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일(수) 대전중앙시장 성당에서 '협동조합' 공부모임이 열렸다. 제목은 <협동조합을 소개합니다>. 이 공부 모임은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학습활동이며, 3월 한달간 매주 수요일 총 4회에 걸쳐서 매회 2시간씩 열릴 예정이다.



조세종 박사의 "협동조합을 소개합니다." ②


거시적으로 보는 협동조합의 세계

세계적 흐름, 역사, 철학, 원칙, 선구자들, 사회교리와의 관계



(2016-3-2 수, 8:34 pm, 2부 시작) 


장기려 박사의 청십자 의료협동조합


한국 역사에서는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이란 게 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이 부산에서 세우신 거죠.  (장기려, 張起呂 (1911년 8월 14일 ~ 1995년 12월 25일)는 대한민국의 외과 의사, 의학자, 종교인, 인도주의자로, 1968년 한국 최초의 사설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1976년 청십자의료원을 설립하여 환자 진료를 계속하였다.)


부산 동구 초량동에 2013년 4월 5일 설립된 장기려 기념관 ‘더나눔센터'


한국사회에는 어떤 목막름이 없습니다. 원칙이 뭔가를 떠나서 노동자 협동조합이 잘 되어야 가장 중요한 고용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고용 안정이 해결되어야 복지가 되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중간질문 ... 노동자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노동조합은 기업에 소속되어있으니 내 것이 아닙니다. 남의 회사에 고용되어 있는 것이고, 노동자 협동조합은 일자리를 만들려고 빵가게 회사를 만든 거라고 보면 됩니다. 이건 내 것입니다. 내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죠. 그래서 노동자 협동조합은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 오전에 힘쓰고. 오후엔 직원복지를 위해 힘을 쓰는 겁니다. 일견 모순된 것일수도 있어요. 


국수나무 식당 협동조합


여기서 「국수나무」식당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의 브랜드입니다. 여기에 직원 조합원은 1백명 가량 됩니다. 초대 이사장이 품앗이 생협 마을을 책임진 이원호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대전에서 실력도 있고 괜찮고 좋은 분입니다. 그리고 해피 브릿지는 몬드라곤 공동체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전 첫 ‘로컬푸드 매장’ 열었다 (품앗이 생협) ... 한겨레 2013.9.4




  회사명 해피브릿지 협동조합

주종목 프랜차이즈업, 식자재 생산 및 유통, 전자상거래, 외식컨설팅 등 (가맹점 400여개)

직원수 88명(조합원 74명) 2015.02 기준

사업개시1999년 05월 02일 

조합창립 2013년 02월 21일, 해피브릿지 노동자협동조합 창립총회 개최

출처: 해피브릿지 홈페이지 http://www.happybridgecoop.com/main/main.php




해피브릿지의 브랜드들(출처: 해당 홈페이지, 2016.3.2)



몬드라곤(스페인), 퀘백(캐나다), 에밀리아로마냐(이탈리아)


전세계으로 협동조합이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을 대표적으로 세 군데만 꼽으라고 하면, 첫번째는 스페인의 몬드라곤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캐나다 퀘벡이고요. 세번째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의 북부 지방입니다. 트렌티노 주에 있고요, 주도는 트렌토라고 합니다. 이 세군데가 모두 개성이 있습니다. 




스페인 몬드라곤


스페인 북부 피레네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산악도시 몬드라곤(Mondragon). 이곳은 스페인 공업도시 빌바오에서 50㎞, 지명을 딴 영화제로 널리 알려진 산세바스티안에서 100㎞나 떨어진 외진 산골이다. 이 산골 도시에서 자본주의 병폐인 ‘이기주의’ ‘배금주의’를 넘어서는 기적의 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모범이 된 몬드라곤 협동조합 공동체의 이야기다. (가톨릭신문 2013-1-20자 기사 중 일부)


