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활 대축일

2016. 3.27. 하부내포성지

 


여명은 어둠의 공허를 지운다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간 다음에 올라오신 분!




공허(空虛)에서 믿음으로 맞이한 새벽

 

우리는 오늘 아침을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맞이합니다. 부활의 아침이기에 그렇습니다. 그 까닭은, 공허(空虛)에서 믿음으로 맞이한 새벽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의 이 새벽을 맞이하기에 앞서 사흘 동안의 ‘성삼일’에 은혜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근 성당에 가서 3일 동안의 성삼일 전례에 참석하면서 매우 큰 은총의 체험을 했습니다. 목요일의 오전에는 주교좌 대성당에서 거행하는 주교님 주례의 성유축성미사에 참석하고, 저녁시간에는 저의 출신 본당의 성당에 가서 주님만찬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성금요일에는 신설 본당인 작은 성당에 가서 주님수난예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성토요일에는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의 시골 성당에 가서 부활성야의 전례에 참석했습니다. 이러한 성삼일의 전례 참석은 저에게 있어서 파스카 체험의 은혜로운 순례였습니다.

 

파스카는 하나의 순례


‘파스카’란 하나의 순례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여정이 ‘파스카’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번의 성삼일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길처럼 ‘찾아가는 길’로 여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여행으로 세 곳의 성당을 찾아가서 성삼일 전례에 참석했습니다. 세 곳의 성당을 찾아 가서 교우들의 맨 뒷좌석에 앉아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전례에 참석했습니다. 그 곳의 주임 사제나 교우들이 혹시라도 저를 알아볼까봐 사제복장을 하지 않고 허름한 평복으로 신자들 좌석에 섞여서 전례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제단을 바라보며 전례에 참석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한 전례참석을 통하여 저는 지금까지 40년 넘게 사제 노릇한 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을 했습니다. 


허름한 평복으로 신자들 좌석에 섞여 있던 까닭


저는 40년 넘게 제단에 서서 제단 아래의 신자들을 내려다보면서 전례를 집전했었지요. 그런데 그 40여 년 동안 내려다보던 신자들의 자리에서 거꾸로 제단을 향하여 올려다보면서 기도하게 된 이번의 성삼일에 저의 과거가 얼마나 부끄러웠던 것이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행렬에 끼어서 전례 행위를 하면서 새삼 느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단 위에서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를 바라보는 신자들의 심정을 이번 성삼일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너무 감사한 은총의 체험이었습니다. 즉, ‘위’를 바라보는 자리는 ‘아래’에 있다는 깨달음의 체험인 것입니다. 그러한 ‘아래’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곧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에 대한 나 자신의 연관성입니다. ‘아래에 내려감’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알아볼 수 있어야 나 자신이 예수님과 연관 지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인 것입니다.

 

아래에 있다는 깨달음의 체험


그 깨달음이란, 신앙고백문 가운데 특별한 한 구절이 저의 가슴에 충격으로 꽂히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라는 구절입니다.

 

'저승에 가시어'라는 구절에 대한 충격적 체험


‘저승에 가시어’라는 구절이 저의 이번 성삼일 전례참석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저승에 가시어’라는 한국어 번역문은 잘못 된 번역입니다. 원래의 신앙고백문은 ‘아래에 내려가시어’입니다. 그것을 라틴어의 표현에 따르자면 “descendit ad inferos”입니다. 여기서 ‘ad inferos’라는 말의 ‘inferus’는 ‘하부(下部)’라는 뜻입니다. 그 전치사 ‘ad’은 영어로 치자면 ‘to’입니다. 그리고 ‘descendit’은 ‘내려갔다’입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번역하자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어 ‘아래로 내려가신 다음’ 사흗날에 부활하시고”라 하고 싶습니다. ‘저승’이라는 우리 한국말의 뜻은 ‘이승(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곳을 일컫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서 이승의 우리와는 접촉 불가능한 곳으로 가셔서 되살아나셨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번역을 바로잡아야 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갔기 때문에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실 정도로 아래에 내려갈 데까지 내려가신 다음에 되살아(부활)나시고 올라가셔서 하늘의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활의 새벽에 그 깨달음을 얻자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갔기 때문에 그분은 되올라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부활’입니다.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간 것’

 

그것은 곧, 남은 것 아무 것도 없는 처지입니다. 그저 ‘공허(空虛)’만 남았습니다. 그 ‘공허’, 그것이 부활의 새벽에 목격된 ‘빈 무덤’이었습니다. 부활의 새벽, 그것은 빈 무덤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이 부활 대축일의 복음 성경은 비탄의 한 여인이 여명(黎明)에 체험한 빈 무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극적인 한 주간이 다 지나간 다음날(안식인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에 한 여인이 찾아간 무덤이 텅 비어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요한 20, 1). 즉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간 그분의 증거가 그 ‘텅 비어 있는 무덤’이었습니다.

