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의 근간, 아리스토텔레스는 반 그리스도교?
루터는 대학을 비판했다. 루터가 비판한 대학은 중세대학이고 그 주된 학문 영역은 가톨릭 신학이었다. 루터 역시 신부였다. 무엇보다도 중세대학의 사상적 기초는 아리스토텔레스였는데, 이 철학자는 교부철학의 시대(400~800년)에 서유럽이 잊고 있던 인물이었다. 800년부터 1500년까지를 스콜라 철학의 세상이라고 한다면, 이 시절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부활하여 학문의 근간을 이루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치는 게 쓸 데 없는 짓이라고 루터는 주장했던 것이다.
루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그리스도교의 원리와 전혀 맞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그때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루터는 그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그의 이론이 하느님의 뜻과 어긋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심지어 당시 대학이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는 게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숭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에게는 '오로지 성경'이었던 것이다. 성경의 믿음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의 본질은 '성경의 번역'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은 대중적인 출판 인쇄술의 등장이라고 보는 게 맞다. '오로지 성경'이란 믿음도 그 성경을 대중 독자들에게 알리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고, 그 의도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중세의 썩어빠진 교권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훼손하던 시절에 출판인쇄술의 등장은 믿음의 형태를 본질적으로 바꾸는 촉매역할을 했다. 1450년에 등장한 출판인쇄소를 통해 일반인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일부 고상한 지식인들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펼쳐놓은 이론들을 보태어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학체계를 구축하던 교부철학(플라톤)과 스콜라철학(아리스토텔레스) 시대를 지나서 출판인쇄술을 계기로 '성경번역'의 불길을 통해 '오로지 성경'을 통한 믿음이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성경의 번역은 기득권층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질 수 있었다. 루터에게는 오로지 성경의 믿음을 인간 삶 전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교회 권력층에게는 그따위 백성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번역 성경은 불태워지고, 성경 번역자는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독일에서는 교황이 명령을 내려서 전역에 걸쳐 독일어판 성경이 불에 태워졌으며, 영국에서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는 이유로 윌리엄 틴들은 화형에 처히재고 인쇄된 성경들도 모두 불에 태워졌다고 한다.
틴들은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 가장 진기한 보석, 지상에 남아있는 가장 거룩한 유물이며, 신앙의 안내자요 지침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성경 지식을 보급함으로써 종교개혁이 가능하다고 믿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번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반인이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로마 교황청이 엄격히 금지시킨 일이었고, 어겼을 경우에는 붙잡히면 화형에 당할 수도 있었다. 틴들은 박해와 체포의 위험 속에서도 유럽을 떠돌며 라틴어가 아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을 토대로 번역작업을 계속 했으며 1526년 영어 신약성서를 완성하고 독일에서 인쇄하여 영국으로 보냈다. 그 후로도 구약성서에 대한 번역작업을 계속 했지만, 1535년 네델란드 엔트베르펜에서 1년간 숨어지내다가 영국인 밀고자의 고발로 황제의 법령에 의해 붙잡히고 1536년 10월초에 사형을 선고 받았다. "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화형당했다고 한다.
By John Fox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윌리엄 틴들이 화형당하기 전에 "하나님, 영국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라며 외치고 있다. 1563년폭스의 순교사에 실린 삽화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84~1536)의 옥중 편지. 당시 관례에 따라 라틴어로 쓰여져 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교육받은 그는 성직자들조차 성경에 무지함을 개탄하며 성경 연구에 관심을 쏟았다.
참고로 2002년도에 이스라엘의 유다인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성경을 불에 태운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한 학생이 그리스도교인에게 받은 신약성경을 교사가 찢고 불에 태웠던 것이다. 물론 개신교의 나라 미국 등의 세계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몰라도, "그 교사의 의도는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선교사들의 말을 절대로 들어서는 안된다는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다."라는 교장의 궁색한 변명과 사과가 이어지긴 했다고 한다. 또한 2008년의 이스라엘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유대인 축제(라그 바오메르)에서는 불놀이를 하며 감자를 구워먹는 데, 공개적으로 시청이 각 가정에 있는 신약성경을 모아서 불에 태우는 사건도 벌어졌다고 한다.
『대학의 몰락』 시리즈 <23> 서보명의 책 <대학의 몰락>에 대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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