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2013년 9월 29일 10시@전주교구 상관성당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꼭 봐야겠나?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요한 20,25)
제가 오늘 여기 상관 성당에 온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목적은, 제가 일하고 있는 충청도의 하부내포성지 성역화 과업에 이곳 교우님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목적은 여기 상관 본당의 범선배 라우렌시오 신부님과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 중에서 두 번째 목적에 대해서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범 신부님과 저는 소신학생시절부터의 친구 사이입니다. 학생 시절에 범 선배 신학생은 저희 반에서 일등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로서 저와 함께 늙어가는 이 시절에 범 선배 신부님은 저의 친구 사제들 사이에 가장 사랑을 잘 하는 사제입니다. 사랑실천을 일등으로 하는 사제입니다. 범 신부님께서 사랑실천을 일등으로 하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병으로 2주간 동안 대전 성모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범 신부님께서 불쑥 저의 병실 문을 열고 나타났습니다. 그 시절에 범 신부님은 전북 수류 본당의 주임신부이셨습니다. 범 신부님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역시 승용차를 소유하지 않던 분으로서 그 시골에서 시외버스로 전주에 올라와 기차를 타고 대전의 저의 병실까지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서대전역에 내려서 걸어오시면서 길을 물어물어 저의 병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곤 저와 두어 시간 대화하여 위로하고는 다음날 본당의 아침미사를 위해서 가야 한다면서 밤늦은 시간에 야간열차로 돌아가셨습니다.
병동 복도의 모퉁이로 사라지는 그분의 뒤에 대고 제가 고맙다는 소리를 지르자 뒤돌아서서 손을 흔들면서 그분 하시는 말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바람에 자주 못 보던 내 얼굴 볼 수 있어서 자네가 기뻤다면 그게 좋은 거지! 내가 고마워하네, 서로 얼굴 보일 기회를 주어서 말이야!” 이런 말을 저에게 던지고 복도 모퉁이로 범 신부님이 사라진 후, 밤중에 돌아가는 그분의 먼 길이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야간열차로 도착할 전라도 시골 역에서 또 다시 수십 리 길을 가야하는 그분이 자기 성당까지 어떤 수단으로 돌아가실 것인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시외버스는 이미 끊어졌을 것이고 혹 택시를 부를 수도 없으면 아마 걸어서 그 수십 리 길을 걸어가실 그분이기에 말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 합니다.
이러한 저의 친구 범 신부님을 보면서 저는 오늘의 복음 성경에 대하여 색다른 묵상을 하게 됩니다.
자가용 승용차도 없이 시간적으로 매우 제약을 받는 대중교통수단으로, 그것도 자신의 본당 사목 직무를 다 수행하는 가운데, 한밤중에 걸어서라도 저의 병실을 찾아 마음을 주고 간 친구 범 신부님은 왜 그리 하셨을까요? 체면치례로 그리 했을까요?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이었지요. 범 신부님은 병실에 있는 자기 친구와의 우정의 관계가 즉 사랑의 마음이 소중했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자면 사실상 범 신부님은 굳이 저의 병실까지 그 불편하고 먼 길 찾아 올 의무가 없습니다. 간편하게 전화를 하는 것으로도 우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허나 범 신부님은 “이 바람에 자주 못 보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그게 고마운 일이 아니겠나!” 하는 마음으로 밤길을 오고간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소한 행동이 아닙니다. 할 일 없이 남는 시간에 그렇게 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들려주신 예수님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루카 16, 21) 부스러기 같은 시간을 범 신부님이 저에게 쓴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시절 범 신부님이 계시는 시골 성당 동네의 전교생 28명이라는 초등학교 운동회에 어린이들과 시간을 함께 해주고 나서 그날 오후 늦게 먼 길 그렇게 저의 병실을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그것은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저 내어버리는 것일 뿐이지요. 그런데 내어버릴 그것마저 얻어먹지 못하는 처지의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들어 썩어가는 몸뚱이로 부잣집 대문간에 쓰러져 그 집에서 버리는 음식 부스러기로나마 배를 채우려 했던 거지 라자로에게는 오로지 개들이 종기를 핥는 것으로 상대해줄 뿐이었지요(루카 16, 20∼21 참조). 철저히 무시를 당한 처지입니다. 부자는 오늘 아모스 예언자의 질타를 당할 만큼 패악하고 비정하게 라자로를 아랑곳도 하지 않았지요(제1독서 아모 6, 1∼7 참조).
