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14(토)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제1독서 창세기 3,9-24
복음말씀 마르코 8,1-10
[요한의 묵상글] 너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부터 24절까지의 핵심은 3장 9절에 나옵니다. 주님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죠. 그리고 '너 어디있느냐'에 대한 궁핍한 인간의 변명이 이어집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처음으로 '남 탓'을 하는 모습의 원형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하느님처럼 될 것이란 말에 눈이 멀고 생각이 뒤틀려서 궁지에 몰린 인간은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무책임한 발언을 내뱉은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 정치인들의 모습을 태초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 탓을 하고, 하와는 뱀 탓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범죄자로 지목된 뱀으로부터 시작하여 하와와 아담에 이르기까지 다시금 역순으로 죄를 벌하시는 판결을 내립니다. 그렇게 인간을 유혹하던 뱀은 평생 배를 땅에 대고 살아야 하는 굴레에 빠지고, 그리고 여자에게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 그리고 자식부양의 괴로움과 남편에 대한 갈망에 굶주려하는 처지로 빠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담과 하와로 비롯되는 인간 세상에 적개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전쟁의 고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낙원에서의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아담과 하와는 힘겨운 노동을 통해서 주님을 경배하는 새로운 패턴의 '인간세상'의 길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전민동성당 주임 방경석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2015년 2월 14일 토요일(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강론 말씀이십니다.
긍정적이고, 하고자 하는 열정이
항상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방경석 알로이시오 신부님
오소서 성령님 (교중. 새로 나게 하소서)
오늘은 성 치릴로와 메토디오 축일입니다. 치릴로하면 누가 생각나죠? (치릴로) 보좌신부님은 6월달이 축일입니다. 물론 치릴로하면 당연히 박(지순) 신부님이 생각나죠.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허창석 신부님이 치릴로였어요. 이 분이 6.25 때 북한 군으로부터 수난 많이 받으셨고, 라틴어 가르치셨어요. 예수님도 당신한테 와서 라틴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라틴어 배우던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라틴어부터 배우시도록 한다는 거죠.
그런 만큼 라틴어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대단하셨고, 전설과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 열정과 더불어 신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깊으셨어요. 라틴어 시간에 질문을 하셨다가 만일에 신학생이 답변을 못하면 화를 엄청 내시죠. 그런데 일반 학생이 틀리면 그냥 넘어가요. 보통 수녀님들 경우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라고 말씀하시지만, 신학생이라면, "너어~!"라고.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많은 교수님들께 배우죠. 다 특색있고, 특히 학점 안주거나 그러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허창석 신부님의 열정적인 모습은 아름다웠던 거 같아요. 하나라도 더 신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고, 당신의 후배인 신학생들이 좋은 사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치릴로와 메토디오 여기서도 그들은 슬라브 족에게 파견되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대부분 성인들은 그 일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헌신적이었고, 정말 온 힘을 다 바쳐서 일들을 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 한조각이라도 먹여서 보내주기를 바라셨고,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서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는가 질문을 던지죠. 예수님은 계속 먹이고 싶은 마음, 제자들은 불가능하다는 마음, 이것이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의 승리이죠. 예수님이니까 당연히 그러시겠지 하면 할말 없지만,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그들을 구태여 다 먹일 법적 의무는 없다는 것이죠.
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뜻이, 할 수 없다는 제자들의 모습과는 반대로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예를 들은 허창석 치릴로 신부님은 자신의 삶에 열정적이셨던 그런 분이십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사제다운 사제였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예수님처럼 이런 모습들. 긍정적이고, 하고자 하는 열정 이런 것이 항상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가정안에서 공동체안에서, 사회 안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또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죠. 누군가는 이야기하겠죠.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광야에서 어디서 빵을 구해서 저들을 먹일 수 있겠느냐 이야기하겠죠. 그러나 예수님은 모두가 다, 제자들은 기껏해야 몇 명 안될 거니까, 그들을 자리에 앉히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셨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배불리 또 충분히 먹었고, 또 남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베풀고 가신 뜻을 통해서 우리도 본받고,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오늘의 치릴로와 매토디오 성인처럼, 슬라브 민족에게는 그분들 흔적이 많이 남고, 하느님을 찬미하듯이, 우리가 지난 자리에서도 그렇게 꽃이 피웠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2015. 2. 15(토) 오전 9:30 미사
@천주교 대전교구 전민동성당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강론
위 내용은 신부님 강론 말씀에 대해서 필자의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문맥이나 의미가 정확하지 않은 곳도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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