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인권』을 읽고 정리한 노트필기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시민권 제도의 확산과 이론의 발전





영국의 역사학자 앤더슨(Benedict Anderson, 1936~)은 그의 책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이나 국가는 실제하는 것이 아닌 '상상의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복잡한 역사는 단일한 혈통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며, 때로 섞이고 때로 반목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의 혈통과 언어를 만들었던 것이지 하나의 운명공동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구분되면서, 민족은 자연스럽게 숙명적인 공동체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실 민족이라는 구분법이 등장한 결정적 이유는 인쇄자본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오랫동안 라틴어가 보편적 언어로 통용되었고, 독일어나 네덜란드어는 지역언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접하기 쉬운 지역 언어로 만든 인쇄물들이 다시 제작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지역 언어가 민족을 구분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상 언어는 같아도 서로 교류한 적이 없던 이들이 인쇄물을 통해 서로 같은 언어권임을 확인하면서 이를 하느님이 내려주신 숙명으로 여겼는데, 바로 이것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앤더슨은 말한다. 


민족은 자연스럽고 숙명적인 공동체이므로, 구성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해도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피살, 살해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구성원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민족주의적 결정들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 앤더슨


공동체 집단 내에는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성격, 그리고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상상의 공동체로 묶이는 순간 무시무시한 비이성적 일들을 해낸다. 생전 만나본 적도 없고, 만난 일도 없는 가난한 농부와 변호사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증오범죄에 가담하는 일이 생긴다. 실제로 홀로코스트를 시작하고 주도한 것은 히틀러였지만, 그 뒤에는 학살을 묵인하거나 동조한 수많은 독일인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국가 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고화되었다. 여권과 다양한 신분증이 개발되고, 국민등록제도가 개발되었으며, 국경을 통제하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1919년 베르사유 체제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원칙이 1930년 헤이그 협약을 통해 수립되었는데, 이는 무국적자와 이중국적자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근대국가의 형성을 되돌아보면 프랑스 혁명(1789)과 이에 따른 시민권 제도의 발전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1789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군주국의 관원과 백성의 신분에 해당하는 신민(臣民)이었고 주권은 국왕에게 있으며(왕권신수설) 백성은 국왕의 신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 근대적 개념들은 1789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프랑스혁명(1789)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과 이를 구체화한 프랑스 헌법(1791)은 근대 시민권 마련의 토대가 되었다. 


프랑스의 인권 선언(1789)

제1조 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그 무엇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자연권을 보전하는 데 있다. 그 권리는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천은 국민에게 있다.


미국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혁명같은 시민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몽사상가들 덕택이었다. 자연법과 자연권에 바탕을 둔 인권 사상과 홉스, 로크, 루소 등의 사회계약론은 혁명의 밑그림들이었다. 잉글랜드 최초의 경험론 철학자이며 정치사상가 존 로크(1632~ 1704)의 자연권 사상은 인간의 태생적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권의 대전제를 마련했으며,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1689~ 1755)의 삼권분립 사상은 시민권 보호를 위한 권련분산과 상호견제제도를 마련하는 초석이 되었다. 또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1694~1778)는 자의적 공권력의 사용을 제한하자고 주장했고, 중농주의자들은 사유재산권 보호를 역설했다. 


중농주의(重農主義)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에서 발생한 경제이론으로, 국가의 부는 오로지 농업의 가치에 의해 발생하며, 농산물의 가격은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농주의는 18세기 하반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체계적으로 수립된 최초의 경제이론으로 평가받는다. 중농주의는 고전경제학(최초의 근대적 경제학, 애덤 스미스 <국부론>(1776)) 직전에 등장한 최후의 전근대적 경제학이다. 


홉스, 로크, 루소의 질서와 권리

영국의 정치철학자이며 최초의 근대적 사회계약론자 토마스 홉스(1588~1679)는 존 로크(1632~ 1704)보다 44년 먼저 태어났지만, 훨씬 더 근대적인 인물이었다. 홉스는 현실적 생명체와 생명(생존) 운동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질서를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과학은 정신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홉스가 전제했던 인간은 비이성적이며, 비이성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리바이어던의 질서는 매우 암울했고,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질서가 아니었다. 반면 로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버렸다. 신의 조화로운 자연법이 인간의 자유와 질서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중세적 설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신의 몫이었던 이성을 인간에게 적용한 셈이었다. 신이 질서와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은 신성의 일부인 이성을 덤으로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는 단순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는 쟁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다양한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었다. 루소(1712~1778)는 홉스나 로크의 사후에 등장한 인물이다. 그래서 루소는 정신에 관한 18세기 과학의 발전을 반영하여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 이성을 설명할 수 있었다. 루소에게 인간의 생명활동은 생존활동에 한정된게 아니라 이성활동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이 계약으로 만들어낸 질서 역시 생존을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배려하여 인간의 자유를 더 많이 실현하도록 했다. 루소의 질서와 권리는 홉스나 로크의 그것보다 더 현세적이고 풍부한 내용으로 현재의 권리나 질서와 유사한 것이 되었다. 



