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에게 실력있는 의사를 물려주고자 한다면


의학은 마치 '진흙탕'같은 불완전 과학이다



오늘 경향신문에서 궤변같은 칼럼을 하나 읽었다. 칼럼의 맥락은 산모의 인격을 침해한 사건을 중립적으로 논쟁화하고 있다. 인격적 상황을 사물화하고 있고,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칼럼의 필자는 의학교육 교수이다. 


관련된 사건은 모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벌어진 일이다. 출산을 목전에 둔 산모는 굳이 여의사를 선택했다. 그것은 남자 의사에게 자신의 몸이 드러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굳이 여의사를 선택'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 남학생들이 수련을 목적으로 그 현장에 입장했다. 그것이 사회적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그것은 논쟁거리가 아니라 사과해야 할 문제이다. 병원이 먼저 사과했는지 안했는지가 더 중요하고, 산모에게 생겼을 또 다른 질병가능성을 더 강조하는 게 옳다. 게다가 이 사건에서는 무엇보다도 정보의 불공정성이 존재한다. '굳이 여의사를 선택하는 순간'에 향후 이렇게 더 수치심을 크게 자극할 만한 사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그걸 알았다면 임상실습이 존재하는 대학 산부인과를 출산의 장소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칼럼 필자는 그것을 찬반 양론처럼 주장하고 있다. 위의 SBS 영상에 등장하는 산부인과 의사도 '대학병원'의 가장 큰 목적이 '학생 교육'이 있다고 강조한다. '남자 의대생이 산모의 출산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논란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관점을 비틀어놓으면서, 본질적은 문제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SBS 영상에 등장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입장이나 경향신문 칼럼의 의학교수가 펼치는 당당한 소감 발표는 의사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에서 비롯된 '당당함'은 아닐까 생각된다. 


칼럼에서는 철저하게 한쪽 편을 들지만, 맥락으로는 중립적인 논쟁으로 포장하면서, 그것이 공공의 기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훈계도 잊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그 자격에 값하는 의사를 가진다.'는 게 그것이다. 수준높은 의료혜택이 '의사의 자격'보다는 '국민의 자격'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은근슬쩍 강조하고 있다.



[공감]실력 있는 의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경향신문  2016.6.1(수) 31면 오피니언면



이런 논쟁의 내용이 모두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그 논쟁의 출발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굳이 여의사를 선택한 산모의 분만 현장에 남학생들이 들어온 그 사건을 통해 산모가 겪었을 고통을 더 많이 쳐다보는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칼럼에서 말하는 것처럼 '후손들에게 실력있는 의사를 물려주고자 한다면'이라는 식의 개발논리의 맥락에 닿아있는 방식이 바로 오늘날 우리사회가 너무도 자주 목격하는 참혹한 사건사고와 일상화된 애도의 모습들에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실력있는 의사를 물려주고자 한다면'이란 말에는 읽기가 참으로 불편한 여러가지 함의가 숨어있기까지 한다. 


아무튼 인권을 무참하게 유린당했을 산모를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정신적 상처, 수치, 분노, 플래시백처럼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킬 회상들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산모의 상처에 대해 병원은 과연 무엇이 그리도 당당한 것일까? '남자 의사'가 들어올 가능성을 꼼꼼히 챙겨 물었다는 산모에게 '남자 의사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될 실력있는 의사가 될지도 모를 '예비 남자 의사들'이 들어올 가능성은 왜 말하지 않았나? 정작 자신의 숭고한 후손을 출산하는 개인의 역사적 현장이 임상실습의 현장으로 바뀐다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점과 굳이 여의사를 선택하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사전고지하지 않은 것은 의학윤리적 측면에서 다룬다면, 우리는 훨씬 더 의학윤리적인 수준이 높은 의사를 우리들의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의 제목은 <실력 있는 의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이다. 맥락은 맞다. 민주적 권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으면 의심하지 않은 죄까지도 얻는 세상인 것 같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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