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 않은 사제의 삶

전민동성당 부임 24일에 맞이한 사제수품 24주년의 단상


오소서 성령님 (교중. 새로 나게 하소서)


오늘은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신지 5년이 되는 날입니다. 2월 16일이죠. 같은 해에 제 아버님도 돌아가셔서 올해가 5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본당에 온 지가 24일이 되었는데, 한 5년은 된 거 같아요. 


오늘 제1독서는 집회서 말씀입니다. 집회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혜를 주는 내용입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유난히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2독서에서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우두머리들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그런 말씀이시죠.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은 십계명에 관한 종합적 말씀입니다. 


모든 율법과 계명이 오히려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그중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리고 더 눈에 들어오는 말씀은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능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2014년 2월 16일 교중미사에서 사제 수품 24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교우들은 꽃다발과 축가로 24주년을 축하했다.



제가 여기에 온 지 24일이 됩니다. 앞으로 며칠이 남았는지, 5년 빼면 계산이 나오겠죠. 이곳에 오고 나서 24일은 짧은 시간이지만, 제 생각이나 제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민동 발령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줬어요. 뭘 축하해줬을까요? 


큰 본당 가게 되었구나! 부자본당이다! 신자가 많~~다! 똑똑한 사람 많다. 디~~게 많다. 아주 많다가 아니라 디~~게 많다더라! 그리고 이제 빚 갚을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그동안 성당 짓고 빚 갚고 그런 거 이제는 안 해도 되는 구나. 신부님 이제 춥게 살지 않아도 되겠네요.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 축하 받았을 만큼, 모든 것이 다른 곳에 비해 넉넉하고 좋았다. 그런데 24일 지나고 지금 제 자신을 돌아보니,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묻겠죠. 신부님 불편하셨나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요! 그런데 불편하지 않은 삶이 사제생활에는 도움이 안 되더라 하는 생각인 겁니다. 일단 에너지 걱정을 이전 성당까지는 했죠. 또 성당 지어야 하고, 그런데 여기 와서는 그런 걱정 전혀 안하고 사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죠. 에너지 절약해야죠. 그런데 제 머리 속에서는 그 생각 없어진 거에요. 난방장치가 켜져 있던지 말던지, 온풍기 온도가 30도까지 올라가 있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이전에 성당에서는 새벽미사 나갈 때, 얼마나 추울까, 내복 입고 나갈까? 그런데 여기 와서는 그런 걱정 자체가 필요없어요. 항상 따뜻하니까. 


(교중을 향해) 여러분 중에 내복입고 성당 오시는 분? (몇 몇이 손을 드니) 손을 드는 사람도 있지만, 벗겨봐야 알겠지만 (교중 웃음)... 그런 감각 자체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또 신자가 많으니까 일도 많고, 그래서 꼭 좋은 곳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 


그동안 환경문제, 정치적 부정에 관한 문제를 생각하고 살았는데, 여기 와서 사니, 그게 남의 나라 일이에요. 그래서 사제로서 살아가는 것은 이런 큰 성당보다는 작은 성당이 더 좋을 것 같다. 여기 와서 되게 좋아할 줄 알았죠. 저와 여러분이 잘 안 맞나? 


계명이란 갈 길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법규와 계명은 다른 것이죠. 교통법규는 잘 지키는 거죠. 


여러분 (성당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정문 나가면서 좌회전 안하는 거 잘 지키죠? 고해성사 때 그런 얘기 안하는 거 보면 신기해요. 제가 가끔 보거든요. 좌회전하는 거. 그런데 법규는 안 걸리면 됩니다. 죄책감을 느끼나요? 오늘 좌회전 했는데 밥 맛이 없어. 그런 생각 하나요? 


계명은 어때요? 본당 신부로부터 딱지가 안 날라오면 상관이 없는 것인가요?


계명이란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지키면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저희에게 사제로 살아가도록 계명을 주시고 여러분은 수도자로 평신도로 살아가도록 계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 불러놓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직접 대상은 제자들이니까, 제자들 후계자인 주교님이 일차적 대상자가 될 것이고요. 주교님 따르는 사제들이 이차적인 대상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끝까지 읽어보면,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래서 잘 읽어보면, 제 1독서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다. 충실하게만 살면 ....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너희는 의로움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보다도 더 커야 한다는 것. 더 의로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2014년 2월 16일 교중미사에서 사제 수품 24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교우들은 꽃다발과 축가로 24주년을 축하했다.



제가 이렇게 (전민동) 본당에 와서 살면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예리해야 하고, 성직자의 고유한 길을 가는데, 주변에 여러 여건들이 바뀌면서, 이러한 의로움이라든가, 내가 선택해서 살아가야 하는 올바른 길에 대해서 멀어진다고 말씀드렸는데, 앞으로 그런 차원에서 본당신부로 다른 데를 갈거냐? 가진 않죠. 주교님이 여기 살라고 했으니,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여러분은 더 신앙인다운 삶을 살아야 겠다.


신앙인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편안하다. 오늘 잘 살았다. 딱 일어나서, 세상과 별 문제 없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딘가 신앙적 문제가 있는 것이고, 신앙의 세상과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도 불편함 없이 하루를 살았다면, 한번 내 영혼은 건강한가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 세상의 통치자들 같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면 우리 삶이 편안한 듯 하지만, 신앙인의 삶으로서는 많이 부족하다. 저도 다시 그래서 마음을 잡고, 사제다운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고, 여러분도 신앙인다운 삶을 사셔야 하겠다. 기준은 뭐냐. 율법이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최우선으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은 명찰을 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나를 남에게 알리고, 남을 알고, 또 이 시대 고통받고, 어려운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오늘 주보 보면, 물고기 떼죽음 나왔죠. 환경문제 심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있는데, 그런 것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삶의 자리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정말 오늘 미사를 드리며, 신앙인다운 생각. 주님이게 맞는 삶. 저는 또 성직자로 날카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신자들과 함께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묵상합시다.


2014.2.16.(연중 제6주일) 오전10:30 교중미사.

전민동성당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강론말씀 끝.


당일 신부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 “여러분!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자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12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향년 87세. 세례명은 스테파노.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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