세계 최고의 협동조합 몬드라곤 이야기

가톨릭뉴스 2013년 1월 20일자 참조


캐나다 퀘벡




캐나다의 퀘벡주는 2010년 현재 인구가 794만명이다. 이 중에서 6백만명 이상이 프랑스 계통이며, 약 82%가 불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다. 특히 퀘벡 주민의 80%가 세인트 로렌스 강의 주변도시에 거주하는데, 몬트리올에 190만명(광역시를 포함하면 400만명), 퀘벡시티에 약 71만명, 쉬브록에 약 18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퀘벡주 면적은 프랑스 영토이 3배이며 한국 영토의 7배에 달하는데, 캐나다 면적의 약 15.5%에 해당하는 1,450,680 km²이다.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 83.4%,개신교 6.9%, 이슬람교 1.5%, 유다교 0.6% 등이다.  (출처: 충남발전연구원 2013년 퀘벡주 연수보고서)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에밀리아로마냐 주(이탈리아어: Emilia-Romagna)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주이다. 면적 22,124km², 인구 420만명(2006). 주도는 볼로냐이다. (참고로 서울 면적은 605.2 km²) 북쪽으로 롬바르디아 주, 베네토 주, 서쪽으로 리구리아 주, 남쪽으로 토스카나 주, 마르케 주, 산마리노와 접하며, 동쪽으로 아드리아 해에 면한다. 포 강, 아펜니노 산맥, 아드리아 해 사이의 비옥한 지역을 포함한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9개 현


에밀리아와 로마냐는 이 지역의 역사적인 명칭이며, 1948년 이탈리아 공화국 성립 후 두 지방이 합쳐져 에밀리아로마냐 주가 되었다. 현재 라벤나, 레조넬에밀리아, 리미니, 모데나, 볼로냐, 파르마, 페라라, 포를리체세나, 피아첸차의 9개 현으로 나뉘며, 최대의 도시는 주도이기도 한 볼로냐이다. 볼로냐는 유명한 역사적인 도시이며, 그 외에도 유서 깊은 도시들이 많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포 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지대에서는 각종 농산물 생산이 활발하며, 볼로냐를 중심으로 공업도 발달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이 중에서 몬드라곤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협동조합 활성화 이바지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신부님들이었습니다. 특히 몬드라곤의 호세 마리아 신부님은 협동조합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요. 



호세 마리아 신부님(1915~1967)



호세 마리아 신부님(1915~1967)은 오푸스 데이 창설자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님과 전혀 다른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님이라고 하거나 아리스멘디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이 분에 대해서 작년 12월 14일 가경자(시복 후보자를 부르는 존칭)로 선포된 12분 중 한분이십니다.


몬드라곤 호세마리아 신부, 가경자로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5.12.23



가경자 호세 마리아 (1915~1967)


가경자기 되면 그 다음 복자가 되고, 성인이 되는 순서를 밟게 되죠. 굉장히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정치, 경제, 사회적 분야에서 신앙으로 이끌었던 분들도 성인으로 선포를 하십니다. 그 사례로 로메로 대주교님이 그런 정치적 분야에서의 순교를 인정받은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2015년 5월 23일,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25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복식을 거행한 로메로 대주교는 민중의 성자였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중의 인권과 정의를 대변하다 1980년 미사 봉헌 중 암살당한 로메로 대주교는 교회가 복자로 선포하기 훨씬 이전부터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이자 정의의 순교 성인으로 남미 전역에서 민중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었다.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기사 중 일부)



호세 마리아 신부님도 그런 셈입니다. 또 하나는 제가 안타까운 건 이 책 「호세마리아 신부의 생각」이 나오고 나서 단지 호세 마리아 신부님을 유명하신 분이라거나 박물관에 신부님 동상 모셔놓은 곳도 있지만, 한 쪽에서는 협동조합 만드신 경영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협동조합의 아버지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세운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님은 협동조합의 아버지이십니다. 1915년 태어나셨는데, 그 시절은 수난과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독재까지 다 거쳤으며, 돌아가실 때까지도 스페인 독재자는 여전히 살아있었죠. 몬드라곤 협동조합 자체를 설명드리면, 4개 그룹인데, 2012년 현재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금융, 유통, 산업, 교육연구 등 4개 부문에서, 290여 개의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8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어요. 


