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성의 철학 ... 레비나스 

실종된 인간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1980년대, 해체론과 포스트모던 논쟁


1980년대 이후 해체론이나 포스트모던 논쟁이 서구 사상의 탈인간화에 공헌한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계몽주의 사상이 끼친 나쁜 영향들을 비판하면서 계몽주의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합리주의적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는 의도가 있었고, 그 '합리주의적 이성'이란 곧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 된다. 


타인의 부름을 통해서 실종된 인간을 찾을 수 있다


계몽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서구의 근대사상은 인간보다는 이성을 극찬하는 오버를 하는 와중에 진짜 '인간'은 까먹어버렸다. 이와 같은 사정을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인간 문제로 바라본 사람이 레비나스였다. 실종된 인간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 그것을 레비나스는 타인의 부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탈무드 주석가

1906년 리투아니아(러시아)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1995년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유대계 프랑스인 레비나스의 90년 인생


1906년생의 유대계 러시아인(혹은 러시아제국 내 리투아니아인) 레비나스는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프랑스에 정착한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생애 전반기에 1차 세계대전(1914 ~ 1918)과 2차 세계대전(1939.9.1 ~ 1945.9.2)의 큰 전쟁을 두번 겪었다.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전통적인 유대교 교육을 받은 그는 17세인 1923년 프랑스로 유학해서 철학을 공부하고 1928년, 22세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2년 후인 24세에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프랑스에 처음 소개했다고 한다. 


"철학은 충격과 망설임에서 시작한다." - 레비나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33세의 레비나스는 프랑스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1940년 독일군에 체포되어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간 포로수용소에 갇혀지냈다. 그 와중에 그의 가족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포로수용소 생활과 수없이 많은 유대인들이 개죽음을 당하는 현실에 그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독일 땅을 한번도 밟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그의 철학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1500년 동안 그리스도교의 복음적 영향을 받고 성장한 유럽이 이와 같은 엄청난 살상과 파괴를 자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도대체 전쟁의 폭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발생은 서양철학 때문


자신의 구체적 경험으로 인해서 레비나스는 전쟁과 서양철학의 전통이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보았다. 전쟁은 전체주의적이고, 서양철학은 하나의 이념으로 통일시키고 포괄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인 것이다. 전체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을 무참히 제거하는 전쟁의 속성이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레비나스가 유명해진 것은 1961년에 내놓은 그의 대표작 전체성과 무한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의 나이 55세 때의 일이다. 


나치주의자이며 반유대주의자였던 대학 은사 하이데거


레비나스는 파산한 휴머니즘 속에서도 Being(존재)이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의미를 지키려던 하이데거를 비판했다. 레비나스는 1928년 독일유학시절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이던 하이데거(1889~1976)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친나치주의자였고,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학생들에게 나치참여 연설을 한 것은 매우 유명한 일이다. 게다가 하이데거는 반 유대주의자였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하이데거를 비판한 것이다. 


타인의 얼굴


그래서 레비나스는 '타자' 즉 다른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유대인을 멸균대상으로 보았던 독일의 만행으로 두 남동생을 잃은 장남 레비나스는 '나의 존재'를 앞세우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20세기의 비극은 나의 존재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전쟁이나 폭력, 그리고 인종청소와 같은 20세기의 비극이 비롯된 잘못된 철학적 사유로 '자아 중심의 철학'을 든 것이다. 그래서 타자를 받아들이고 환대하는 것이 레비나스에게는 중요한 철학적 사유 주제였다. 다른 이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근본적인 악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음은 레비나스의 철학적 사유를 말해주는 한 구절이다. 


타인의 거주, 타인의 노동


"다른 사람의 얼굴은 내가 자발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확립하려는 욕망과 나를 보존하려는 자기보존 욕구가 지닌 도덕적 한계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다른 사람의 존재는 그가 살고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이 노동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사실로 인해서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추구하고자 발휘하는 내 이기적인 마음을 꾸짖는다. 다른 사람의 거주와 노동 앞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영접하고 환대하는 윤리적 주체로서 나 자신을 세우도록 요구한다."


중요한 철학적 요소는 일상이다


레비나스에게 중요한 것은 잠, 불편, 음식, 노동, 거주, 타자, 여자, 아이와 같은 일상과 밀접한 것들이었다. 그런 일상이 우리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요소임을 강조한 것이다. (끝)


『대학의 몰락』 시리즈 <9> 1장 [대학의 현실 / 대학의 몰락] 중.

서보명의 책 <대학의 몰락>에 대한 독후감.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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