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
2015. 12. 20. 09:00 하부내포성지 만수리 공소
우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고요 속의 성탄을 우리 마음 안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지 않는 까닭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가 4일 후입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크리스마스이브에 밤새워 즐기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왜곡된 낭만 만들기로, 혹은 특수(特需)를 노리는 상술(商術)에 의한 분위기 띄우기로, 이른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세속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성탄절에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눈이 내리면 우리 공소에서 멀리 본당에 미사 봉헌하러 가실 노인교우님들께서 너무 고생을 하시기 때문에 저는 성탄절에 제발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서짓골 성지에서 보내게 될 성탄 밤 미사
저는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의 자정에 서짓골 성지에서 성탄 밤미사를 봉헌할 예정입니다. 우리 만수리 공소에서 그 서짓골까지는 16㎞의 거리입니다. 보령댐 호반길을 꼬불꼬불 가야하는 거리입니다. 여러 계곡을 지나며 오르내리는 산길입니다. 만일 눈이 내리면 참으로 위험한 길입니다. 겨울 한밤에 그 길을 왕래하려면 눈이 내리지 않았더라도 간혹 길바닥에 흘러내린 물이 얼어붙어서 자동차를 미끄러지게 하는 마의 구간들이 나타납니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그러한 서짓골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서짓골 성지의 그 성탄 밤기도에 함께 하셨던 분들께서 이번에도 멀리서부터 오시겠답니다. 작년까지는 서짓골 ‘4성제대’ 앞에서 성탄의 밤기도를 바치고 인근 교우 댁에서 조촐한 성탄 미사를 봉헌한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서짓골에 새로 마련한 안내소에서 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판넬 조립 3.5평의 건물입니다. 아마 6-7명 방문 순례자들과 함께 봉헌하게 될 이번 성탄 밤미사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함께 할 분들께서 위험한 눈길 운행을 하게 되지 않도록 눈이 내리지 않기를 저는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좋다
그렇지만 저 역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 말이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의미를 두고 일컫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란, 우리 모든 교우 분들의 마음속에 ‘하얀 성탄’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작 ‘징글벨’을 노래하는 따위의 분위기에 들뜨고 싶어서 바라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하얀 성탄절’이란 눈이 내려 쌓인 광경이 아니고, 진정 우리 마음 안에 주님을 모셔드릴 자리가 그렇듯 새하얗듯이 청순한 기쁨으로 가득 차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새하얗듯이 청순한 화이트
우리의 마음 안에 그렇게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우리는 이 대림절 마지막 날들에 준비를 다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들 가운데 이미 주님께서 강생하실 순간이 닥치고 있다는 전갈을 오늘 우리는 접하고 있습니다. 교회전례는 다가온 주님의 강생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미 가까이 오셨으니 어서 경배하세!” 하고 우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대림절 막바지의 성무일도서는 매일의 그 첫 기도로 “주님께서 이미 가까이 오셨으니 어서 경배하세!” 하고 노래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오심에 대하여 우리는 오늘의 복음 내용으로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루카 1, 39∼45 참조).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엘리사벳이 큰 소리로 외친 인사말이 곧 오늘 우리 또한 감격적으로 고백할 깨달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바치는 기도인 성모송이 그 내용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모든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이시라면서 그분의 태중에 계신 주님이 더욱 복되시다는 칭송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엘리사벳은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루카 1, 44)하고 실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엘리사벳의 실토가 곧 우리 자신들의 고백이어야겠습니다.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처럼 우리도 깊은 내면에서 기쁨을
그렇게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에서부터 주님 오심에 대한 체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가 기뻐 뛰놀듯이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에 들어오시는 주님을 만난 기쁨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성탄절이 오면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흔히 외형적 행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서부터 성탄의 체험이 있어야, 오시는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불우이웃을 도우러 밖으로 나간다든가 교회 공동체의 성대한 행사와 잔치를 벌일 수 있습니다만, 그런 것보다 더 먼저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야 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모신 주님을 깨달아야
이미 마리아의 뱃속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마리아로 하여금 발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 동네로 향하게 하셨듯이(루카 1, 39 참조), 또한 그 예수 아기는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세례자 요한 아기를 뛰놀게 하여 엘리사벳의 감격적 체험고백을 표출케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두 영혼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 깨닫는 공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하시는 일을 깨달은 두 여인의 모습은 곧, 주님 오심을 체험하면서 변화되는 우리 자신들의 영혼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즉, 어떤 엉뚱한 곳에 계시는 주님이시라기보다 우리 자신 안에 주님을 모시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듯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으로 이미 우리는 각자들의 영혼이 차지할 수 있는 행복의 최고치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왜냐면, 마리아의 모습으로 표상되는 교회 안에 주님이 계심을 우리는 엘리사벳처럼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엘리사벳처럼 우리 각자의 영혼은 교회를 통하여 이미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가 듣게 된 칭송을 우리 또한 서로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니 행복하도다.”(루카 1, 45)라고 말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노래이며, 교회의 노래
그렇습니다. 그렇듯 진정 행복한 여인 마리아는 그래서 그 행복에 대한 화답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오늘 복음 내용의 다음에 수록된 그 유명한 ‘마리아의 노래’(루카 1, 46∼55)입니다. 이 ‘마리아의 노래’는 처녀 마리아 개인의 노래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주님을 만나서 새 삶의 행복을 얻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노래’ 즉, ‘교회의 노래’인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마리아처럼 정녕 행복한 사람들로서 그 ‘마리아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성탄절에 우리는 그런 행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듯 우리가 행복한 까닭은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해서 이미 주님께서 우리 영혼을 차지하시고 우리 삶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의 참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삶으로 얻는 기쁨보다 더 넘치는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얻는 기쁨으로 다가온 성탄절에 우리 서로를 축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축 성탄!” 또는 “Merry Christmas!”라고 축하하는 성탄 맞이 인사는 그래서 우리 각자의 영혼에게 보내는 기쁨의 확인인 것입니다.