총 자산 51조원, 몬드라곤


총자산 규모는 360억 유로(51조 원)이며 세계적인 경제 침체에도 산업부문에만 58억 유로(8조 원)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몬드라곤에 비견할 만한 한국의 재벌기업을 꼽아보면, 현대중공업이나 GS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아주 단순한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과 한국의 재벌기업과의 차이는 수익이 날 때 몬드라곤은 수익 전체를 8만 여명의 전체 노동자가 나누지만 한국의 재벌기업은 소수의 주주가 차지합니다. 그 차이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것이죠. 그래서 몬드라곤은 8만명의 일자리를 보존하고 나아가 윤택한 삶을 영위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바스크 몬드라곤의 아픈 역사


그런데 그것이 그냥 그렇게 된 게 아니고 아주 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몬드라곤이란 말에서 '몬'은 산(山)을 뜻하고, 드라곤은 용(龍)이죠. 이곳은 바스크 지역입니다. 바스크는 스페인의 소수 민족인데, 언어, 문화, 인종이 다른 지역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분리독립을 원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테러도 일어나던 곳이며, 차별받던 동네이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은 1915년에 태어나서 불행하게도 세살 때에 한쪽눈을 잃습니다. 실명을 당하고 평생 왼쪽 눈을 못쓴 것이고, 그래서 늘 검정색 선글라스 쓰고 자전거타는 모습이 대표적인 모습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바스크의 문화, 언어를 사랑하고 정통했던 신부님 


4형제 중 첫째였던 신부님은 12세에 성소를 느끼고 어머니의 격려로 카스틸로 소신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신부님이 자기 내면에 깊은 신앙을 발견한 건 바로 고향마을에서였습니다. 그 말은 자신이 바스크를 사랑한다는 것이었죠. 신부님은 고향의 문화와 언어를 깊이 사랑하고 또 정통했습니다. 


이후 신부님은 비토리아에 있는 콘칠리아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합니다. 그곳에서 비토리아 신학교 출신 사제들의 영성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비토리아 또는 가스테이스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 알라바 주의 주도이다. 공식적으로는 비토리아-가스테이스로 불린다.



1936년 스페인 내란


그런데 그가 21세였던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났습니다. 신학교가 있던 지역은 비토리아였는데, 그곳은 이미 파시스트들이 장악을 하였지만, 그는 마침 인민전선의 바스크 지방 정부와 지방군대가 지키고 있는 고향 마을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호세 마리아 신학생도 인민전선에 가입을 합니다. 그런데 어릴 적 사고로 실명을 했기때문에 전투군으로는 못  들어가고, 바스크 언어로 바스크 정부를 대변하는 신문사에서 편집을 맡습니다. 그런데 1937년 전쟁에서 패배를 하죠. 그래서 포로가 되어서 군사재판에 넘어갑니다.


목숨을 살린 한 마디, "저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때 묻기를 "너는 무슨 일을 했나?"라고 하니까, 신부님은 이 때, "저는 군인이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 그는 '전쟁 포로'가 됩니다. 반면에 신무낫 동료들은 "신문사에서 일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은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프랑크 총통은 굉장히 많은 무고한 이들을 처형했습니다. 그 당시의 문화도 파괴하고, 바스크에 있던 대주교도 추방을 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제 16명을 가담했다는 이유로 총살을 시킵니다. 엄청난 만행과 탄압을 저질렀던 것이죠. 그런데 살해당한 16명의 사제 중에는 몬드라곤의 본당 사제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첫 부임지가 바로 몬드라곤이 된 것입니다. 그곳은 전임자가 희생된 곳이었죠, 이렇게 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지만, 신부님은 매우 끔찍한 역사를 겪은 것입니다.  


