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2013년 10월 13일 9시@도화담 공소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참 신앙은 세상의 틀을 뛰어넘는다
종북좌파 같은 사마리아 사람, 그리고 예수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접경지대를 지나시게 되었는데, 그 인근 마을 어귀에서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시게 되었습니다(루카 17, 11 참조). 이렇게 예수님의 여행 중에 일어난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루카복음서의 이 대목에서 다소 긴장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 당시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삿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은 오늘의 복음에서 당시의 율법을 뛰어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교의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정상인들과 상종할 수도 없으려니와 사람 사는 동네에 들어올 수도 없었고 모든 공민권이 박탈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려면 그 몸이 깨끗해졌다는 공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한 나병의 치유 여부를 판단하고 공민권을 회복시켜 주는 것은 사제들만의 권한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대뜸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7, 14). 그것은 사제도 아닌 예수님의 월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나병환자들은 예수님 말씀에 따라 사제들에게 가는 도중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루카 17, 14 참조).
그렇게 자신들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열 명의 나병환자들 가운데 단지 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루카 17, 15 참조). 단 한 사람이란 오늘 복음서가 강조해서 기록했듯이 “그는 사마리아 사람”(루카 17, 16)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요한복음서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시다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의 한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건네시자 그 사마리아 여인은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며 매우 당혹해 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요한 4, 9 참조).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민족의 배반자로 여기고 상종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의 쓰라린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라는 지명은 원래 북이스라엘 왕 오므리(기원전 876-869)가 은 두 달란트를 주고 구입한 산의 주인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그 산 주인의 이름이 ‘세멜’이었기에 히브리어로 ‘세멜의 소유’라는 뜻으로 ‘쇼므론’이라고 불리다가 ‘사마리아’라는 말이 되었다 합니다. 오므리 왕이 그 산에 성을 건축하고 주인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일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멜’이라는 이름은 파수(把守)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사마리아’와 비슷한 발음으로 ‘스마랴’라는 말은 ‘야훼께서 보호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주변 평지보다 100m 이상 솟아오른 해발 430m의 천연 요새였으므로 과연 야훼께서 지켜주시는 곳이라고 일컬을 만하지요. 그래서 나중에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기고 한때 이스라엘 10지파에 해당하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는데, 북이스라엘 전체를 사마리아라 부르기도 해서 그 지역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던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의 침공으로 초토화되고 주민 중 27,290명이 아시리아로 잡혀갔는데, 그 후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르곤은 아시리아 본토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켜 혼혈 정책을 펼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나중에 아시리아와 바빌론에서 유다인들이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려 했을 때 사마리아인들도 동참하려고 했으나 거부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순수 이스라엘로서의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민족을 배신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종북좌파’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요. 빨갱이가 어찌 국회의원 노릇을 할 수 있느냐면서 흥분하는 대한민국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는 깃발은, 약자 편에 서는 좌파 주장이라면 국가를 배신하는 것인 양 몰아세우지요. 기득권의 극우 성향을 비판하는 말을 하면 즉시 빨갱이로 오인 받는 대한민국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유다교 지방에서는 사마리아인이란 개만도 못한 존재였지요. 유다 지방에서 사마리아인이란 우리 대한민국에서 일컫는 빨갱이 비슷한 존재였습니다.
