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0일 부활 제6주일
전민동성당 밤 9시 미사 강론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는 마음
오늘 복음 (요한 15,9-17)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들을 자격이 있겠죠? 우린 이런 말을 들으면 참 편안하게 느낍니다. "하느님께서 날 사랑하신다."
그런데 이 전체적 막락은 그것 말고도 다른 뜻이 있는 거 같아요.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라고 하시면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고(요한 15,13 참조) 말씀하십니다. 종과 친구의 관계도 마찬가지죠, 이런 것들은 하느님이 우릴 사랑하신다는,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랑안에 머물고 기쁨을 느낀다는 이러한 편안한 마음에 뭔지 모를 부담이 있는 말씀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보다는 그분께서 우릴 뽑았다는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모범에 따라 우리도 그런 삶 살아야 한다는 계명에 무게가 실려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면 우린 어떤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나요? 예수님은 누구를 사랑하시고, 사랑을 베푸셨는가? 그분께서 손을 잡아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그런 결과들은 어떠하였나? 그걸 보고 그걸 따라가는 것이 적어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랑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냥 쉽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게 우리 삶과 예수님의 삶을 일치시키는 노력을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토요일) 어린이 미사가 끝나고 난 시간에 수녀님이 말씀하시길, 이상한 사람이 저쪽에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가 아파서, 이상한 사람인가? 그게 아니고. 아이들도 다 나가고, 전형적인 노숙인인데, 여기 계시면 안된다고 나가시라고 하는데,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드러눕는 겁니다. 그래서 관리장을 찾았는데, 시내 나가셨다고 해요. 그래서 (보좌신부) 박 신부님에게 제가 본당 신부니까 시켰죠. 그리고 저는 일이 있어서 나갔는데, 박신부님에게서 문자 왔어요. 이 사람 데리고 나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답을 못했는데,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고 해요. (보좌신부님이) 저보다 백배 낫습니다. 예수님을 닮았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죠? 집에 와서 밥을 달라고 하면 112에 신고하나요? 우리를 일일이 못살게 구는 건 112죠. 사실 여러분이나 저나 비슷한 생각을 하죠... 고맙습니다. 여러분과의 동질감이 생깁니다. ... 그런데 그게 아니죠. 박신부님이 옳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얼마나 신부님인 척하며 살았나! 나에게 사랑이 없었다! 나는 무관심했다!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밀어내려고 했던 마음이 강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뽑아서 명령을 하시면서, 바로 예수님이 손을 잡아준 사람들을 잡아주라고 하시는데,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그걸 안 잡아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그 자리를 피했던 거 같아요.
글쎄 뭐, 저는 신자들에 대한 판단은 항상 보류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안에 사랑과 관심이 있는가? 이런 걸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들어 오다 보시면 반석동 바자회 티켓 700장 가져왔습니다. 1,000장 가져오려다가 부족해서 700장 가져왔는데... 사실 떠밀려서 가져온 거에요. 지구좌 성당이고, 하기동 같은 작은 성당 500장 한다고 해서 더 많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가져오고, 주보 내고, 공지사항으로 '구입 좀 해주십쇼.'라고 이야길를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여러분. 따뜻한 사랑으로 해주기보다는 무관심 비슷한 태도로 가시는 걸 보며, 전민동 성당 지을 때 나도 뭔가를 했는데, 이 생각 딱 들었어요. 바자회 했죠? 제가 그걸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고, 그 정도는 저도 대출받아서 할 수 있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되고, 우리가 지출이 많은 5월입니다. 다행히 영명축일이 5월이 아닌게 다행입니다. 다행인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더 관심을 가지고 나눠야 할 부분들이 있을 때, 우리가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 자리에 있었으면 누구의 손을 잡아주시고, 우리에게 누구의 손을 잡아주라고 했을까? 이런 생각하면서 신앙생활했으면 합니다. 하느님께 시랑받는 거 만큼 행복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 행복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다른 이에게 충분히 전달될수 있도록 하길 원하시고, 우릴 그런 사람이 되도록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나를 따뜻하게 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까지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이 더 좋은 신앙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15-5-10 주일 밤 9시 미사.
전민동성당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강론말씀 끝.
당일 신부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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