신부님의 3대 활동 - 본당활동, 가톨릭액션, 몬드라곤 협동조합


신부님은 부임을 하셔서 크게 세가지 정도의 일을 하셨어요, 첫번째는 본당활동이고, 두번째는 가톨릭 액션이라는 운동단체의 전담사제로 활동했고, 나중에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일을 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이 세가지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세가지라기 보다는 통합적으로 하나의 활동을 하신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특히 신부님은 젊은이들을 사랑하시면서, "너의 인격을 그분께 그리스도께 비추어서 선을 행하라."는 말씀은 곧잘 하셨습니다. 


"너의 인격을 그분께 비추어서 선을 행하라"


이런 말이 그냥 쉽게 나온 게 아니었어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님은 문학을 굉장히 좋아하신 분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의 자크 마르탱이란 철학자와 엠마누엘 무니에를 좋아하고,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크 마르탱의 경우, 수도자는 아니었지만, 교황님의 허락을 얻어서 집에서 성체를 모셨던 분입니다. 무니에는 1930년대부터 인격주의를 제창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강조하셨던 분이었어요. 


자크 마르탱과 엠마누엘 무니에



사실상 철학자들의 이런 메시지들은 가톨릭 신앙과도 아주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청년들에게도 해주셨고, 특히 신부님은 청년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보자는 취지로 기술학교를 시골에 세웁니다. 주민들에게 돌아다니며 돈을 걷고 지지를 받으며 가술학교 세우는 겁니다. 그 당시 몬드라곤에는 성인이 4천명이 있는 조그만 도시였어요. 그럼에도 주민들의 후원과 성원 힙입어 청년 20명이 입학 가능한 기술학교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들은 1947년 기술학교를 졸업했는데, 이들 중에서 11명을 사라고사 대학에 보냅니다. 그곳에서 공학을 배우게 했고, 이들이 졸업해서 우여 곡절 끝에 1956년에는 그 중 5명이 조그만 난로공장을 만듭니다. 그게 유명한 몬드라곤의 첫번째 시발점이 되는 [울고(ULGOR)]라는 협동조합입니다. 다섯명의 이름 첫글자 등 따서 지었다고 해요. 그리고 울고는 나중에 [파고르]가 됩니다. 


1956년의 몬드라곤 첫 협동조합이 울고(ULGOR)는 조합원의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하여 60년대 초반 이미 스페인 내 1백대 기업으로 떠올랐다. 울고의 성공은 아라사테, 코프레시, 에델란 등 다른 생산협동조합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속속 생겨난 협동조합들은 몬드라곤그룹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협동조합 성공사례-몬드라곤과 볼로냐 ... 기독공보 2013.4.15



1956년 울고(ULGOR)에서 파고르까지


안타까운 건 얼마전 [파고르 전자]가 파산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봐요. 협동조합이기때문에, 신자유주의와 쉬운 해고에 맞서며, 고용을 많이 유지하려고 유통회사를 사고 그곳으로 고용을 유지하기까지 했습니다. 파고르는 전자산업인데, LG, 중국산 등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합작 등 여러 방법 찾다가 결국 파산했다고 합니다.


'몬드라곤 뿌리' 파고르 파산의 교훈은? ... 프레시안 2013.13.31


1960년도에 이미 울고는 100대 기업에 들어갔으며, 사회보장 상호공제조합이 필요하다고 보아서, 1958년도에 사회보장 협동조합도 만듭니다. 원래는 정부에 고용보험 같은 거 들어달라고 하니까 안들어줘서 생겨난 것입니다. 정부에서 볼 때, 노동자 협동조합에 속한 조합원 노동자를 각각 사업자로 보았던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드디어 은행. 노동인민금고를 만듭니다.


