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전민동성당 토요일 오전 9시30분 미사 강론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을 이뤄주시는 주님
병자들을 고친 것이 예수님 일상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아픈 사람들이 많겠지만, 제가 어렸을 적에도 여러가지로 아픈 사람들이 많았었요. 아픈 기간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집집마다 아픈 사람들은 조금씩 있었던 거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와서 또는 말씀으로서 병을 고쳐주길 바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시몬의 장모, 베드로의 장모처럼 예수님의 방문을 통해서 병고침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는 예수님께서 다가와서 고쳐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치유를 통해서 자신이 지녔던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제 1독서(창세기 18,1-15)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그런 예언을 아브라함은 듣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라는 속으로 웃었는데) 사라는 끝까지 웃지 않았다고 말하고, 주님께서는 "아니다, 넌 웃었다"리고 하면서 오늘 말씀을 끝맺습니다. 당연히 사라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그러한 말씀이 그리 신뢰가 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어쩌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게 아니었을까? 나이가 그렇게 들 때까지 (아브라함 100세, 사라 90세에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사라가 아이를 못얻었었다는 건 큰 아픔이었겠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라에게는 아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치유를 통해서) 병에서 낫습니다. 우리가 아프다가 나아서 자유로워졌을 때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아플 때는 그 아픔에 온전히 끌려다니다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되죠.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사라에게 아들이 주어진 것처럼, 또 백인대장 종의 병이 다 나은 것처럼, 또 많은 이들이 고침을 받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희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신 것처럼, 모두가 다 새로운 삶을 살았다는 건 구원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하느님,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을 이뤄주신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을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정의와 그것으로 인한 평화와 행복을 모든 이에게 나눠주야겠다는 생각입니다.
2015-6-27 토요일 오전 9:30미사.
전민동성당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강론말씀 끝.
당일 신부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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