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2013 6월30일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신나게 부르던 9일 기도 성가 

예수님! 주님께서는 독하신 분이시네요!



제가 신학생 시절에는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이하게 되면 신학교에서 ‘9일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여름방학이건 겨울방학이건 간에 한 학기를 마치면서 학기말 시험을 끝내야만 방학을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공부한 것에 대한 학기말 시험을 치르는 가운데 방학을 맞이하기 위한 ‘9일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9일 기도란 매일 저녁기도 후에 성가로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라틴어 성가였는데 “O Jesu, O Jesu, O Jesu!” 하면서 예수님을 부르는 기도로 시작되는 성가입니다. 그 성가 중에는 “Nemo mittens manum suam ad aratrum, et respiciens retro, aptus est regno Dei.”라는 가사가 들어있습니다. 이 가사의 내용은 오늘 우리가 복음봉독으로 듣는 루카복음서 962절의 말씀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 며칠 신학생 6명과 지냈습니다. 우리 하부내포 성지에 노동 봉사를 하러 온 신학생들과 함께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서짓골의 뒷산(명덕산)에 등산로를 닦는 일을 했습니다. 험한 산비탈의 잡목들을 잘라내면서 길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순교성인들의 유해를 안장했던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순례자들이 산에 올라 옛 교우촌을 내려달 볼 수 있는 산길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고된 등산로의 마지막 10여 미터의 작업을 마쳐갈 때쯤에 쉬면서 제가 신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이 고된 일이 끝나가는데, 너희들 신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칠 때마다 기말시험을 보면서 방학 준비로 9일 기도라는 걸 하느냐? ‘O Jesu, O Jesu!’ 하면서 신나게 부르는 9일 기도 성가 말야? "


저의 이 질문에 신학생들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4050년 전 신학생 시절이나 지금의 신학생들의 심정에서 학기말과 더불어 방학을 맞이하는 해방감은 생생하게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듯이 고된 등산로 작업을 마치면서 신학생들은 마치 그 9일 기도처럼 신나게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한 학기말 시험을 치르면서 신학생들은 이 ‘9일 기도의 성가를 부르는 가운데 방학을 맞이하는 즐거움으로 들뜨곤 했었지요. 그래서 이 ‘9일 기도를 마치는 날이 시험이 끝나는 날이자 방학이 시작되는 날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 ‘9일 기도의 날자가 지나갈수록 그 성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더욱 우렁차게 높아갔습니다. 그렇듯이 고된 작업을 끝내면서 신학생들은 순교성인들 묻히신 산에서 성가를 우렁차게 불렀습니다. 옛적에 세상의 삶을 기꺼이 마치면서 치명의 길로 갔던 순교성인들을 기리면서 그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가듯이우리 삶의 방향으로 주님 따라 가는 심정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학기말 시험의 마지막 날, 즉 방학이 시작되는 날의 이 ‘9일 기도의 성가를 마지막으로 부르게 될 때는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가족의 품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엉터리 9일기도를 마치게 되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들뜬 기분으로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떠나가는 신학생들에게 신학교의 지도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방학 동안에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말씀하셨습니다.