노동인민금고의 탄생


그래서 근로자들이 저축한 돈으로 새로운 협동조합을 지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협동조합의 연대의식이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인식의 개선과 확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협동조합이 잘 따라오면 계속 지원해서 더 잘 따라오게 하면서, 노동인민금고에 속해있다는 게기를 통해 동질감이 있는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라구나]로 바뀌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의 뒤에 신부님이 계셨다


협동조합에 돈을 지원해주면서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추구하면 끌어당겨서 융성확대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지원을 중단하는 아주 중요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하려고 해도, 금융을 못 만들게 합니다. 협동조합 법이 그래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사회보장 협동조합 만들고 노동인민금고 만들고, 1969년에는 유통부분 [에로스키]를 만듭니다. 그런 뒤에는 기술연구소와 대학도 만들게 되고, 제조, 유통, 금융, 유통, 대학 등이 다 만들어지면서 1970년대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뒤에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은행 설립에 대한 회의적 여론을 뚫고


은행을 만들 때의 일인데요,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과연 은행 만들 팔요 았어?"라는 시각이었습니다. 회의적이었고, 시기상조라는 여론이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멘디 신부님이 얼마나 고집스럽게 추진을 했냐면,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다른 사람의 서명을 거짓으로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른 이들은 "조금 있으면 망할 건데." 하면서 서명을 도용하는 데 조자초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신부님은 귱융에 집착했습니다. 신부님이 생각하시기에, 협동조합의 핵심을 금융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공식직함은 없었다


이처럼 대단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리스멘디 신부님은 주도적 역할 했지만, 공식적 직함은 없습니다. 게다가 공식 회의 참여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일과가 끝나면 모임을 갖고, 협동조합에 대한 실무적인 이니면 방행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됩니다. 특히 그것은 지시가 아닙니다.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신부님은 자신의 생각 전달하면서 주도적 역할 하셨던 것입니다. 


비오 11세의 회칙 <40주년>이 끼친 영향


어떻게 아리스멘디 신부님은 본당 사목을 하면서, 가톨릭액션과 협동조합을 같이 할 수가 있을까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1931년 비오 11세 교황님이 발표한 40주년 회칙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2가지입니다. 


임금 계약보다 '동업 계약'을


임금계약을 동업계약으로 바꾸어서 임금노동자나 사용자 모두에게 이득 주는 방식으로 권고하는 내용이 <40주년>에 들어있습니다. 동업계약이란 곧 협동조합을 말하는 겁니다. 


30. 먼저 임금 계약은 본질적으로 부당하며, 그 대신에 동업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확실히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회칙에서 이 계약을 용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의의 원칙에 맞는 계약 체결에 대하여 심혈을 기울인 선임 교황에게 심한 모욕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현 상태에서는, 이미 임금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상당한 이득을 주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처럼, 가능하다면 임금 계약이 어느 정도 동업 계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와 관리직 종사자들 이 소유나 경영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어떻게든 이윤의 분배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40주년> 30항의 전반부


그래서 협동 조합 내에서 임금을 없애는 방법 많이 연구하게 됩니다. 소유와 경영에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이윤분배를 함께 하는 걸 교황의 회칙에서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보조성의 원리>가 정답이다


두번째는 한쪽은 파시즘, 다른 쪽 국가주의 스탈린체제에 맞서서, 그 두가지를 견제하려고 보조성의 원리가 나왔으며, 그것으로 하여 사회적 권익을 높이려고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역사가 명백히 보여주듯이, 사회 상황의 변화 때문에 이전에는 소규모 집단이 수행하던 많은 일이 지금은 대규모 조직체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의 창의와 노력으로 완수될 수 있는 것을 개인에게서 빼앗아 사회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은 확고 부동한 사회 철학의 근본 원리이다. 따라서 한층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으로 옮기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회 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회 구성체의 성원을 돕는 것이므로 그 성원들을 파괴하거나 흡수해서는 안된다.

