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인권』을 읽고 정리한 노트필기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국민국가와 시민권 제도의 등장



1215 영국, 대헌장 제정 | 왕으로부터 귀족의 권리를 재확인

1628, 영국 [권리 청원] 제출 | 찰스 1세를 상대로 국민의 권리를 선언

1642∼1649, 영국, [청교도 혁명] 일시적으로 군주 정치가 무너지고 공화 정치가 시행

1688, 영국, 명예혁명 | 피를 흘리지 않고 전제 왕정을 입헌 군주제로 바꾸다

1689, 영국, 권리 장전 발표 | 왕권을 제한해 시민에게 권리를 부여

1775∼1783, 미국, 독립 전쟁 | 국가가 세워져 시민의 권리가 보장받다

1789, 프랑스 혁명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발표
인권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 프랑스 공화국 시민 또는 프랑스 거주자의 인권 보장 


영국은 대헌장(마그나 카르타)를 통해서 형식상 입헌군주국가가 되었다. 1215년 영국의 존 왕은 귀족들의 강요에 따라 몇 가지 권리를 포기하며 법적 절차를 존중하겠다고 서명하였다. 즉 전제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변모한 것이다. 다만, 대헌장을 통한 효과는 시민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대헌장의 의미는 왕의 권한을 축소하고 귀족과 성직자의 권리를 확장한 것이며, 그들의 의회를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적용하게 되면서 왕권의 제한에 따른 권리의 분산을 고위 귀족신분으로부터 부르주아 시민들에게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대헌장 12조는 왕의 과세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이후에 등장하는 권리청원(1628)과 권리장전(1689)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 부르주아 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제12조 오래된 관습상 인정되어 온 것(관례로 굳어진 것) 외의 과세 혹은 봉건 지원금은 귀족들의 자문을 거치지 않으면 부과할 수 없다. 다만 왕이 인질이 되었을 때의 협상금, 왕의 아들이 기사가 될 때 필요한 비용, 왕의 장녀의 혼인에 필요한 비용 등은 예외로 한다.


결론적으로 영국이 입헌군주국가로 출발한 실제적 시점은 1688년의 명예혁명과 이어진 1689년의 권리장전 발표에 이르러서이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왕정을 입헌군주제로 바꾸었으며, 명예 혁명을 통해 국왕이 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그들의 왕권을 제한하고 시민들에게 권리를 부여한 권리장전을 수락하였다. 


명예혁명(名譽革命, Glorious Revolution, 1688)은 영국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빌럼이 연합하여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로 즉위시킨 사건으로 이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이루어졌다'라고 해서 명예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명예혁명은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출발시킨 시발점으로, 이후 어떠한 영국 왕조도 의회를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당시 작성된 1689년 권리장전은 영국의 국가제도를 규정한 대헌장(大憲章)·권리청원(權利請願)과 함께 헌정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의회 제정법이다. 영국 의회가 명예혁명으로 윌리엄 3세를 추대하면서 권리선언(權利宣言)을 제출하여 승인을 받았고, 이 선언을 토대로 의회제정법이 공포되었다.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는 국민 공동체를 기초로 하는 국가이며, 국민이란 시민 계급의 성장을 통해 형성된 시민권 제도의 보장을 바탕으로 발달한 근대적 인간의 형태였다. 국민국가에서 국민이란 국가라는 일정한 영토 안에서 공통의 정체성으로 묶인 집단을 말한다. 예를 들어, 봉건시대의 영국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할 줄 알았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프랑스의 귀족들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에서는 국가라는 영역별 단위 속에서 다양한 문화, 지역, 종족, 계급 등을 통합시킨 개념이었다. 


런던대학교 정경대 철학과 교수 어네스트 겔너는 그의 책 『민족과 민족주의』(1983, Nation and Nationalism)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가능한 한 넓은 상품시장과 기업들의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대체할 수 있는 자유롭고 동질적인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로 발전했다.