방학 동안도 신학교 생활의 연장이므로 신학교에서처럼 기도 생활을 잘 할 것이며, 본당에서 만나는 신자들 앞에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특별히 여자들과 가까이 하지 말고, 부모형제와 함께 지내던 정을 과감히 끊지 못하면 개학 때 신학교에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도 신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신나는 방학 시작에 지도 신부님은 그렇게 초를 치곤했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 말씀을 인용해서 방학 시작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훈시였지요. 얄궂고 독한 비정의 훈시였지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오늘 복음서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눠야겠다고 말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루카 9, 61 참조). 쟁기를 잡은 사람은 밭을 갈기 위해서 앞만 내다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듯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의 태도란 그러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당부 말씀입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한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먼저 집에 가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루카 9, 59 참조), 예수님께서는 아주 가혹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 60)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 보아 이해할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장례마저 포기하고 당신의 분부를 따르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우리 인간의 정리로써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예수님, 주님께서는 독하신 분이시네요!” 하고 말입니다. 마치 방학 시작의 신학생들 기분을 잡치게 하던 지도 신부님처럼 예수님 역시 비정하신 분 같습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임종을 보아드리지 못한 불효자입니다. 십여 년 간 병석에 누워계시던 저의 아버지께서 매우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마침 주말이어서 본당에서의 주일 준비 관계로 가뵙지 못하고 있다가 제가 정작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본당 사목회의를 하던 시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던 그 순간 저의 심정을 뭐라 말해야 할까요! 그리고 몇 년 후 한 교우님 가정에 일이 있어서 불려가 있다가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던 순간 저의 심정! 중요한 사정 때문에 저를 불러놓은 그 교우님에게 제가 어머니 돌아가셔서 빨리 일어나 가봐야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교우님의 일을 끝까지 보아드리느라고 몇 시간 후 택시로 두어 시간 달려갔을 때는 이미 어머니의 시신이 장례식장 냉장고에 들어가 계시더군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최후 순간에 아들로서 옆에 있어드리지 못했다는 불효의 한이 저의 가슴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저의 심정은글쎄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이나 또는 신학생 시절 방학 때 부모형제들과 지낸 정을 끊어버리라고 하시던 지도 신부님의 말씀과는 위배되는 저의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부모의 장례마저 포기하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한 인간으로서의 저의 심정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렇듯 어이없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이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지난주일 강론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을 우선 회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구절들을 읽을 때는 그 앞뒤의 내용(context)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주일에 우리가 읽었던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루카 9, 20)라고 표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이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려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매일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신 말씀(루카 9, 23 참조)과 더불어서 오늘의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레아 전도를 마무리 지으시고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여정의 행보를 제자들에게 준비시키시는 내용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그 행보에 대해서 오늘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 51)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부터 루카복음서는 그 후반부로 넘어갑니다. 그 후반부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여정과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후 일어난 일을 수록하는 부분입니다. , 앞서 갈릴레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교육하신 내용의 전반부에 이어서 이제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이르는 과정을 루카복음서는 본격적으로 그 후반부 951절부터 수록합니다.


그 후반부로 들어서는 시점을 루카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찬 그 시점으로 일컫고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란 예루살렘에서 그분이 맞이하게 될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의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셨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의 결연한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결연한 태도는 오늘 우리가 읽는 그분의 말씀에서 잘 엿볼 수 있습니다.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나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 58)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얽매이신 분이 아니시기에 이 세상에 머리를 기댈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당신이 하늘에 오르실 때가 되었음을 스스로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는 곧 이미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려 하는 사람들은 그분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러한 식의 예수님 추종을 일컬어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의 몸이 되어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오늘 서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갈라 5, 1 13 참조). 그러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따르려면 반드시 인간의 본성적 욕망을 끊어버리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읽는 제1독서에서 우리는 그러한 결단을 보여준 엘리사의 태도를 보았습니다. 엘리야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는 집으로 돌아가 키우던 겨릿소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서 사람들과 작별하는 파티를 연 다음 집을 떠났습니다(열왕 상 19, 2021 참조). 엘리사의 그런 행동은 다시는 과거의 인간사에 돌아가지 않고 새 출발로 하느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인들이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답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의 몸이 된”(갈라 5, 1)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롭게 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바오로 사도께서 오늘 이어서 설명해주십니다.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되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갈라 5, 16 참조). 그러한 삶의 길을 먼저 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한 삶의 길은 곧 오늘 루카복음서가 표현하듯이 하늘에 올라갈 때를 깨달아 새로이 시작하는 삶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가 곧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일로 말미암아 즉, 세상의 일로 패배한 인간사에 얽매이지 말고, 하느님 나라의 삶에로 나아가는 우리의 신앙적 결단인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신앙의 결단이란 세속적 욕망이나 육정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모든 갈등과 집착과 애욕(愛慾)을 끊어버리고 나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욕망과 집착과 갈등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이 곧, 방학을 마칠 때 신학생이 부모형제와의 정을 끊어버리고 신학교에 돌아가야 한다는 비정한 충고였고, 또는 부모의 장례마저 포기하고 자유로이 당신을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역설적인 말씀임을 오늘 우리는 상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비정하고 역설적인 말씀에 이어서 우리는 오늘 아주 멋있는 문학적 표현의 말씀을 예수님께로부터 듣습니다.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라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세상사와 인간 욕망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몸으로 결연하게 신앙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35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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