 

슬퍼하는 여인의 가슴을 가득 채운 것


그 무덤에 찾아간 사람은 일전에 거기 묻혔던 주인공의 죽음에 대하여 가장 비통해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해서, 죽어 무덤에 묻힌 분에 대하여 그렇듯 가장 슬퍼하는 여인의 가슴은 그 텅 빈 무덤만큼이나 공허로 가득 찹니다. 황망한 발걸음으로 내달려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급히 알렸습니다(요한 20, 2). 이 허망한 급보에 놀란 사나이들이 허겁지겁 뛰어가 확인한 것 역시 공허뿐이었습니다(요한 20, 3-7).

 

그런데 거기 그 공허 속에 들어간 사나이들은 믿음을 얻었습니다(요한 20, 8). 비극적 최후로 죽음을 당한 분이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던 성경 말씀을 지금껏 믿지 않던 그 사내들은 그 죽은 분의 공허한 무덤 가운데 들어가 믿음을 얻었습니다(요한 20, 9).

 

전에 얼마 동안 그 사내들이 기대에 차서 따라다녔던 분이 세상의 저주 속에 죽어 묻혔기에 이젠 살아갈 그들의 앞길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는데, 그 죽은 몸마저 사라져버린 그 허망함이란 더 이상 볼 것조차 없는 공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허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믿게 되었다니, 그야말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괴이한 일입니다. 도대체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글쎄,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도무지 모든 기대가 무너진 패망 가운데, 그리고 더욱 지난 사연에 대한 증거라 할 시체마저 사라져버리고 텅 빈 무덤뿐인 걸…! 이제 티끌만큼이라도 더 믿을 만한 터무니란 찾아볼 게 없잖습니까! 그런데…!

 

이런 파국에서 새로이 믿음을 얻다니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그런 공허와 파국 가운데서 믿음을 확고히 얻고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 전환(逆說的 轉換)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맨몸으로 허공에 떨어지면서 새로운 땅에 내려가 살겠다고 외치는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모험인 것입니다. 목숨을 내던지는 까마득한 나락의 절망에서 새롭게 살아갈 날을 기약하자는 것이 그 공허 속의 믿음인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물고기의 자유를 말하고 싶습니다. 도무지 그 바닥이 어느 메인지 알 수 없는 깊은 물속에서라야 고기는 자유롭습니다.

 

물고기의 자유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는 바다 속이 얼마나 무섭도록 깊은지 알지 못하고 편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어항 속을 노닐겠지요. 하지만 그 어항 속의 물고기는 어항이라는 한계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자유에 몸을 맡기고 그 이상 넓은 세계를 알지 못하는 못난 물고기이지요. 해서 그 어항 속의 물고기는 몸도 마음도 더 이상 클 수가 없습니다.

 

바다는 모험의 장(場)


반면, 바다의 물고기는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자기의 세계를 마음껏 넓혀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기는 어항에서가 아니라 ‘물 만난 고기’로서 본래의 자유로운 물고기이기에 큰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다는 큰물이라 불리는 모험의 장(場)입니다. 물고기란 그래서 그런 모험의 큰물을 만남으로써 이른 바 ‘물 만난 고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물 만난 고기’는 그렇듯 오로지 큰물을 자기의 세계로 믿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세상 한계의 망 속에 갇힌 존재가 아니다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이 세상 한계의 망 속에 갇힌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무너진다 하여 겁날 것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즉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 자체를 허무로 볼 수 있는 믿음의 배포가 있어, 결코 절망할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오늘 여명에 빈 무덤을 발견한 비통의 여인 같은 신세가 우리들이라 하더라도, 거기 그 공허의 무덤 속을 들어가 보고 믿음을 갖게 된 제자들처럼, 그렇게 깊은 좌절의 늪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새로운 삶의 길로 향한 서슴없는 믿음의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른 아침, 즉 여명에 빈 무덤을 발견한 사람은 곧 신앙의 우리 자신입니다.