시민 계급의 성장은 도시의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절대 왕정체제의 중상주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절대 왕정과 여전히 유효했던 봉건적 신분질서는 이어지는 시민혁명의 발생으로 약화되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혁명으로 절대 왕정을 붕괴시키고, 입헌 군주제 국가로 변모하였으며, 영국의 신민이었던 미국은 1766년 독립선언과 독립전쟁(미국혁명)을 통해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아메리카 합중국을 탄생시켰다. 이어 1789년 프랑스 혁명은 국민 의회의 인권 선언으로 혁명의 기본 이념을 밝히고, 국민 공회의 공화정을 선포했다. 



이처럼 시민 혁명은 상공업자 중심의 시민 계급은 물론 노동자와 농민 등이 봉건사회의 특권을 폐지한 혁명이었다. 이를 통해 귀족의 특권을 폐지하고,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따른 근대 사회를 건설하는 움직임이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시민혁명의 사상을 뒷받침 한 것은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 계몽사상가들이었다. 자연법과 자연권에 바탕을 둔 그들의 인권 사상과 홉스, 로크, 루소 등의 사회계약론은 혁명의 밑그림들이었다. 


결론적으로 명예혁명(1688)이나 계몽사상가들의 사상을 현실화한 미국 독립 혁명(1776), 프랑스 혁명(1789)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민족주의 원리에 기초한 국민국가 수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영국의 권리 장전(1689)

제1조 국왕이 의회 동의 없이 법 효력이나 법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위법이다.

제5조 국민이 국왕에게 청원을 했다고 구금되거나 박해 받는 것은 위법이다.

제9조 의회 내 토론, 논의는 의회 아닌 어떤 곳에서도 고발당하거나 심문받지 않는다.


미국의 독립 선언(1776)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생명과 자유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포함하여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인간은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를 조직하였다. …… 만일 이러한 목적을 침해한다면, 그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고, 민중의 안녕과 복지를 가져다주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진정한 국민의 권리이다.


프랑스의 인권 선언(1789)

제1조 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그 무엇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자연권을 보전하는 데 있다. 그 권리는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천은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어네스트 겔러에 따르면 국민국가는 유럽전체를 포괄하는 규모로 발전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교통과 통신망의 한계 때문인데,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역사학자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그의 책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이나 국가는 실제하는 것이 아닌 '상상의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즉 근대에 들어와 형성된 민족이란 개념은 인쇄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지역 언어가 민족을 나누면서 구분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앤더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로 묶이는 순간 공동체 집단 내의 다양한 계층과 성격,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들이 무시되면서 비이성적인 사건(증오범죄, 홀로코스트)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간은 국민 국가가 형성되던 시대였다. 한때는 유럽의 통일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 그러나 1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서유럽과 미국에서 형성된 국민국가는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비유럽 세계를 침탈하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유럽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천부인권사상은 그들만의 것이었지 결코 비유럽인들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종족과 민족을 도륙하고 말살하는 참혹한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던 이들이었다. 


이른바 대항해 시대(15세기 초~18세기 중반) 이후 (이른바 철저히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은 국민 국가의 형성과 함께 제국주의의 시대를 개막했다.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도륙하고 내쫓거나 약탈하였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제국주의의 후발주자인 독일과 이탈리아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비열하고 잔인한 방법의 깡패짓거리에 합류하여 본격적인 아프리카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러한 유럽의 탐욕은 이른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1918)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쟁을 낳았다. 유럽대륙에서는 수없이 많은 전쟁이 있어왔지만, 1차 세계대전은 유럽 만의 전쟁이 아니라, 다른 대륙들과도 연관된 세계적인 전쟁이었다. 게다가 전쟁 이후의 베르사유 조약(1919)는 국민국가를 세계질서의 기본 단위로 승인한 새로운 체제를 성립시켰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그들 입맛대로 세계지도를 구획하고 분할했다. 



2020년 5월 2일(토) 오후 5시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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