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일. 2013 9월 22일 10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 경축이동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진짜 알맹이를 꺼내기 위해 껍데기를 버림 

일상 속에서 본능을 죽일 수 있어야!



저는 오늘 한국의 103위 순교성인 대축일경축의 주일을 맞이하며, 뜬금없이 저의 왼쪽 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저는 왼쪽 귀의 만성 중이염으로 일생 고통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저의 몸에 지니고 있는 이 고통의 원인을 생각하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그 원망은 사실상 거의 오십년 가까이 지녀온 원망입니다.


신학생 때 군복무로 논산의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을 받던 중에 얻은 귓병이 이렇게 오늘날까지 떠나지 않습니다. 10년 전에는 너무 악화되어 맘먹고 2주간 동안 입원한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증세가 조금 덜 해지긴 했지만, 컨디션이 나쁜 때면 고름이 나오곤 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찬바람을 많이 쐬었더니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특별 진료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처방 받은 약을 귀에 넣어야 합니다. 그 탓인지, 아니면 이제 늙어가는 나이라서 그런지, 왼쪽 귀의 청력이 현저히 떨어져 갑니다.


그래서 가끔 옛적의 훈련소 악몽이 되살아납니다. 당시 훈련소의 소대 내무반에서는 늘 관물이 없어지곤 했는데, 그게 각 내무반별로 서로 훔쳐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관물이 없어지는 원초적인 까닭은 내무반장들(조교들)의 농간 때문이었습니다


관물이 분실되는 까닭이란, 내무반장이 감춰놓고 그걸 훈련병들로 하여금 보충시키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내무반에 가서 훔쳐오든지 아니면 돈을 걷어서 변상하든지 하라고 내무반장이 강짜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변상의 책임을 소대 향도(훈련병 대표)에게 지우는 것이었습니다


한데, 그 내무반장이 저에게도 1주간의 향도를 맡도록 시키고는 그 관물 변상 요구를 하다가 제가 들어주지 않자 저를 마구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따귀를 정통으로 얻어맞아서 그만 고막이 나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에서 고름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한겨울의 훈련기간을 지나면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훈련소를 수료하고 전방에 배치 받아 복무하는 동안도 변변히 치료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군복무를 마치고 신학교에 복학하여 사제가 되기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이렇게 수십 년 간의 그 만성 귓병을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귓병을 알아오면서 간간히 그 내무반장 조교에 대한 미움이 되살아나곤 했는데, 오늘 순교성인들을 경축하는 날에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옛적의 순교선열들께서는 매를 맞고 몸이 으스러지면서도 웃으면서 기꺼이 고통을 참고 목숨을 바쳤는데, 그분들이야 명분상 신앙의 이유로 그런 고통을 당한 분들이지만, 나는 아무런 명분도 없이 매를 맞아 병을 얻어가지고 이렇게 수십 년 고생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제가 이런 병을 얻어 고생하는 것도 명분을 찾으려면 찾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훈련소에서 매를 맞으면서까지 그 내무반장의 추잡스런 비리에 협조하지 않은 것이 결코 후회나 부끄러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무반장에 대한 미움은 도무지 가시질 않습니다. 오죽하면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내무반장의 이름이 잊혀지질 않겠습니까! 그 사람이 오늘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혹 만난다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심사가 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늘 대축일의 주인공들이신 신앙선조 순교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자 부끄러운 마음이 됩니다. 순교 성인들께서는 그 무지막지한 고통 가운데서도, 그리고 더욱 생명을 빼앗기면서도, 어느 누굴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억울함 중에서도 순교자들의 빛나는 태도란 결코 어느 누굴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여준 태도는 억울한 생각 없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그 증거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최상의 가치를 들어내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교자들이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최상의 가치를 들어내어 주던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순교란 그 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 증거 행위입니다. 희랍어로 순교라는 말을 마르튀리온·Martyrion’이라 하는데 그 뜻이 곧 증거입니다. 어떤 사실에 대한 표명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는 정도를 그 증거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진실 때문에 삶과 죽음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처지에서 죽음을 선택 하는 것을 그 증거의 의미로 순교라 하는 것입니다. 고립무원의 백척간두에서 목숨을 내어던질지언정 결코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하지 않는 것이 그런 증거입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있음을 그렇게 목숨을 바침으로써 증거 했습니다.


