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순교성인 103위 대축일

2015. 9. 20. 09:00 하부내포성지 만수리 공소

 

순교를 해 봤어야지!

오늘은 강론하기 매운 어려운 날입니다

 


 

오늘 9월 20일, 한국 103위 순교성인들의 대축일을 맞이하여 강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저 자신이 순교의 길을 걸어보지 않았으면서 말로만 순교를 말한다는 것은 사실적 증언으로써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순교를 해봤어야 순교가 어떤 일인지를 말할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순교(殉敎)’라는 행위를 아직까지 해본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저는 말장난 같은 변명(?)을 하고 싶습니다. ‘순교(殉敎)’라는 단어에 대한 저의 거부감으로 변명(?)을 하고 싶습니다.

 

‘순교’란 자신을 버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우리말에 ‘버린다’는 말의 뜻은 그릇을 비운다는 뜻도 있지만, 쓸모없어서 내버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자기 자신의 목숨도 자기 자신에게서 쏟아 내버려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비운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쓸모없는 존재처럼 이 세상에서 내버린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세상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릴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기에 오늘날 ‘순교’라는 말은 우리와 거리가 아주 먼 옛날이야기 속의 말 같습니다. 그렇듯이 ‘순교’, 그것은 나는 못하는 그런 것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겠다고 서로 싸우는 세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것으로 우리 자신 안을 채우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으로 채워 가는 것이 신앙의 삶이어야겠습니다만, 즉 그런 것이 순교자들이 극적으로 보여준 증거 곧 ‘순교’입니다만, 우리는 나 자신으로 나를 채우고 세상 것으로 더 채우면서도 ‘신앙인’이라고 자칭하고 있지요.

 

그러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 24)

 

그렇듯이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은 분들이 곧 순교자들입니다.

 

오늘날 물론 천주교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위기를 당하진 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신앙인으로서 어떤 자그마한 일로 나의 본능적 욕구를 제어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은 흔들립니다.

 

그렇듯이 작은 결심을 해야 하는 그 순간들에 나의 자유의지가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 신앙선조들의 순교역사 앞에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교선열들께서는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고 신앙을 증거 했습니다만, 오늘의 나는 자그마한 불편 앞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면서 제가 어떻게 선조들의 목숨 바친 순교 행적을 제 입으로 칭송할 수 있겠습니까? 조그만 일로 떳떳하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까지 기꺼이 받아드릴 순교정신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앙선조들께서 평소 살아가시는 중에 조그마한 불편을 피하기 위해서 비굴하게 처신한 분들이었더라면 결코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어떻게 내어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 이익과 세상의 편의를 추구하는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죽이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있지 않고서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히 죽어야 하는 길을 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살이 가운데 이미 죽음을 받아드릴 자세로 사셨던 그분들이기에 기꺼이 순교하실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순교 행적 앞에 그래서 부끄러워지는 오늘날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저에게 예수님께서는 나 자신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이란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렇듯이 신앙으로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자세 즉, 신앙인이 받아드릴 수 있는 죽음이란, 곧 참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해서 참된 신앙은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 수 있는 삶인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라야 정녕 자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으로써 순교자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영원히 살려주시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거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버리는 그것이 곧 죽음이요, 진정 죽음 앞에서 증거 함으로써 자신들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 순교자들입니다. 오늘의 우리 또한 자그마한 일에서 나 자신을 버릴 줄 아는 태도로써 우리의 신앙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문출처: 하부내포성지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73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