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주일, 연중 제29주일 2013년 10월 20일 10시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부끄러운 선교전략
세상이 나를 갖게 하는 전략으로 바꿔야...!
저는 오늘같이 매해 전교주일을 맞이하면 교회의 한 사제로서 부끄럽고 곤혹스럽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 19)고 하신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한 실적을 올려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안면도에서 본당신부로 살던 시절에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다음과 같이 교우들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안면도에 성당을 건축하고 2001년에 제가 본당신부로 부임한 후 3년이 되던 해의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그간의 실적을 짚어보니 3년 동안 제가 세례를 준 새 교우가 고작 6명이었습니다. 그것도 신자 가정의 아기 3명이 유아 세례를 받았고, 어른은 단 세 분이 세례를 받은 실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일개 본당이라 하면서 3년 동안에 성인 세례 3명뿐이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선교 실적이 전무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부끄러운 실적에 대하여 사목자로서 저 자신 유구무언일 뿐이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목자란 근본적으로 ‘선교사’로서 파견된 자인데, 그렇다면 저는 선교사로서의 근본적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지냈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안면도성당에 부임할 당시 안면도는 안면읍과 고남면을 합하여 주민이 대략 1만8천여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천주교 신자로 파악된 숫자가 고작 178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민 100명당 신자가 1명도 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실정에서 3년 동안 새로이 세례 받은 분이 3명인 선교 실적으로 미루어 본다면 1년에 평균 1명의 세례자를 맞이한 꼴이니, 1만8천년가량 선교해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는 주님의 말씀에 부응할 것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여기서 1년에 1명의 세례 실적으로 안면도 전체 주민을 신자 만들기란 1만8천년 걸릴 것이라는 숫자놀음에만 빠진다면 자괴(自塊)와 무력감(無力感)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1만8천년 살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숫자놀음이란 참다운 반성의 표현이 아닙니다.
지역에서 이웃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고 그럼으로써 입교자들을 인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교 실적이기는 합니다만, 선교를 그런 가시적 실적을 기준으로 하여 인식하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왜곡인 것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우리가 속한 집단의 세 확장을 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 확장이란 나를 중심으로 타인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나의 세력권 하에 끌어들여서 나의 방식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선교라면 그건 세 확장의 전략일 뿐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나의 세력 속에 녹이자는 전략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격 전략인 것입니다. 부끄러운 선교전략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선교 방식은 다른 것임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 13)고 하셨습니다. 소금이라면 자기주장의 공격으로가 아니라 자신을 녹여 없애면서 타인에게 스며들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스며듦으로써 음식을 맛나게 하고 그 음식을 보전케 하며 값지게 합니다. 이러한 소금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누룩의 원리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제시하셨습니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온통 부풀어 올랐다.”(마태 13, 33)는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렇듯이 선교란 공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소금과 누룩처럼 자신을 녹이고 없이함으로써 세상이 나를 갖게 하는 전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세상을 행복의 세계로 즉,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는 구체적으로 제가 사는 지역에서의 선교의 방식이란, 즉 내가 사는 지역의 복음화의 길이란, 나 자신을 비롯한 교우 공동체 형제자매들의 소금 역할과 누룩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자 누룩이 되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되 소금으로 스며들어, 썩지 않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변화되게 하고, 누룩으로 섞여서 세상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부풀어 변화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 확장의 공격적 선교 전략으로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우리 자신을 바칠 곳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먼저 우리 자신이 정말 소금이며 누룩인가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복음화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먼저 우리 자신의 실상을 잘 알아보아야 합니다.
신자들 가운데 전국적인 우리 교회의 주일미사에 실상 30% 이하의 평균 참석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상은 우리 교회가 진정 짠맛을 지닌 소금 덩어리인가를 반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교회 공동체에 보이지 않는 이른 바 냉담 교우들이 전체 신자의 반절 이상이나 됩니다. 그러한 냉담 신자 가운데는 아예 다른 종교로 가버린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종교로 가버린 분들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이 된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공동체의 이러한 실정에서 신자 형제자매들 사이, 그리고 교회와 지역사회와의 사이가 서로 잘 모르는 사이가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반성이 따릅니다. 저는 사제로서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일에만 열중이고 지역의 이웃 사정들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사회와 괴리된 집단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또한 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가버린 분의 사정을 제가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분은 천주교회에 나와 봐야 어울릴 사람도 없고 서로 냉랭하여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 공동체에 가서는 진정 친교의 삶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안면도의 여호와의 증인 공동체가 극소수의 열악한 실정인 반면에 그로 인하여 천안이나 평택 또는 서울 근처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 몇몇이 안면도에 몇 개월씩 임시 직장을 택하여 한시적 거주를 하면서 안면도의 그들 공동체를 친교의 공동체로 활성화하고 애환을 함께하는 삶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은 자신들을 소금처럼 녹여 스며들게 하여주는 태도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써 사도행전의 초기 교회 공동체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그런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이 본거지를 떠나서 타지 공동체를 형성하기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가 한번쯤 곱씹어 우리 자신에 대한 반면교사로 여겨볼만 합니다. 가까이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는 진정 자신을 스며드는 존재로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반성인 것입니다. 적어도 이웃 사람들의 사정에 늘 우리의 마음을 쓰고 있는가 하는 반성인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자기들 끼리만의 (게토 같은) 집단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신자가 아닌 이웃이지만 그 이웃들의 애환을 우리 교회 공동체의 애환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가운데 어느 듯 우리는 이웃 사람들 속에 소금처럼 스며들고 그들과 함께 삶을 맛이 나게 하고, 우리는 문득 누룩처럼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하는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와 같이 부풀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소금과 누룩의 역할이 진정 우리가 세상을 복음화 하는 선교 전략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내가 갖고자 하는 선교 전략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리 하셨듯이, 세상으로 하여금 나를 갖게 하는 복음화 전략이어야 합니다.
제가 여기 만수리에 와서 살면서 외교인들과 어울려 한 달에 한 번 모여 점심을 먹는 이른 바 ‘먹자 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 ‘먹자 계원’이 되어 함께 술 마시고 어울리면서 그리 하다보면 계원들 가운데 천주교 나오게 할 수 있겠지 하는 저의 속셈이 있습니다만, 몇 년이 되어도 그들 중에 천주교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그들과 함께 술만 마셨지 그들의 애한 속에 스며드는 소금이 아직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과 함께 마시는 건달 노릇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생각을 하면서 저는 문득 옛 박해시대의 우리 신앙 선조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 참혹한 박해 속에서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천주교 신앙에로 이끌었습니다. 그 무서운 박해를 무릅쓰고 날이 갈수록 신자 숫자가 늘어만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천주교 신자들의 사는 모습이 이웃들로 하여금 천주교 신앙이 참된 삶의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조들은 ‘소금’이었고 ‘누룩’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여기 하부내포 지역의 박해시대 교우촌의 사연들을 수집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더욱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반성이란, 오늘날의 나 자신과 교회의 모습 속에서 참 행복의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을 보면 세상과는 다른 무엇인가 참 행복 체험이 엿보인다.” 라는 평을 들어야 진정 선교가 즉, 지역복음화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우리의 반성이 선행되어야겠습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53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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