그러한 증거는 그야말로 죽음의 칼날에 의하여 진리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인 것입니다. 나 자신의 몸속에 감추어진 진짜 알맹이를 꺼내 보이기 위해서 껍데기인 몸을 벗겨내야 하는 찰나의 태도가 순교 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 도려내지더라도 기꺼이 응하는 것이 곧 순교행위를 일컫는 그 증거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그렇게 진리를 증거 해야 할 상황이란 실제로 어떤 경우이겠습니까? 진정 목숨과 바꿀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순교함으로써 어떤 것에 대한 최상의 가치를 증거 하는 그 행위는 본능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바치더라도 결코 억울해 하지 않는 희생이라야 순교입니다. 그리고 강요된 선택의 기로에서지만 정작 그 희생의 선택에 있어서는 기꺼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순교입니다. 이렇게 억울한 생각 없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그 증거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최상의 가치를 들어내어 주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란 어떠한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의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에 기꺼이 응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너의 신념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목숨을 유지하겠느냐?” 하는 선택의 강요 앞에서 기꺼이 신념을 택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그러한 선택의 강요 앞에서 만일에 내 목숨을 지키려 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지녀온 신념이란 거짓된 것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러므로 순교란 나의 신념이 나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는 고백이자 그 신념의 참됨에 대한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신앙이란 나의 목숨을 요구하여 증거 되어야 할 위기에 그 참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믿음의 삶이 참된 것이라고 가장 확실하게 표명하는 행위가 곧 순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내 신앙이 진정 참된 것임을 증거 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느 한 시점에서 일시적으로 마음먹는다고 해서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의지가 그러한 증거의 삶이 아니고서는 순교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 자신도 오늘 순교자 대축일을 맞이하며 떳떳하게 저의 삶을 순교 가능한 삶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저의 일상생활 가운데 진정 본능을 뛰어넘어서 믿음에 성실하여왔는가 하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보면 저는 과연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하여 우리의 신앙선조 순교자들 앞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서 그리고 신앙의 이유 때문에 어떠한 불이익이나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경우에 흔쾌히 그 희생의 길을 걸었던가 하는 질문 앞에 스스로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물론 천주교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위기는 우리에게 닥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신앙인으로서 어떤 취사선택을 나의 자유의지에게 요청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저것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어느 경우에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이 땅을 딛고 있는 나 홀로의 순간에 나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깃들지 않을 자그마한 결심을 해야 하는 갈등이 나의 자유의지를 흔들기도 합니다.


작은 결심을 해야 하는 그 순간들에 나의 자유의지가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 신앙선조들의 순교 역사 앞에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교 선열들께서는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고 신앙을 증거 했습니다만, 오늘의 나는 자그마한 불편 앞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한 부끄러운 심정으로 오늘의 이 순교자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몸에 지녀온 작은 고통 하나 때문에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 이 순교성인들의 대축일에 부끄러워집니다.


우리 신앙선조들께서 평소 살아가시는 중에 조그마한 고통에 대해서 원망을 지녔더라면 결코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어떻게 내어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일신의 편의를 도모하지 않고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죽이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있지 않고서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히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살이 가운데 이미 죽음을 받아들일 자세로 사셨던 그분들이기에 기꺼이 순교하실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순교 행적 앞에 그래서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오늘 이 축일에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 24)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왕이라 일컬어지시는 그분을 따라 우리 선조들도 그러한 길을 가셨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 길을 가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49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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