국가 권력은, 자신에게 중대한 혼란의 원천이 되며 중요성이 적은 사업과 활동의 수행을 다른 조직체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국가는 고유하게 국가에 속하고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를, 상황이 제안하고 필요가 요청하는 대로, 지도하고 감독하고 격려하고 억제하면서 더 자유롭고 힘차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은 이 “보조성의 원리”(princi-ple of subsidiarity)를 더욱 충실히 따르고 다양한 조직체간의 위계 질서가 널리 받아들여질수록, 사회의 권위와 능률이 더욱 높아지고 국가의 상태는 더욱 행복하고 번영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0주년> 35항 후반부




사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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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사회란 무엇일까요? 사회란 '민심'이라고 말할 수 있스비다. 사회의 일반 백성들의 자율성 등을 부각시키는 것이 사회의 권위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권위를 높이려고 보조성의 원리를 만들게 됩니다. 아무튼, 아리스멘디 신부님은 동업계약과 보조성 원리에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40주년 회칙>에 따라서 노동자 청년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것은 억압적이고 차별적이고 탄압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독자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어서 행복하게 할까를 생각한 것이었어요.


"이런 식의 노동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청년 노동자들은 사회교리를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신부니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걸 실천하지 못하면, 협동조합, 협동방식으로 행복한 경제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사회교리란 헛수고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사십주년”에는 ‘임금 계약’을 ‘동업 계약’으로 새롭게 바꿔 임금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방식을 권고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소유나 경영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이윤의 분배도 함께 하도록 요청했다. 다른 한편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를 겨냥하여 국가 권력자들이 ‘보조성의 원리’를 지켜 사회의 권위와 능률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좋은 사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청년들에게 호감을 갖던 신부님은 이러한 회칙의 가르침에 따라 노동자 청년들이 민족적 사회적 계급적 차별과 탄압에서 해방되는 독자적인 경제구조를 설계하였다.

아리스멘디 신부님은 “(이윤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노동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청년 노동자들은 사회교리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회교리로부터 인간의 가치, 노동과 자본, 그리고 조직을 공유하기 위한 협동의 방식이 공동선을 돕는 수단이라는 신념을 받아들였다.

조세종의 서평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에 대한 서평 중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2016.2.29)

*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박정훈 옮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2016




또한 중요한 것이 <공동선>이다


그 다음으로 또한 아주 중요한 것은 공동선이었습니다. 이 공동선을 위한 수단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협동조합의 방식이었던 거죠. 협동의 방식! 그렇게 말쓰하시고 그 신념으로 움직이셨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신부님은 너무 많은 일을 하시면서 과로와 심장질환도 생기면서 건강이 나빠지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 운동에 헌신하신 신부님은 "마지막 남은 한 사람"까지 협동경제의 행복함 안에서 살도록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였던 아리스멘디 신부님, “고통은 여전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또 다른 증거”라고 하시던 신부님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마니피캇(루카복음 1장 46절-55절)”을 바치고 완전히 소진된 채 하느님 품 안에 안기셨습니다. 1976년 11월 29일 비가 내리는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신부님 생애이고, 짧게 짧게 그 생각 중 의미있는 부분을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이란 책입니다.


<호세마리아신부의 생각> 저자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지음 | 역자 박정훈  | 출판사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 2016.01.30 | 페이지 수 290 | 정가13,000원 


이 책은 크게 <인간과 사회>, <노동과 협동조합기업>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협동조합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어떤 가치와 사고를 정립해야 하는지 특히 청년들을 위해 당부해 왔던 정신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이 곧 사회의 모습이다."

"사람이 먼저 협동조합이 나중이다."


인간 내면에 진정한 미덕이 존재할 때 사회의 형성이 시작되는 것이란 맥락의 말씀이죠. 그렇지만 신부님은 개인의 책임성과 주체적이고 능동적 참여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체험하는 과정이 함께 할 것도 당부를 하십니다. 협동조합은 사상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존재들의 체험의 완성이라는 것이죠. 


