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믿음에서 출발한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등하교하는 학교가 아닌 기숙형 학원에서 살았던 고대 철학자들
서보명의 책 [대학의 몰락]에서 저자는 ‘배움은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주장을 여러번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 저자가 ‘신학자’이기 때문에 신학적 믿음을 무의적으로라도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믿음'이란 극히 개인적이지만 확고한 마음가짐
무엇보다도 ‘믿음’이란 확고한 마음가짐이다. 그렇지만 극히 개인적인 심리상태이다. 어떤 사실을 믿는 마음, 어떤 사람을 믿는 마음, 어떤 현상을 믿는 마음, 어떤 가치를 믿는 마음을 말할 때, 우리는 ‘믿음’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믿음은 다른 말로 하면 신념(信念)이다. 종교적 차원에서는 신앙(信仰)이란 표현이나 신심(信心)이란 표현을 쓴다. 신앙과 신심을 합쳐서 신앙심(信仰心)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앙’(仰)이란 말은 ‘우러르고, 믿고, 따른다’는 뜻이다.
믿음에 대한 문제는 ‘인식론’의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었다. 관찰과 경험적 지식이 중요한 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믿음’은 학문의 대상에서 소외되어 갔다. 무엇보다도 서구역사에서 ‘믿음’의 문제는 종교적 차원에서 오랜 역사에 걸쳐 탐구되었고, 그것이 근대에 이르러 심리학의 분야로 연결되기도 했다.
믿음에서 출발하는 배움의 현장
서보명이 ‘배움은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말을 한 것은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맥락에서 제시된 문장이다. 그리고 믿음에서 출발하는 ‘배움’의 현장이 대학이 어떻게 설립되었는지는 역사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학교(학원)들을 보라
플라톤의 아카데미, 아리스토텔레스의 라이시움, 에피쿠로스의 가든, 제논의 스토아 등이 12세기 University가 등장하기에 앞서서 나타난 배움의 현장들이었다. 기원전 희랍 철학자들이 세운 배움의 터전들이었다.
플라톤(기원전 428/427/424/423~348/347)의 아카데메이아, 아카데미(Academy)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리케이온(Lykeion), 리케움 혹은 라이시움(Lyceum)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1)의 가든, 가든 스쿨
제논 (기원전 334~262)의 스토아(Stoa)
등하교하는 학교라기보다는 기숙생활형 학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카데메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아카데메스의 성스러운 숲을 둘러보았던 소크라테스를 뒤를 이은 플라톤이 이곳에 학원을 지으면서 그 지명이 학원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 이후로 등장한 아리 선생과 에피 선생과 제논 선생은 살았던 시기가 약 12년간이 겹쳐진다. 기원전 334년부터 322년까지 12년동안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은 BC 335년 그의 나이 만 51세에 아폴론 리케이오스를 기려 아테네의 작은 숲속에 설립한 학교였다. 강의는 숲속을 걸어다니며 했기에 ‘소요학파’(逍遙學派, 페리파토스 학파)라고도 불리운다.
'가드닝'이 가장 중요했던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집에 학교를 세웠고, 정원(가든)에서 직접 정원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든 스쿨이다. 이곳에는 학생들과 함께 가든의 자연을 함께 돌보며 철학과 삶을 이야기했다. 흔히 쾌락주의로 이해되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지닌 진면목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풍경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원을 돌보는 일(가드닝)이었고, 식물의 터전인 ‘흙을 돌보는 것’을 중요한 수업으로 여겼다.
가장 오래 해먹었나, 스토아
제논이 설립한 스토아(Stoa)는 ‘주랑’(柱廊)을 뜻한다. 기둥만 있고 벽이 없이 펼쳐진 공간을 주랑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학교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한 것은 제논의 스토하 학교였다. 로마제국에까지 이어진 스토아 학파는 500년간 이어져내려왔다. 에픽테토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등이 스토아 학파의 대학자들이다.
배움보다 생활이 앞섰다
그런데 서양 중세 12세기에 등장한 대학(University)와 비교했을 때, 아카데미, 리케이온, 가든, 스토아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학교는 그 자체가 삶이었다고 [대학의 몰락]의 저자 서보명은 말한다. 저자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아도(Pierre Hadot, 1922~2010)의 말을 빌려셔,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이 세운 배움의 터전들에서 가르치던) 철학이 학문적 담론이 아니라, 삶을 선택하는 행위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분업화된 공간에서 강의와 논문 등이 ‘학문’이란 이름 안에서 펼쳐졌다기 보다는 그 자체로 삶이었으니, ‘철학적 삶’을 선택하여 일상을 채워갔다는 주장이다. 배움을 익히고 그 전문영역에 대한 학위를 통해 사회로 진출하여 배운 것을 실천하는 단계적 과정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대학’의 배움과 차이점이 되는 것이다. 철학 공동체적 삶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배움’보다 앞섰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아도는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위와 같은 사정을 자세히 써놓았는데, 2008년 국내에 번역된 이 책은 절판되었고, 정가 22,000원 짜리 책이 중고시장에서 55,000원 , 60,000원, 150,000원 등에 팔리고 있는 게 검색되었다.
2008년 4월 1일 번역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다. 이세진 옮김 이레 출판사 정가 22,000원 456쪽
『대학의 몰락』 시리즈 <18> 2장 대학의 역사에서 [대학의 출발] 중.
서보명의 책 <대학의 몰락>에 대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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