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2016. 1. 10. 하부내포성지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우리가 세례 받던 때에도 하늘이 열렸거늘 …




성탄-공현-세례로 이어지는 단계적 나타나심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은 전례력에 있어서 성탄시기를 마감하는 날입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서, ‘주님 세례 축일’에 이르는 이 기간에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구세주께서 오시는 모습을 복음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보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해봅시다.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시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를 발견하게 된 베들레헴 동리 밖 목동들에게 “주님의 영광이 그들의 둘레를 비추면서”(루카 2, 9) 전해지던 그 밤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 10∼14)

 

성탄 - 수직적 메시지


이렇게 전해진 메시지는 하늘에서 땅으로, 즉 위에서 아래로 내리 전해진 메시지였습니다. 일컫자면, 수직적으로 전해진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곳의 영광의 빛이 가장 낮은 곳까지 전해지는 소식이었지요. 가장 크신 분이 가장 작은 존재로 떨어지다시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신 모습을 전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동방에서 출발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던 날 그들의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려 왔습니다.”(마태 2, 2)

 

공현 - 수평적 메시지


이렇게 박사들이 실토한 메시지는 가장 먼 곳에서부터 주님 계시는 곳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모아오는 메시지였습니다. 일컫자면, 수평적으로 전해진 메시지입니다. 동방 사람들이 예수 아기를 찾아온 사실은 주님 계신 중심부의 영광의 빛이 세계의 극변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강생의 신비가 전 인류에게 알려진 소식이지요. 소리 없이 오신 분이시지만 온 세상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이심을 깨닫게 하여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세례의 기도로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오늘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루카 3, 21)고 하는 성경의 보도를 들으면서, 우리는 문득 우리에게 오신 그분께서 우리와 똑 같은 죄인들의 처지에 섞여 계신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실 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그분 위에 내려오시더니 하늘에서 그분을 소개하는 음성이 들려왔다고 오늘 성경은 보도하고 있습니다(루카 3, 21∼22 참조). 그 하늘의 음성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 22)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늘과 땅의 화합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물에 잠겨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죄악의 세계를 물로써 징벌하시던 때에 죽음의 홍수가 잦아들었음을 상징하는 올리브 이파리를 물고 노아의 방주의 창에 돌아와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되었음을 알려주던 비둘기처럼(창세 8, 11 참조), 죄인들의 대열과 함께 물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고 기도를 올리시는 그분에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내려 오셨습니다(루카 3, 21∼22참조). 이러한 주님의 세례 장면은 죄인들 사이에 오신 그분의 나타나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 모든 죄인의 세상을 들어 올려서 열린 하늘과 맞닿게 하시는 장면을 오늘 주님의 세례 현장에서 보게 됩니다. 즉 수직과 수평이 맞닿은 중심에 계신 그분을 보게 됩니다. 그 현장에서 우리는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리는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그분은 곧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라는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베들레헴 동리 밖 외딴 곳에 탄생한 그 아기, 그리고 세상의 극변에서부터 찾아온 사람들이 경배한 그분이 과연 누구인지를 공식적으로 하늘이 알리고, 세상이 알게 된 사건이 곧, 그분의 세례인 것입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의 순서 - 성탄 - 공현 - 세례

 

이렇게 ‘성탄’에서 ‘공현’으로 그리고 ‘세례’에로 이어지는 ‘주님의 나타나심’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복음서에 따라 그 나타나신 분이 누구이신지를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그 아기가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심을 하늘의 천사들이 알려주었고(루카 2, 11 참조), 멀리 동방에서부터 예루살렘에까지 인도해준 별이 곧 탄생하신 분을 임금으로 오신 분이심을 알게 하였으며(마태 2, 2 참조), 죄인들 대열에 섞여 물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으신 그분이 하늘을 열어 구원을 내려주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그 열린 하늘에서의 음성과 성령이신 비둘기가 알려주었습니다(루카 3, 21∼22 참조). 그렇게 나타나 오신 분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으로 깨우쳐 알게 되는 과정을 수록하고 있는 것이 복음서들입니다.

 

누구이신지 깨닫는 것이 신앙의 요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깨달은 삶이 본래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요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해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그리고 심각하게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에도 그렇게 하늘이 열렸거늘, 그 하늘의 음성을 들은 사람으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우리 자신들에게 던져야 합니다. 세례 받으신 예수님을 알아보면서 우리 자신의 그러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기에 다음과 같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을 보라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그분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연상할 수 있는지요? 그분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시던 모습 아닙니까? 양팔을 수평으로 벌린 그 모습은 세상을 들어 올린 모습, 그리고 온 세상을 향해 뻗친 그 분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공중에 매달려 죽은 모습은 땅에서 하늘로, 그리고 하늘에서 땅으로 뻗은 사다리가 된 그 분의 모습 아닙니까? 이러한 그분의 모습 곧, 온 세계를 향해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를 가로질러서 자신의 존재를 설정한 그 분의 모습,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한 수평과 수직의 교차적 중심이신 그분의 존재 양태를 우리는 그분의 세례 현장에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죄 없으신 그분이지만 죄를 씻기 위해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물속에 잠기셨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당신의 온 몸에 적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깨달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선포를”하고(루카 3, 3) 물로 세례를 베푸는 요르단 강가의 요한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있을 때(루카 3, 21) 즉, 몰려온 죄인들의 대열에 예수님은 섞여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물로 세례를 베푸는 요한과는 달리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루카 3, 16 참조). 그래서 그분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그분 위에 내려오셨습니다(루카 3, 21∼22 참조). 죄를 씻는 세례의 물속에 잠기신 그 모습은 곧, 그분이 하늘에서 세상의 낮은 곳에 내려오신 수직적 행위이자 동시에 죄인들 사이에 섞이신 수평적 사실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렇게 죄인들의 사이에 섞이셔서 결국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즉, 수직적인 그분의 모습이 동시에 죄인들의 수준에 당신 자신을 맞추신 위치에서 사람들과 수평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세례 장면은 그분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준 모습인 것입니다. 즉 세상이라는 지평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그리고 하늘을 세상이라는 죄인들을 향하여 열리게 하는, 그러한 십자가의 교차적 중심에 서신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우리는 그분의 세례 현장과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향하여 걷는 길에 서서


높은 하늘을 열어 내려오시고 그 하늘을 이 땅위에 담으시는 동시에 이 땅의 죄악을 당신 몸으로 짊어지시기 위해 세례를 받으신 그분이 세상을 하늘에 담아 올리시기 위해, 이제는 그 자세로 십자가 형태의 죽음을 치르실 분이기에, 그분을 일컬어 하늘의 음성은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우리도 역시 그분이 가신 십자가 죽음의 길에 함께 감으로써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사는 신앙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듯이 그분의 십자가상 죽음에 참여함으로써만이 그분이 베푸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는 것이 됩니다. 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루어짐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러한 체험은 곧, 오늘 이후로 걸어갈 전례력과 더불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향하여 걷는 길에서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처럼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서 그분처럼 부활하는 삶을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각으로 그분이 곧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삶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요르단 강의 세례를 받으신 그분과 같이 우리도 열린 하늘로부터 성령을 받고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 22)

 

이렇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을 우리 자신들도 들을 수 있는 삶의 길을 가기로 하는 오늘의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세례를 받던 때에도 하늘이 열려 우리 위에 성령이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늘 그렇게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기를 오늘 다짐하는 것입니다.

  

출처 - 하부내포성지 다음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96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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