역사적 시련기에 어쩔 수 없이 이방인들과 피가 섞이게 된 사마리아인들은 순수 혈통을 자랑하는 유다인에게서 배척받고 무시당하자 자기들 나름대로 성전을 짓고 성경을 마련하여 독립교파를 만들었습니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 내의 ‘진보통합당’이나 ‘동부연합’ 같은 놈들(?)이 유다인들의 눈에 ‘사마리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모든 관계를 끊고 살았습니다. 그런 배타심은 수백 년 흘러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 배경 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청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이 당황해서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배타심과 역사적 민족감정에 얽매이지 않으신 분이었습니다. 오늘의 루카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마을에 들어가는 중이었고(루카 17, 11 참조), 더욱 나병환자 중 사마리아 사람이 당신 가까이 오는 것을 말리지 않으셨는데(루카 17, 15∼16 참조), 그렇듯이 당시 율법의 금지사항을 뛰어넘는 일이 예수님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마치 빨갱이들과 어울리러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서는 늘 기존 율법과의 긴장관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은 오로지 우리 인간의 구원이 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상종해서는 아니 되는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나서 깨끗해졌습니다만, 그 중에서 정작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확인 받은 사람은 단지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것이 오늘 그러한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구원은 기존의 제도적 틀에서 답습되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활동을 시작하실 때 고향 나자렛에서 이미 선언하신 바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묶인 이들이 해방을 맞이하고 눈먼 이들이 보게 되고 억눌린 사람들이 자유를 얻게 되는 그 구원은 예언자의 고향에서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이방인들에게서 이루어진다고 선언하신 바가 그것입니다(루카 4, 16∼30 참조). 그래서 이방인의 지방 시돈의 사렙다 마을의 과부가 엘리야 예언자를 맞이하여 믿음을 얻었듯이, 그리고 오늘 제1독서(2열왕 5, 14∼17)에서처럼 이방인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엘리사 예언자의 당부를 실행하여 구원을 얻었듯이, 오늘 예수님께로부터 진정 구원을 얻은 사람은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 19)하고 선언하십니다. 이러한 선언을 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앞서 반문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17, 18)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아홉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유다교의 율법에 의한 공민권이나 회복하려고 달려간 사람들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 은총을 입은 새로운 삶으로의 길을 찾으려는 데는 마음이 없었던 유다인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세상의 인정이나 받으려는데 급급한 사람들, 즉 세상의 힘센 주류에 편승할 줄만 아는 사람들이었지요. 그저 무조건적으로 여당 편에 서야만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줄 아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허나 예수님께 돌아와 구원을 선언 받은 한 사람 사마리아인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 하기에 앞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옛적에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교를 신봉하여 세상보다 하늘을 향하여 충성한 순교 선조들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의 아홉 사람들과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의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실상 처음에 “예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루카 17, 13)하고 부르짖었던 나병환자들이었지요. 그러던 사람들이 정작 몸이 깨끗해진 후에는 예수님께 대하여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홉 사람들은 예수님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사마리아 사람만 그 은혜를 하느님의 것으로 깨닫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올렸습니다. 같은 은혜를 입고서도 그렇게 다른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평소에 우리도 곤란한 일을 당하면 곧잘 하느님께 기도를 하지요. 허나 즐거운 일이나 행운의 처지에서는 그것을 세상살이의 방편으로만 삼고 하느님께로 향한 감사의 마음은 잃어버리곤 합니다.
위험한 처지에서 또는 고통 중에만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진정 신앙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곤경 중에서는 물론이려니와 행운 중에도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항상 여일한 신앙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듯 늘 한 가지의 신앙이라면 곤궁 중에서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곤궁 중에만 하느님을 찾으면서도 일상적으로 교회의 법규만을 지킴으로써 형식적인 삶으로 그치는 태도란 신앙을 한갓 세상살이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 자신의 반성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혹 내가 옳고 그름의 갈래 길에서 세상의 흐름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양심을 따를 것인가 갈등을 느낀다는 것은 이미 하느님의 뜻에 충성하기를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아직 참 신앙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순교 선열께서는 하느님 뜻을 따름에 주저함이 없었기에 치명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듯 하느님 뜻을 주저함 없이 따르는 길을 저는 일컬어 ‘세상의 틀을 뛰어 넘어가는 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치명의 길을 간 분들처럼…!
오늘 율법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으신 예수님과 그 앞에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리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을 보면서 진정 구원을 얻는 신앙이란 세상살이의 틀을 뛰어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52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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