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업화가 갖는 두가지 의미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평가'라는 용어
끝없는 생산의 추구와 사기업 방식의 관리
대학의 기업화는 2가지 뜻을 갖고 있다. 첫째는 '끝없는 생산'의 추구이고, 둘째는 '생산과정에 대한 사기업방식의 관리'정책이다. 교수는 지식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책임자이고, 그 과정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철저한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한 필요에 따라 등장한 것이 바로 '평가'이다. 영어로는 Assessment이다. 이제 '평가'는 대학의 숙명적 용어가 되었다. '대학평가', '기관평가', '학과평가', '학문평가' 등 평가를 전담하는 '경영평가팀' 등의 부서도 생겼다.
'평가'의 등장
평가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대학의 교육과 배움의 과정은 인격을 수양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차원에서 더욱 더 멀어지게 되었다. 이제 평가를 잘 받으려면 기술적인 차원이 중요해졌다. 질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정성적 평가라는 영역과 함께 양적 부분을 평가하는 '정량적 평가' 부분에도 관심을 쏟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 교육은 제품이고 제품은 효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또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미리 밝혀야 한다. 교수는 대학기업에 고용된 일꾼이며 생산관리직에 소속되었고, 학생은 그 교육의 소비자가 된다.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소비자가 만족하기 위해서 교육의 내용은 관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의 내용은 품질관리 체제 안에 편입된다. 대학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이 서로의 인격을 교환하고 지적인 교감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점점 더 어색해지는 것이다. 기업형 행정관리 체제가 고용인인 교수와 상품화된 지식과 소비자인 학생을 연결하는 방식이 새로운 대학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예전의 대학의 모습은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려는 사람들의 공동체], [소비자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이제는 그런 공동체로서의 대학은 사라져가고 전설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본질적 변화의 시작이 바로 1980년대 이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사회주의의 모순과 동구권의 몰락이 다른 한편에서는 서구 문명의 한 시대가 작별을 고하면서, 대학을 포함하여 전 사회가 신자유주의로 불리우는 새로운 현실로 입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의 몰락]의 저자 서보명은 그의 책 40쪽에서 영화 [산타는 괴로워](2007년 개봉작)을 흥미로운 사례로 제시한다.
2007년 개봉한 미국 영화 [산타는 괴로워]는 비만으로 고생하는 산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산타가 운영하는 북극의 선물 공장에 효율성 전문가가 나타나서 간섭을 하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얘기를 담고 있다. 이처럼 '효율성'이란 단어에는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으로 작동되는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본주의의 하부 도구로 전락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먹고 살고, 자본주의식 경쟁은 무한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과 도태라는 두가지 갈림길에서 승리해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느냐, 죽느냐'라는 도식이 시대적 화두가 되었을 때, 대학은 그 경쟁의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심리가 작동된다. 그렇게 대학은 인문학을 버리고 기술교육과 취업공장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사느냐, 죽느냐'라는 화두는 곧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이분법적인 영역에서 단 한가지만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대학이 기술교육이나 취업형 학과만이 생존하는 곳으로 변모되었을 때, 그 본래의 취지는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기술이나 공학교육을 받고 취헙하여 살아가는 그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적 사회질서의 보장이 되어야 하지만, 자본주의의 요구와 필요에서 민주적 사회질서는 쓸모없는 생각들과 같은 그룹에 속하는 것이다.
민주시민사회의 중산층이 되는 것
사실상 취업의 목적은 민주시민사회의 중산층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가는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중심의 교육이 기술자와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삶과 현재의 역사적 의미를 민주적 시민사회의 틀 안에서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가 있다. 인간 공동체가 민주사회를 이루기까지 흘려왔던 피와 잃었던 목숨들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가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자본주의의 이분법은 1%의 승자만을 남긴 채 나머지 99%의 사람들을 노예로 종속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체제순응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저항의식으로 일구어낸 민주주의는 질식하하면서 결국 가진자들만의 사회로 변질되는 모습을 넋놓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기업의 하부구조가 된다면...
대학이란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사회적 기능을 당연히 갖추고 있다. 대학은 사회가 만들어낸 최상의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시대를 이끌어나갈 인물을 배출하는 당연한 최후 교육기관의 성격을 대학은 갖고 있다. 따라서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교육이나 이공학적 지식에 대한 교육의 내용을 충실히 채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배움의 과정을 오로지 경쟁의 논리로만 씌우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국가경쟁력이란 단어에 진정 도움이 되는지는 의심을 품어봐야 한다. 더더구나 대학이 기업의 하부구조로 전락한다면 민주공화국의 국가는 그 존재의미를 점점 더 잃어갈 수가 있다. 대학은 기업의 일꾼을 배출하는 직업학교로 변질된다면, 자유로운 비판적 배움의 공간이 사라지면서 진정한 대학의 가치는 훼손되고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일 수 없는 기업부속 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학은 그런 위기와 몰락의 과정에 빠져있는 것일 수도 있다. (끝)
대학의 몰락 시리즈 7. | 1장 대학의 현실 … 대학과 경쟁 중.
서보명의 책 <대학의 몰락>에 대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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