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학을 위한 학생들의 특권'이 시작이었다


홀로 선 '대학의 자유'는 근대 이후에 비로소 정립


대학생은 성직자 '급'이었다


오늘날 대학 졸업식 때 착용하는 '졸업가운'은 서양 중세시대의 학생들에게는 교복이었고, 그것은 성직자의 의복'에서 본 따 온 것이었다. 도시에 대학이 생기고, 그 대학에 학생 인구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마을 주민과의 접촉과 분쟁이 잦아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12세기 초 파리대학을 학문의 모체로 인정한 교황의 교서였다. Parens Scientiarum(1231)이라고 알려진 이 '교서'가 나오게 된 동기는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의 분쟁이 커지면서 학생들은 수업거부로 이어지면서 사건이 날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면학을 위해 여행을 하는 학생들의 특권, 1158년


바르바로사(붉은 수염왕)이란 애칭으로 더 유명한 프리드리히 1세(1122~1190)는 1152년 독일 왕이 되었고, 1154년 이탈리아 왕이 되었다. 그리고 1155년 신성로마황제로 즉위했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 시절에 있었던 카노사의 굴욕사건(1077년)의 강력했던 교황권을 생각하던 로마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1160년 프리드리히 1세를 파문했지만 오히려 프리드리히 1세는 빅토르 4세를 교황으로 임명하며 대립교황 정국이 시작되었다. 프리드리히 1세는 영토를 확장하며 신성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하지만 1190년 십자군 원정 도중 어이없는 일로 죽고 말았다. 



물론 1231년의 교황의 문서가 나오기까지 앞선 사건들이 존재했다.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공포한 <면학을 위해 여행을 하는 학생들의 특권>이란 것이 있다. 12세기 중엽에 등장한 이 [학생보호장]은 서양에서 최초로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교황권과 왕권 모두가 대학의 자치를 인정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였던 것이다. 특히 양립하던 왕권과 교회권력의 복잡한 정치적 암투는 대학의 치외법권적 분위기를 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교황이나 황제가 대학의 숭고한 이념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대학의 자유로운 공기'를 허용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그 자유로움을 지탱해준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때문에, 대학의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는 중세적 뿌리를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가 '대학'(University)라고 불리우는 것은 오리지널 버전은 중세 서양의 정치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우선성이 가장 중요했던 중세


그런데 <대학의 몰락>의 저자 서보명은 중세에 뿌리를 둔 '대학'의 핵심 정체성인 '학문의 자유'가 사실상 중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중세에 형성되어가던 대학의 정체성의 핵심인 자유는 비교적 제한적 의미였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믿음의 우선성'이 가장 중요했던 시대적 요구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문의 자유'가 비로소 홀로서기가 가능했던 것은 종교개혁 이후였다고 저자 서보명은 말한다. 즉 18세기에 등장한 서양철학의 최고봉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의 대학론에 힘입은 결과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칸트의 주장은 '대학의 중심은 신학이 아니고 철학'이고 근대 대햑의 핵심은 '신의 자유'가 아니고 '인간의 자유'였던 셈이다. 


근대, 신의 자유가 아닌 인간의 자유


칸트의 이러한 생각은 대학의 정체성을 개신교의 '개인의 양심에 의거한 신앙의 자유'와 같은 맥락으로 본 것이다. 특히 근대의 다양한 분리주의적 사고방식은 학문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학문'과 '생활(삶)'이 구분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세적 사고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신앙과 삶과 일상 모든 것의 핵심이던 '신앙'의 고정불변한 중심적 위치가 근대에 와서 바뀌었다는 관점이 함께 포함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신학적 세계관의 몰락


교회는 일치의 삶을 주장했지만, 근대 이후의 대학은 새로운 학문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학의 형성은 그러한 제도적 분리주의를 장려하는 촉매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교회의 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일치시키는 삶의 태도가 대학에서 점차 사라져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대학들은 비록 '대학'이란 이름을 쓰고 있지만, '신앙'과는 무관한 '대학'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신학적 세계관'이나 '신앙적 관점'이 필요하다면 '신학대학'이거나 '가톨릭대학'이라는 명칭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대학의 몰락』 시리즈 <20> 2장 대학의 역사에서 [대학의 출발] 중.


서보명의 책 <대학의 몰락>에 대한 독후감.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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