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연중 제34주일, 2013년 11월 24일 10시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죄인들의 왕 

교회는 죄인들의 집단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러한 오늘을 우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그리하면서 오늘의 이 축일로써 우리는 종말(終末)’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다음주일의 대림 제1주일부터 새로운 또 한해의 전례력을 시작합니다.


종말을 바라볼 줄 아는 신앙으로 우리는 교회와 더불어 오늘을 일컬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라 하면서 예수님께 이라는 칭호를 드림으로써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가 23, 42 참조)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십자가의 예수님 양쪽에 달려서 그분과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죄수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께 바치던 기도를 오늘 우리도 그렇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가 23, 43)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 예수님과 더불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고자 그분 옆의 십자가에 함께 달려서 우리의 종말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는 신앙의 고백이 곧 그분을 으로 믿는 깨달음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 이라는 칭호를 드리며 축제를 올리고 있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어찌하여 이란 말입니까? 그 해답을 우리는 어떤 터무니로부터 얻을 것입니까?

언젠가 저는 뮤지컬 드라마 ‘Superstar Jesus Christ’의 출연진 배역에 얽힌 뒷이야기를 엮어 방영하던 TV의 문화 프로그램을 시청한 일이 있습니다


그 뮤지컬의 출연진 각자가 자신들의 배역에 대한 평가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배역진은 연기력과 창법에 의하여 그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를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했다는 자평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작품이 던진 메시지를 이 작품 자체의 마지막 합창에서 강렬하게 포착합니다. ‘뮤지컬 드라마치고는 1970년대 초 이후 세계 유명 극단들에 의해 야심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어 온 작품입니다


이 뮤지컬은 그런 점에서 문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열창되는 합창이 그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던지는 핵심적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어찌하여 죽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1970년대 초에 시연된 그 뮤지컬이 당시의 유행하던 로큰롤 음악에 맞추어 예수님을 신적(神的) 존재로부터 너무나 통속적인 인간상으로 묘사한다고 해서 논란이 많았습니다만, 그 뮤지컬은 사실상 우리 신앙의 역사와 더불어 항상 제기된 질문을 주제처럼 합창으로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든 던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측근 제자로서 그분을 줄곧 따라다니다가 배반한 가리웃 사람 유다와 같은 심정의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죄 많은 한 여인이면서 인생의 전부를 사랑의 갈구로 살아온 마리아 막달레나의 심정으로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한편, 예수님을 반대하는 세력의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서도 세상의 불신앙을 두려워하는 묵묵부답으로 비굴하게 마음속에서만 고동치는 질문으로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복음 성경 내용에서 예수님을 진정 으로 알아보는 신앙을 고백해야 할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곧 죄인들의 왕이라는 점입니다. 그분을 진정 으로 불러 기도한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 채 최후를 맞이하던 강도였다는 점이 극적으로 그분을 죄인들의 왕이라고 밝혀주는 바입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붙여진 유다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모든 사람들이 조롱하고 빈정댔습니다(루가 23, 35. 37. 39 참조).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한 사람만 예수님을 진정 으로 인정하고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루가 23, 42 참조). 그는 자기가 한 짓을 보아서 자신은 마땅히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하겠지만 예수님은 너무나 억울하게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고 말했습니다(루가 23, 41 참조). 


이 죄수의 말과 태도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핵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진정 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들만의 왕이십니다.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정 으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인이 아닌 사람들은 예수님께 구원 요청을 하지 않습니다만, 자신이 죄 많은 존재임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정말 역설적이게도 죄를 많이 지은 사람에게 하느님의 은총은 더욱 많이 쏟아진다는 사실의 깨달음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악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께서는 더욱 큰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설적 사실은 교회의 모습에서 반영됩니다. ‘교회는 죄인들의 집단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그것입니다. 교회에 모여오는 신자들은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자기 죄를 깨닫는 사람들이라야 더욱 열심히 기도할 줄 알고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압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간구했던 강도처럼 자기가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지를 깨닫고 참회하는 사람들만이 그 마음속에 하느님께 대한 그리움을 진정으로 지닙니다. 이것은 부모님께 대하여 자신의 부족함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 자식이어야 진정 효심을 지니는 자식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모님께 잘못한 것이 많음을 깨닫는 자식일수록 부모님의 죽음을 당하여 더욱 뜨거운 눈물을 흘리듯이, 자신의 죄악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듯이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수록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봅니다. 구세주란 죄인을 구원해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벌을 받게 되었다고 깨닫는 사람들이기에,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 교회에 나아오는 신자가 되었음을 우리는 오늘 예수님 옆에서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되는 죄수처럼 깨닫고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가 23, 42 참조)하고 간청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은 아무런 탓도 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분이셨기에 그런 당신 죽음의 값으로 나의 죄 값을 치러주시는 구세주, 우리의 왕이심을 그분 십자가 옆에서 그분과 함께 죽어 가는 죄인의 입장에서 깨닫는 그런 사람이 곧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골로 1, 1314)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1코린 8, 6)라고 실토하며 그분을 진정 으로 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악 때문에 처참하게 죽어 없어져야 할 우리의 추악한 군상 가운데 우리의 대표처럼 그 추악성을 뒤집어쓰고 죽어주시는 그분은 진정 죄인들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죄인인 우리들과 함께 당신의 영원한 나라 낙원에 들어가시고자 우리들의 죄악상을 그렇게 뒤집어쓰신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두려워하는 우리 죄인들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종말을 향하면서 그분께 기도합시다. “예수님, 주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이제 그분은 대답하십니다.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 많은 우리의 삶을 청산하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그분께 감히 우리의 확신에 찬 감사의 응답 아멘!”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멘!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59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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