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2016.5.15. 하부내포성지

 


마음이 통해야 말이 통한다

나의 말이 아니라, 듣는 이의 말로 말해야 …




 

성령강림 대축일을 예비교우 환영의 날로  

 

저는 전에 있던 여러 본당에서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예비교우 환영의 날로 지내곤 했습니다. 이날은 이러저러하게 서로 다른 출신성분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날’이기에 그리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는 제1독서인 사도행전 2장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이 모여 있다가 성령을 받고 말하기 시작하자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한 가지로 말을 알아듣게 된 것처럼(사도 2, 1-11 참조), 예비교우님들과 모두 한 식구로 서로 한 마음이 되는 자리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 오늘 성령강림의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이면서도 한 마음이 된다는 것, 

그야말로 성령강림을 체험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성령강림 사건은 새 인류 출현의 체험  


성령강림 사건이란 새 인류 출현의 체험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거스르고 죄를 지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며 뿔뿔이 흩어진 ‘바벨탑 사건’(창세 11, 1-9 참조)은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불행입니다.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불행, 그 불행이 극복되는 사건이 오순절에 일어납니다. 이 ‘성령강림 사건’으로 다시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재창조됨’을 예루살렘 오순절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 인류의 출현’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 몸의 많은 지체와 같이 … 교회 공동체의 일치로 실현  


그렇듯, ‘새 인류의 출현’이란, 오늘 제2독서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셨듯이, 한 몸의 많은 지체와 같이 우리 각자의 하는 일과 처지가 다르면서도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일치로써 실현되는 것입니다(1 고린 12, 3-13 참조).

 

성령강림 대축일은 오순절 … 50일째 되는 날  


이러한 ‘성령강림 대축일’은 ‘오순절’이라고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πεντηκοστη․Pentecost : the fiftieth)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축제의 완성을 이루는 날이 오늘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위대한 오십일’( the great fiftieth day)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오십일만의 축제를 ‘해방의 완성을 이루는 날(Asseret)’로 지냈는데,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진짜 해방을, 즉 새로운 삶을 얻은 부활의 축제를 이 오십일을 통하여 완성하는 이날 ‘성령강림의 축제’로 기념합니다.

 

부활 축제의 완성일 … 위대한 오십일


사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과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동일한 체험입니다. 즉 부활과 성령강림은 한 가지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증거 없이 그리스도의 죽으심(묻힘)과 부활승천(일어섬과 들려 올리어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비록 성령강림 사건을 사도행전의 보도대로 오순절, 즉 부활 후 오십일만의 일로 축제를 삼는 것이 4세기 이후 교회의 전례력입니다만, 실상 초대교회에서 이 부활 시기의 50일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을 함께 입체적으로 기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는 요한복음서 20장 19-23절은, 부활 당일에 한 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여 오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숨결로 성령을 주셨다고 보도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22-23)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신 바로 그 동작과 같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 7) 하였듯이, 죄악으로 쓰러진 우리 인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숨결로 성령을 넣어주심으로 죄로부터의 해방을 이루어 주십니다(요한 20, 22-23 참조).

 

그와 같이 성령, 즉 하느님의 숨을 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으로 들어가는 삶의 일대 전환입니다. 그러한 삶의 전환을 우리는 오늘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었던 것입니다.

 

성령강림 축제가 드러내는 최대의 상징  


이렇듯 성령강림의 축제가 드러내는 최대의 ‘상징은 다 같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일치)’입니다(사도 2, 1 참조). 다 같이 한 곳에 모이는 거기에 성령께서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일치의) 기적을 이루어주십니다. 그것은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로 사도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기적(사도 2, 1-4 참조)이며, 또한 동시에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자기네 말로 다 알아듣게 된 기적(사도 2, 5-11 참조)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 이 성령강림 사건의 핵심입니다. 바벨 탑 사건(창세 11, 1-9 참조) 이후 서로가 통할 수 없는 말들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져간 인간들의 삭정이 같은 마음들을 일깨우는 바람으로 오셔서 함께 타오를 불씨를 우리들 사이에 지펴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서로 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말이 통하도록 사람들을 변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세상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많다  


세상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만한 말을 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어가 아닌 우리 한국어로 말하는데도 부모의 말을 자녀가 알아듣지 못하고, 자녀의 말을 부모가 알아듣지 못하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 여당과 야당 사이에, 기업인과 노동자 사이에, 영남과 호남 사이에, 그리고 더 나아가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남한과 북한 사이에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것은 마음을 주지 않는 말들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남북 간이건, 부모 자식 사이건, 영호남 사이건, 성직자 신자 사이건 간에 복선이나 위선을 떨쳐 버리고 서로가 진정으로 상대방의 마음과 하나 될 수 있는 자신들의 마음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속내를 전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다 드러내어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시고 당신 숨결을 몽땅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한 일을 오늘 이 성령강림의 신비로 이루십니다. 성령강림이란 하느님(아버지)께서 당신의 말씀(성자)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성령)을 내어주신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아드님(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인류)는 그 말씀을 배척하였(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께서는(흉금을 열고) 속에 담기신 마음(숨결)을 내어주십니다. 부활하여 오신 당신의 숨을 내쉬셨던 것입니다(요한 20, 22 참조). 그 당신의 숨은 곧 성령이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

 

용서란 무엇입니까?  


용서란 무엇입니까? 묶인 마음을 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던(요한 20, 19 참조) 제자들은 자기들의 스승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을 무서워하며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묶인 마음들이었지요. 그러나 부활하여 오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밖으로 사람들에게 내보내시며(요한 20, 21 참조) 성령을 주십니다(요한 20, 22 참조). 이렇게 성령을 동반한 파견은 용서(즉, 마음 풀기)의 관건입니다(요한 20, 23 참조).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 성령께서는 드디어 사도들을 사람들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시고 서로 통하게 하십니다.

 

사도들이 듣는 사람들의 말로 말을 하게 된 까닭  


이제 사도들은 자기들의 말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말로 말을 하게 됩니다(사도 2, 4. 8. 11 참조).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길(言路․언로)이 트이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마음이 통하는 길(心路․심로)을 터주셔서 서로의 말이 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것은 마음 없는 말이 아니라 ‘한 마음’(사도 4, 32 참조)에 실려 있는 말이었기에 모두 알아듣는 것이었지요. 이것은 바벨 탑 사건(창세 11, 1-9 참조)으로 무너진 인류가 새롭게 창조된 오순절 사건의 핵심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인류의 부활(재창조)로 실제화한 체험입니다. 이것이 오늘도 우리들의 세상에 실현되어야 할 부활과 성령강림의 동일 사건이자, 파스카 즉 해방이 완성되는 오순절(오십일)인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주장하여 흩어져 패망하게 된 인류가 이제 한 마음으로 말이 통할 수 있게 된 새 인류로 다시 창조된 인류 부활의 사건, 그것이 곧 오순절 성령강림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신자라면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어야  


그렇듯이 인류 부활을 이루어주시는 성령의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일컬어 ‘세례 받은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 모두는 서로 마음 통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미 받은 세례를 갱신하며 새 인류로서의 재출발을 다짐합니다. 새 인류란, 나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듣는 이들의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세례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말을 하려 하기보다는,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말을 대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심로(마음의 길)에서 언로(말의 길)를 펼 수 있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마음이 통해야 말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서로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곧, 성령으로 세례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어야겠습니다.

 


출처 - 하부내포성지 다음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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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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