 

여명은 밤의 발자국을 말끔히 지워준다


여명은 밤의 발자국을 말끔히 지워줍니다. 그렇듯이 부활이란 죄악의 흔적을, 즉 죽음의 그림자를, 더욱 어둠의 그물을, 걷어내는 일대 전환입니다.

 

그러한 전환을 저는 새벽의 등산길에서 체험한 바 있습니다. 제가 백두대간을 구간별 종주하면서 경험한 것입니다. 이어서 올라야 할 대간의 구간을 접근하는 시간은 늘 이른 새벽 즉 여명이었습니다. 이어가야 할 백두대간의 정해진 구간에 접근하기 위해서 제가 사는 곳에서 전날 밤 출발하면, 매번 새벽 3-4시에 그 출발점의 산 아래에 도착하여 마음과 몸의 각오를 다지고 여명을 맞이하는 산길을 오르게 됩니다.


새벽의 등산길에서 체험한 것

 

그 백두대간의 남한 지역 중간 부분인 월악산 준령의 포함산을 제가 오르던 때는 11월 하순의 초겨울이었습니다. 그 포함산을 오르려면 경상북도에서 충청북도 사이를 넘는 ‘하늘재’에서 대간 줄기를 타야 합니다. 그 ‘하늘재’는 한반도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시대(서기 156년)에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고 하는 곳인데, 지금도 그 고개 마루는 한적하고 으슥한 곳입니다. 초겨울의 으스스한 새벽에 그 고갯마루에 도착하여 올라야 할 포함산을 올려다보니 검은 하늘 아래 산의 마루금이 분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미리 지도로 숙지한 바대로 방향을 잡아 그 컴컴한 포함산 허리를 더듬어 오르면서 다만 한 가지만을 믿었습니다. 한 시간쯤 오르면 샘이 나온다는 지도의 표시만을 믿고 그 샘에 이를 때쯤이면 날이 밝으리라 기대하며 올랐습니다. 그 샘에서 나의 수통에 물을 채우고 확실한 등반로를 식별하리라는 생각으로 몸의 배낭에 빈 수통을 넣은 채 산 허리를 더듬는 믿음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머리에 부착한 헤드랜턴의 불빛 따라 캄캄한 급경사의 산허리를 더듬어 오르는 저의 등줄기에 땀이 흠뻑 배는데 벌써 나무와 나무 사이 등반로가 식별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명이 밝아오며 등반로가 저의 눈에 선명하게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저에게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한 시간을 오르면 샘이 나온다는데, 새벽 4시에 산에 오르기 시작한 나의 시간 계산으로 산길이 눈에 집힐 정도라면, 그 초겨울의 여명으로 벌써 6시도 넘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어림짐작이 들어 내가 엉뚱한 길을 헤맨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었던 것입니다. 해서 손목시계를 랜턴으로 비쳐보니 5시를 갓 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위를 바라보니 이미 하늘 아래 산마루는 선명하게 그 웅자를 들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산행 속도가 너무 지진해서 오늘의 목적지에 이르는 일정에 차질을 빚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더욱 마음을 불안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발걸음으로 급경사를 오르는데 조그마한 돌무더기 사이로 쫄쫄 흘러나오는 그 지도상의 샘이 나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환희를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 이 어두운 산길 오르막을 용케도 내가 정확히 짚었구나!”하는 짜릿한 승리감이었던 것입니다. 어둠 속의 처음 가는 길에 내맡긴 내 몸이 이룬 믿음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샘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면서 바라보는 나에게 여명의 백두대간은 그 장엄한 가슴으로 다가오며 나의 그 감격적 가슴을 포옹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은 불확실하지만, 그 불안의 공허 속에서 ...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 묻혀서 하늘인지 산인지 분간할 수 없어 불확실하기만 한 그 포함산은 여명의 순간으로 그렇게 어둠의 그 불안한 그림자를 말끔히 지우면서 저에게 환희를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이 세상에서의 우리 믿음의 길은 불확실하지만, 그 불안의 공허 속에서 우리에게는 그래도 단단한 땅바닥에 발을 내딛듯 나아갈 수 있는 터무니가 있습니다. 그 까닭은 왜이겠습니까? 그것은 불확실 가운데서도 제가 그 백두대간의 포함산 품속에 이미 들어가 그 오르막길을 옳게 올랐듯이, 이미 죽음을 완전히 지나가신 그리스도를 따라 오르는 우리 믿음의 길에서 절망은 그분에 의하여 우리에게 있어 이미 극복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에 의해서 이미 사라진 절망, 그것이 곧 그분의 빈 무덤이었던 것입니다.

