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무관심하면
결국 가장 저급한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서양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한 말이라고 한다. 민주정보다는 철인 정치를 주장하던 플라톤도 정치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대해서 각성을 촉구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플라톤이 철학자에 의한 '독재' 정치를 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정치'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변론을 가르치는 지식인들(소피스트)와 그들을 비판하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철학자'란 용어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인데, 철학자들은, 감히 자신들을 '지식인'(소피스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소피스트의 말장난에 휘둘렀던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며 죽기까지 했다. 그것을 곁에서 지켜본 플라톤에게 고대 그리스 사회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는 어리석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정치를 주장한 것이 '철인정치'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민주정치의 숭고한 이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드러난 민주정치의 부정적 모습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근현대 사회에서도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여정 속에서 산업사회와 짝을 이룬 민주주의의 왜곡된 모습들이 끔찍한 전쟁으로 이어지기까지 했기때문에 플라톤의 지적을 딱 잘라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다. 무엇보다도 플라톤은 '독재'를 가장 끔찍한 형태의 정치형태라고 지적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선의 역사는 어찌보면 '철인정치'에 해당하는 모습이었다. 철학적 지식에 해당하는 '유교적 사상의 근세적 모습인 성리학자들이 지배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의 지배계층들이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백성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지는 않았다. 조선의 당쟁과 반복되는 사화는 백성들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그들의 득세와 집권을 위한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천재적인 성리학적 지식들이 응용되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것도 종속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정치에 무관심하면 결국 가장 저급한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라는 말은 경향신문 2015년 10월 19일자 5면의 <천부당만부당한 역사 쿠데타>란 기고글 말미에 결론식으로 소개되었다. 이 기고문은 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왜 독재적 발상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경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이정우 님의 이 글은 민주주의의 여정에서 우리가 만난 암초에 대한 설명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이 박정희를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직접 겪게 해주는 아주 귀한 기회라는 역설적 상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링크 [국정교과서 반발확산] (경향신문 2015-10-19)
전문가기고 - (5) 천부당만부당한 역사쿠데타 -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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