은 로마 시대인 6세기에 그레고리 교황이 7대 죄악을 정리한 지 1500년 만에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기존 7대 죄악(교만, 탐욕, 식탐, 색욕, 분노, 시기, 나태)이 개인 문제와 관련되었다면, 신 7대 죄악은 사회적 각성을 불러이으키는 내용들인데, 이에 대해서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속화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죄의식이 사라지고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가톨릭 신자들이 늘고 있다"는 통탄어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기서 환경에 대한 두가지 관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생태중심주의이고, 그것과 함께 범신론적 태도가 있어서 교회가 강조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교 인간 중심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그리고 자연과 횐경 파괴하는 순간이 오면, 이 자연스러운 자연 안에서 모습 유지하라는 것인데, 동물만도 못하죠. 동물은 열심히 먹다가 배부르면 안 쳐드시는데, 인간만 쳐드십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하느님을 드러낼 수가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 모습대로 만들어진 특별한 인간은 자연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이나 지배권을 결코 행사할 수 없다는 관점입니다. 영어로 에콜로지라고 하는데, 이 놈의 '에코'를 다 상품이 붙여놓으니, 그런 상품을 쓰면 에코가 쓰는 줄 알고 있습니다.  


2015년 4월 20일(월), 저녁 7시, 가톨릭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제109차 사회교리학교의 열 한번째(11주차) 강의가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되어 저녁 8시 27분경 끝났다. 서울 중구 명동2가 1번지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린 11주차 강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조해붕 신부의 강의로, 주제는 <환경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위 기록은 강의의 전반부다. 후반부는 아래 링크 참조


조해붕 신부의 환경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2)

요한의인권노트/정의평화노트 2015/04/20 23:30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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