그 부자에게 있어서 라자로는 그렇게 음식 부스러기만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라자로를 무시한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에게 호소했던 라자로의 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은 라자로가 생전에 그렇게 간절해 하던 부자 식탁의 음식 부스러기에 비하여 그 값어치가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보다도 더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그 차이란 오늘 예수님께서 대변하여 들려주신 아브라함의 대답으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 26)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 건너려 해도 건널 수 없는 구렁은 사실상 ‘부스러기’처럼 보이지도 않던 사이에 이미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부자는 생전에 음식 부스러기 하나도 라자로에게 주지 않았지요. 그 부자의 마음에는 라자로가 음식 부스러기만도 못한 존재였지요. 그렇듯 부스러기 하나도 마음 써주지 않은 사이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마음과 마음 사이의 다리를 건너지 않은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이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루카 16, 31) 불신과 비정의 사이입니다. 그러한 사이에 물 한 방울인들 어찌 손가락에 찍어 건네줄 수 있겠습니까? 물 한 방울 손가락에 찍어 달고 그 멀고먼 마음의 구렁을 건너려 한들 그 한 방울이 그 사이에 손가락 끝에 매달려 건네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열일 제켜두고 시간을 내어 머나먼 길, 친구의 병실에까지 건너왔던 범 신부님의 마음과 그 얼굴은 결코 부스러기가 아니었습니다. 금싸라기였지요! 음식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는 시간에 놀러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정의 마음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그것은 금싸라기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전화로가 아니라 대면하여 육성과 눈빛으로 위로하고자 찾아온 그 얼굴은 예사 얼굴이 아니라 금쪽같은 얼굴을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도 없는 처지에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발로 걸어 땀을 흘린 몸으로 밤중까지 피로를 무릅쓴 시간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그것은 부스러기 같은 ‘짬’이 아니라 금싸라기 같이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친구 범 신부님의 그 고마운 방문을 받고나서 저 자신이 평소 사람들을 대하던 마음을 부끄러워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대하면서 직분 상으로가 아니라, 또는 사무적으로가 아니라, 그리고 또 부스러기처럼 버려도 되는 남는 시간으로가 아니라, 진정 금싸라기 같은 소중한 시간을 내어, 그리고 작은 만남에서 금쪽같은 마음을 더 소중하게 담는 시간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거기에서, 건너오고 건너가는 사람들의 사이가 이루어진다는 깨우침을 새로이 지녀야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모두 그렇게 깨우쳐지는 거기가 곧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아브라함의 곁에’(루카 16, 23 참조) 즉 하느님의 품속에 우리 마음이 함께 엮어지는 사이일 것입니다. 그러한 깨우침은 진정 저의 친구 범 신부님이 저에게 준 병실에서의 선물이었습니다. 부스러기인 것 같지만, 작은 사랑의 마음들은 결코 부스러기가 아니라 금싸라기 같이 소중하다는 깨우침 말입니다.
제가 여기 상관 성당에 찾아온 오늘의 목적 두 번째의 설명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어서 첫 번째 목적을 말씀 드려야겠는데, 이것 역시 범 신부님의 그 사랑 실천에 따라서 이렇게 교우 여러분께 말씀 드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로 설명하자니 지루하실 것 같아서 대신 화면으로 보여드리는 것으로 대체 하겠습니다. 제가 소임으로 하고 있는 ‘하부내포성지’의 성역화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는 파워포인트 상영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범 신부님의 너그러운 사랑의 배려에 의한 것이니 교우님들께서도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하부내포성지 소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쇼를 상영하기로 함>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50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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