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인간해방과 혼자 잘난 서구사상의 허무맹랑함

데리다만 오버한 건 아니다. 서구 보수주의 학자들의 우월감




허무맹랑한 서유럽의 사상


타인의 환대를 강조한 현상학적 실존주의자 레비나스가 실종된 인간을 찾기 위해 타인의 얼굴을 봐야 한다고 말하던 시절에 남미에서 출발한 해방신학과 철학은 1960~70년대의 서유럽이 지닌 사상의 허무맹랑한 말장난들을 비판하고 있었다. 당시 남미에서 중요했던 것은 억압받는 인간의 해방문제였다. 고난당하는 인간의 몸부림이 남미에서는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남미의 인간해방과 여전히 허무주의적인 서구사상


그런데 여전히 서구 인문학의 발전과정은 해석학적 방식을 버리고 구조주의적 방식으로 인문학을 읽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책을 펼치면 보여지는 글자와 문장과 행간 사이에서 읽혀질 수 있는 진정성에 눈을 감고 오로지 텍스트만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서구 인문학에서 고전의 가치는 인간이 남긴 커다란 발자취이지만,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저자는 (이미) 죽었다." 그러니까 "텍스트 밖에는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의미는 없다"는 식의 화두들을 뿌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짓들이 벌어진 것은 주로 1980년대의 일이었다. 당시 대학가 인문학에서 유행하던 단어들이 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러한 사상을 대표하는 이 중 하나가 바로 데리다였다. 


자아도취에 빠진 인문학, 데리다



데리다의 철학은 철학이라고 하기엔 명확함과 엄밀함이 부족하다는 공개적인 비판을 받았다.

1930년에 태어난 그는 74세까지 오래 살았다. 


프랑스 철학자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후설의 현상학을 배우고 구조주의를 철학에 도입했지만, 그가 주장한 해체론은 현대 인문학이 빠진 자아도취의 대표적인 예로 알려져있다. 데리다는 스스로 강력하게 부정하지만, 1992년 데리다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학위 박사를 받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반대여론은 유명한 일화에 속한다. 


캠브리지 명박 소동


프랑스인 데리다가 62세이던 1992년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은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 싶어했고, 교내의 영향력있는 인사들과 분석철학적 성향의 학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여러 원로들, 베리 스미스, 데이빗 암스트롱, 느레 톰 등을 비롯하여 미국의 대표적 철학자 콰인도 동참하면서 많은 철학자들이 공개적인 명박 학위수여 '반대성명'을 낸 것이다.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데리다의 철학은 '철학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호하고 경박한 데리다를 데려다가 명박이라니


명박 수여 반대자들은 데리다의 철학이 학문적으로 명석하지 않고 애매한 표현으로 가득찼다고 보았다. 게다가 엄격함을 결여하고 허풍적이기에, 한마디로 명확성과 엄밀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콰인은 그를 사이비 철학자이자 소피스트라고 비난했다. 데리다의 글이란 기존의 학문적 글쓰기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고 있어서 모호하기 짝이 없고, 이성과 진리에 대한 공격으로 가득찬 경박한 내용이기때문에 명박을 주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견원지간, 프랑스철학과 영미분석철학


사실 데리다와 영미철학자들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77년 오스틴의 화행철학과 관련하여 존 R. 설과 주고받은 논쟁은 사이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그러한 사정이 진행된 후로 생겨난 명박수여에 대한 반대여론 속에서 캠브리지 대학의 명박 수여에 대한 문제는 투표에 부쳐지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그 결과 336대 204표로 명박 수여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물론 그 뒤에서 데리다에 대한 서구사상계의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지식사기꾼이거나 새로운 철학의 선두이거나 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데리다가 서구 대학에 끼친 부정적 영향


이처럼 논쟁적인 데리다의 사상으로 대표되는 구조주의와 해체론적 입장은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적 가치를 서유럽의 대학들에 확산시켰다. 위의 사례처럼 데리다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데리다의 영향을 받은 대학에 전파된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적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비사회성과 반이성적인 경향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생겨난 것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대학'과 관련된 책이 바로 알렌 블룸의 『미국 정신의 닫힘』(Closing of the American Mind)이다. 알렌 블룸은 당대의 '인간은 없다'는 식의 지적 분위기 속에서 영혼을 살찌우는 고대 그리스 플라톤 철학의 이상을 되찾아서 대학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의 몰락] 책에서 저자 서보명이 <미국정신의 닫힘>이라고 소개한 책은 

1989년 <미국정신의 종말>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판된 바 있다. 정가 9,000원


 




데리다만 오버하는 게 아니다. 서구 보수주의 학자들의 그릇된 주장


고전교육과 교양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에서 주로 보수적 성향의 학자들이 보여주던 서양 인문학(Humanities)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전교육과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보수적인 그들의 주장에 그릇된 신념이 섞여있어서 자꾸 오버를 하고 다른 문화권을 멸시하는 생각을 보인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우월성만을 강조하는 데서 오는 편협된 운동, 네오콘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철학과 신학에 대한 강조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 주장이 타당한 골인지점을 지나쳐서 전혀 새로운 길에서 다른 주장으로 연결되는 그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사상의 우월성과 그로 인해 비롯된 자본주의의 필연성과 우수성을 연결시키는 대목을 말한다. 아프리카에는 톨스토이와 같은 작가가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 동양의 사상이 자유민주주의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등은 매우 편협한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편협한 인식은 곧바로 '네오콘'이라고 불리우는 정치적 행동인 '신보수주의 운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대학의 몰락』 시리즈 <10> 1장 대학의 현실 [대학의 몰락] 중.

서보명의 책 <대학의 몰락>에 대한 독후감.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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