동네 밖 마구간 같이 오로지 주님만이 계시는 곳으로
그런 기쁨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대림절 동안에 자신 안에서 눈에 띄는 티끌까지 일일이 씻어내는 참회로 정결한 순백의 영혼을 회복했습니다. 행여 하느님께 대하여 그리고 이웃에 대하여 마음의 빚을 진 일이 없는가 하는 성찰을 통하여, 우리의 허물을 씻는 참회로써 우리는 순백의 영혼이 되어 맞이할 실제의 하얀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를 우리 내면에서 이루어온 것입니다. 그렇게 지내온 대림절을 마치면서, 성탄의 밤에 주님과의 고요한 만남을 체험하고자 세상의 번잡함을 피하여 동네 밖 마구간 같이 오로지 주님만이 계시는 곳으로, 즉 우리 마음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서짓골 성탄 미사가 갖는 의미
그러한 고요 속 성탄의 밤을 저는 서짓골에서 몇 분 순례자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곳은 옛적 베들레헴처럼 외진 곳입니다. 그 서짓골에서는 150년 전 박해시대에 숨어 살던 교우들께서 그러한 고요 속의 성탄을 맞이했을 것으로 저는 상상합니다. 그 서짓골 골짜기 위로는 이번 성탄의 밤에 둥근 달이 밝게 떠올라 성탄의 베들레헴 들녘 하늘에서 들리던 천사들의 노래를 보령호수의 밤물결 위로 퍼지게 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이번 성탄의 밤은 열나흘 둥근 달이 뜨는 밤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보령댐의 큰 호수가 서짓골 아래에 펼쳐지고 있지만 옛적 150년 전에는 거기 서짓골 앞에 큰 내가 흘렀지요. 아마 150년 전의 교우들께서도 그 냇가에서 겨울 밤하늘의 달빛 아래 성탄의 노래를 불렀으리라 상상 됩니다. 베들레헴의 겨울 밤하늘 아래 고독한 목동들의 귀에 들리던 그 노래가 아마도 서짓골의 성탄 밤에 들려올 것 같습니다.
그러한 천사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곳은 사실상 우리의 청정한 마음속이어야 합니다. 인간들의 모든 다툼이 사라지고 겸허하고 조촐한 우리의 마음이라면, 거기에 하늘의 노래가 가득 찰 것입니다. 우리의 그러한 마음속에, 즉 하얀 영혼 안에, 평화가 있으리라고 하늘 높은 곳의 영광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하늘의 축복을 담으려면 내 흠결을 먼저 살펴야
그렇듯 깨끗한 마음으로 준비한 교우들이야말로 강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하얀 정결의 포대기로 감싸 맞을 마리아와 같은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 아기 예수님 같이 욕심 없이 가난한 마음의 우리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탄 축복을 나눌 채비로 어서 하얀 우리 마음의 보자기를 깔아 놓을 말구유를 찾읍시다. 그것은 즉, 하늘의 축복을 담기에 혹여 흠결이 있을까 살펴 참회함으로써 깨끗해진 우리 마음이 불우 이웃을 향한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작은 구유처럼, 마구간인 듯 가난한 이웃집에 예수 아기 같은 작은 정성을 담아다 놓아 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마음을 챙기면서 우리는 주님이 오시고 계심을 사실로 깨달을 것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그렇듯이 고요 속의 우리 마음 안에 실현 되는 성탄이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평화,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노래는 이렇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 주님의 영광, 땅에서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베들레헴에서처럼 서짓골과 우리 모든 교우들의 성당과 가정의 밤하늘에서 천사들이 이 성탄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우리 각자 영혼의 귀를 조용히 기우려봅시다.
출처: 하부내포성지 다음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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