국민국가와 시민권 제도의 확산


  • 독일

    • 1807년 베스트팔렌 헌법 제정

    • 1849년 통일독일제국 헌법 확정(시민권 보장이 주요 내용)

    • 1919년 바이마르 헌법(진정한 의미의 시민권 보장)

  • 일본

    • 1867년 메이지 유신

    • 1889년 제국헌법(제한적 의미의 시민권 보장)

  • 중국

    • 1911년 중국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 탄생

  • 1945년~1960년 식민상태의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


근대국가 형성의 핵심은 국민국가의 성립과 시민권 제도의 보장이다. 또한 20세기에 이르러 시민권 확장을 위한 노력은 국제기구의 탄생을 통해 더욱 확장되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이 창설되고, 1948년 11월 12일 UN은 세계인권선언(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는 인권의 보편적 권리를 세계적으로 만국공통의 원리로 선언했다는 데에 있으며,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후 국제법적 효력을 가진 규약들을 채택하게 되는데, 1966년 12월 16일 A규약(국제사회권 규약)과 B규약(국제자유권규약)이 채택되었고, 이는 1976년 3월 23일자로 국제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국제사회권 규약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며, 국제자유권규약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다. 



현대 인권 - 시민권 이론의 발전


사회권의 탄생

시민권의 발전 과정 중, 사회권의 탄생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18~19세기에 등장한 개인주의적 시민권은 재산을 가진 남성 위주의 권리였다. 특히 재산권의 문제가 있었다.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 대부분이 남성들이었다. 재산권은 국가의 간섭없이 내가 가진 재산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계약을 체결하는 권리이며, 재산을 보호·처분하고 상속하는 데에도 남성의 권리가 우선되었다. 따라서 재산이 없는 노동자는 항상 실업의 위험이 따랐고, 이에 따른 보상과 보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또한 가정에서 가사와 출산 및 육아를 전담하던 여성들의 역할에 따른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되었다.  


근대국가를 형성하면서 시민권은 사회통합의 매개가 되었으며,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 영국에서 등장한 자유권적 기본권(Civil Rights)은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기본권이었기때문에, 좀 더 보편적인 인간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시민권의 세 단계로 설명한 영국의 사회학자 토마스 험플리 마샬은 그의 책 『계급, 시민권, 사회적 발전』(1963) (Class, Citizenship and Social Development)에서 영국의 시민권을 자유권적 기본권(18세기), 정치적 기본권(19세기), 사회권적 기본권(20세기)으로 구분했다. 


특히 인권의 역사에서 18세기(자유권)과 19세기(정치적 기본권)를 자유주의 시대라고 한다면 20세기는 인간의 사회적 권리가 새롭게 등장한 시대이다. 사회권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헌법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다. 사실상의 평등한 권리를 구현하려면 자유와 평등이 실질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권리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서 최초로 도입되었으며, 1948년 세계 인권선언의 제22조(사회보장에 관한 권리), 제25조(건강의 권리) 등으로 명문화되었다. 사회권의 핵심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이며 이를 위해 복지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34조 제1항은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를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32조 제2항부터 제6항까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ㆍ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ㆍ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한편 20세기의 대표적 복지사상가 토마스 H. 마샬은 사회권적 입장에서 복지가 시혜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유한 시민권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권(복지)이 모든 시민의 보편적 권리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복지는 박애나 자선이 아니라 시민권적 사고에서 출발한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보편적 복지로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며, 현대 서구 유럽의 복지국가 형성에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T. H. 마셜 (지은이),김윤태 (옮긴이) | 이학사 2013-08-30 | 17,000원 | 285쪽  152*223mm


'시민권' 이론을 통해 복지가 시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보편적 권리라는 사상을 발전시킨 영국의 사회학자 토머스 험프리 마셜(1893~1981)의 논문을 묶은 <시민권과 복지국가>(이학사)가 2013년 8월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77년 미국의 사회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이 서문을 쓰고 시카고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계급, 시민권, 사회적 발전>에 수록된 논문 중 <시민권과 복지국가> 논문 7개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문으로 평가받는 '시민권과 사회계급'의 한국어판 판권을 확보하지 못해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 인권

여성의 인권은 20세기 인류가 플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여전히 여성의 인권은 남성의 인권과 비교하여 열등한 자리에 있다. 1930년대 일본에서는 '제국을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강요를 당연하게 여겼으며, 여성의 낙태 금지나 제한은 나라에 따라서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인권침해적 제도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에 제정된 낙태죄 규정을 66년 만인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4명, 단순위헌 3명, 합헌 2명) 선고를 내리면서, 2020년 연말까지 관련 법개정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형법 조항(제269조 1항, 제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산부인과 의사의 헌법소원, 위헌법률 심판제청 사건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 …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인권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존엄함을 제도적 환경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러나 인권을 개발한 18세기~19세기 유럽의 사상가들은 동시대에 다른 대륙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인종 말살, 도륙 등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연스러운 인류문명으로 여겼다. 결국 인권은 여전히 고치고 개량해야 할 여지가 다분한 개념이다. 인권과 야만은 정반대의 개념이지만, 유럽에서 발달한 인권 개념은 현실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전 세계적으로 야만스럽게 확장하던 동시대에 발명하고 개량해 나간 것이었기에, 여전히 숨어있는 결함이 많은 개념이기에 그렇다. 또한 20세기에 인권은 다양한 개념의 권리를 포섭하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개별적인 분야에서 개인의 권리는 (낙태권의 경우처럼) 제약당하거나 외면당하고 있다. 



2020년 5월 2일(토) 저녁 6시 10분 

2015년 6월 4일(목) 읽고 정리한 노트에 대한 블로그 정리를 끝냄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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