"우리 스스로 더욱 자유롭고 지적이고 의식 있고 책임감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내적이고 사회적인 거듭남"을 체험할 때 인간은 경제적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생존의 조바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협동조합의 효율성은 인간적 가치가 순수하게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자원보다 우선한다는 데서 나온다."


인간의 가치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협동조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질 때 협동조합의 이상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훌륭한 경제학"이며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하려면 교육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노동은 하느님의 형벌이 아니다. 인간을 자신의 협력자로 만들려고 인간에게 부여한 신뢰의 증거이다."

특히 노동에 대한 그리스도적인 가치를 일깨우셨습니다. 그럴 때 협동조합 이상 구체화될 것이며, 노동은 하느님의 형벌이 아니고. 인간을 당신 협력자로 만드시려는 것이라고 강조하신 겁니다.


"경제 발전은 인간의 진보를 표현하는 것으로 진정한 도덕적 의무이다. 신자의 눈에 불완전 고용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간에 부끄러운 추문이다."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주라고 요구하는 미덕이다."

"노동에게는 노동에게 속한 것을 주고, 자본에게는 자본에게 속한 것을 준다."


신자의 눈에 불완전한 고용은 그 모습이 어떠하든간에 부끄러운 추문이라는 것은 고용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의에 대한 규정에서도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노동이 자본에 지배되거나 자본의 도구가 되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지요. 


협동조합은 "노동과 인간을 그 힘의 원천으로 삼는 조직이다. 여기서 자본의 성격은 도구적이고 종속적이다." 그리고 "협동조합원은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경영자"이며 "모두가 소유자이고 모두가 경영자이다."


물론 협동조합 역시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 놓여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이한 경제구조와 생산성 및 효율성 지표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하셨고,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시스템은 포기했지만, 더 많은 자본을 활용해야 할 필요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필요한 활동에 적절한 수준을 보장할 만큼 자본화 과정이 끊임없어야" 하기 때문이고요. 그러나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 금융, 사회, 정치 분야의 다양한 조직들을 개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책 안에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가운데 기관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인민노동금고>에 대한 신부님의 견해가 들어있습니다.


"인민노동금고는 일종의 댐이자 관리 시스템으로, 금융뿐 아니라 기업 정신을 공유함으로써 신생 협동조합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인민금고는 댐이라는 거죠. 그래서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진정한 협동조합의 정신을 간직하고 공유하는 온전한 협동조합의 탄생에 금고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종적 봐야 할 것은 우리가 여러 복합체의 성격을 가진 협동조합의 역사를 보면서,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스스로 결사를 통해 부당한 처우에 맞서며, 지속적으로 전진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파시즘, 일제와의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경제생활에 의식적이고 계획적으로 참가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가야 하며, 소비자 협동조합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을 통해 생산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기서 더 나아가서, 소비자가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즉 "세대 간 연대를 달성하귀 위해서 (투자자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인데요. 그것이 곧 인민노동금고(신용협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신용협동조합은 협동조합운동에 필수적이다. 이것은 노동자가 스스로의 협동조합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다."


지금까지는 소비자 협동조합이 발전하고 대부분 신협이 발전을 하였는데요. 여기에 모든 인간이 필요한 부분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생산, 소비, 유통, 교육 등 모든 것이 다 망라된 최초의 혁신적 모델이 바로 몬드라곤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게 다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탄압과 핍박 속에서도 키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게 바로 키포인트였던 거죠.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통합'입니다.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가치를 되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그 가치를 배우며 훈련하는 것이고, 그것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이상이 실현되는 수단으로서의 협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책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위 내용은 기록자의 편집으로 인해서 실제 강의내용과 차이가 있습니다.


대전 중앙시장 성당.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협동조합] 학습모임. 2016.3.2(수) 저녁 7시~9시20분 중 2부

강사 조세종 박사는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며 대전사회적경제연구원 소셜비즈니스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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