 

인간 최대의 절망이며 비극인 죽음까지 넘어간 그 분


빈 무덤처럼 절망 그 자체마저 다 사라진 그것은 곧 새로운 세상에로의 시각을 열어주는 투명한 우리의 앞길인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로 막을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 최대의 절망이자 비극인 죽음까지 넘어간 그분이 열어준 길에 이제 보일 장애물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투명한 대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 분으로 살아계신 그 분

 

그래서 그분은 이제까지 싸우고 헐뜯고 배신하고 짓누르며 서로를 숨 조이는 죄악의 그 어둡던 그림자를 몽땅 없애버린 분입니다. 그래서 죄악에 찌든 우리의 혼탁한 세상에 나타날 분이 아니라, 투명한 대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 분으로 살아계신 그분, 즉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분은 우리 세상의 눈으로 보이는 분이 아니면서도 우리의 세상을 가득 채우고 계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한 그분은 우리가 살아 숨쉬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소(酸素)와 같은 분이시되, 이제는 죽어가는 병자의 코에 호스로 제공되는 산소통만의 산소가 아니라, 삶을 엮어가는 우리의 세상 가득히 우리가 숨 쉬는 산소처럼 우리를 살게 하시는 분이기에 공허처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듯 그분은 우리를 이제는 늘 살게 하시는 분으로, 즉 우리 세계의 생명으로 살아계신 분, 곧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그분의 부활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그 생명을 우리 세상에 가득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활의 아침은 어둡던 세상의 불안한 그림자를 지우면서 맑은 생명의 빛으로 다시 시작하는 여명처럼 우리에게 밝아온 것입니다.


비울 만큼 다 비우고,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간 처지!

 

그렇습니다. 비울 만큼 다 비운 것,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간 처지! 그래서 부활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짙을 만큼 짙었던 밤이 지나고 여명은 밝아옵니다. 그 여명은 그 짙은 밤의 공허를 지우고 빛으로 채워지는 순간입니다. 그러한 부활의 새벽을 우리는 맞이합니다. 그러한 새벽은 ‘새로운 날’의 시작입니다. 그 ‘부활’의 체험에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서짓골의 빈 무덤


여기 하부내포의 연중도보순례의 날이 이번 주간 수요일입니다. 3월 30일입니다. 150년 전 병인년의 3월 30일에 갈매못에서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 등 다섯 분이 순교하셨습니다. 그해의 3월 30일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습니다. 이러한 3월 30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순례자들이 웅천 완장포구에서부터 9㎞의 길을 걸어서 서짓골에 도착하여 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3월 30일은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입니다. 갈매못에서 처형 되신 순교자들의 시신을 바닷길과 산길을 통하여 옮겨 모신 서짓골을 찾아 미사를 봉헌할 이번의 3월 30일은 부활주간의 수요일입니다. 서짓골에 모셔졌던 그 순교성인들의 무덤은 파묘되고 그 유해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기에, 오늘날의 순례자들은 서짓골에서 ‘빈 무덤’을 만나게 됩니다. 순교성인들의 육신이 진토 되어 그곳의 흙이 되었고 그 유골들 일부만 수습되어 다른 곳(나가사키→서울 절두산)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의 육신이 진토 된 서짓골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짓골의 그 ‘빈 무덤’은 오늘날 찾아와 참배하는 순례자들의 눈에 신앙의 정기(精氣)가 하늘에 오른 징표입니다. 거기 묻히어 진토 된 분들의 신앙이 오늘의 순례자들 가슴에 가득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빈 무덤’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골고타의 새벽을 오른 마리아 막달레나의 심정으로 걷는 순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 무덤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요? 지나온 세월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날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죽음처럼 캄캄하던 이 세상 죄악의 밤을 지나 그 어두운 그림자는 이 부활의 여명에 의해서 스러지고 새로운 생명의 날이 밝아온 것입니다. 여명은 어둠의 공허를 그렇게 지웁니다.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간 다음에 올라오신 그분처럼…!


출처 - 하부내포성지 다음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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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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