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2일(주일) 밤 9시 미사
연중 제15주일 강론
예언자는 동시대인들에게 할 예언이 있다
이 시대에 우리를 불러주셨다면, 우리는 분명 이 시대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늘 성경말씀은 모두 부르심과 파견에 관한 말씀입니다. (1독서, 아모 7,12-15) 예언자 아모스가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또 (2독서 에페 1,3-14)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 안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말씀(마르코 6,7-13)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트코아의 목양업자 아모스가 본 환시
아모스 예언서는 구약에 나오는 소예언서입니다. 9장까지 있는 짧은 예언서죠. 그런데, 그 말씀을 읽어보면, (1장 3절) '다마스쿠스를 거슬러'라는 말로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꽤 괜찮은 도시들, 안정된 도시들, 그런 도시들에 대해서, 멸망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들을 도시마다 다 이야기합니다.
아마츠야의 문전박대
그런데 오늘 말씀 7장(12절~15절)에서는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자기 왕(예로보암)에게 '아모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모스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걸 왕에게 보고하고 나서 아마츠야는 아모스에게 가서 '꺼져라!'라고 말하죠. 아모스에게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7,12-13 중)라고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불편하다는 이야기죠. 너가 하는 말들이 다 불편하다 이런 말이죠. 그러자 아모스가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하느님께 잡혀서 오게 되었다. 나는 예언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죠. 그 말씀에 대해서 여러분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을 하신 거에요.
예언자들은 불편하다
아모스는 불편한 예언자였다 이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반대도 많이 받았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 불편해했습니다. 열두 제자는 파견 때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어요. 여러분 여행갈 때 여권부터 빼놓고, 돈부터 빼놓고, '유럽 여행 가야지!' 하나요? 다 챙겨가죠. 한 짐입니다. 한 짐을 가져가서, 나중에 외서 보면 가지고만 다닌 짐도 많아요. 그런게 여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꼭 필요한 것마저도 다 빼라고 하시고 못가져가게 하십니다.
듣는 이들도 불편하다
이처럼 하느님께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은 본인들도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들로 인해서 그 말을 듣는 이들도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정상적이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언자직, 왕직, 그리고 사제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일반 사제직'이라고 말하죠. 아모스 예언자처럼,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처럼, 그리고 열두제자들처럼 우리는 다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불편한 것이 예언자의 직무
우리는 무엇인가 외쳐야 합니다. 예언자니까요. 아모스 예언서를 보면,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5,24) 이런 말이 나오는데, 시대 자체가 암흑의 세계입니다. 그 당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심한 말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 말씀들을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당시 세상에서 용기있게 외치는 예언자로서의 직무, 그것을 아모스 예언서를 통해서 들을 수 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하느님의 뜻에 100% 맞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느님의 뜻에 100% 맞죠. 그러니까 우리는 조용히 주일날 미사를 지내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졌죠? 그럴까요? 우리가 더 이상 외칠 예언이 없을까요? 없다면 우리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받은 예언의 사명 자체를 모르거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시킨 일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상황판단을 못하고 있거나... 예언자는 항상 그 시대인들에게 할 예언이 있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를 불러주셨다면, 우리는 분명 이 시대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받아드리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그 증거로 발 밑의 먼지를 털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르코 6,11)
발을 털면 콧방귀를 끼었을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가 스캔들이었겠죠? 예언자가 무슨 말하고 떠나갈 때, 발을 털며, 나는 당신들 일에 책임없다 그러면 콧방귀를 끼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각하게 생각을 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발을 털어버리면 어떻게 할까요? 화봉산 내려오는 길에 벌 먼지 터는 장비가 있어요. 그러면 뭐라고 할끼요? 아마도 깨끗한 사람이라고 할 겁니다.
생각은 나중에 세팅된다
먼저 우리는 하느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심서적읽기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며, 제 강론도 이렇게 듣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서 무엇인가 행동이 나와야 하겠죠. 우리는 (얼마전 초청 강연으로 성당에 오셨던)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는 건 아니다! 생각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중에 세팅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생각을 가지고 태어납니끼? 아니죠. 그 사회의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죠.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교육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성경 말씀에 관심을 갖고 이 시대를 관통하는 교황님의 여러가지 가르침에 관심을 갖고, 교회가 시대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신앙인다운 교육이란
여러분이 학교를 다닐때, 또 직장에 들어갈 때, 공부를 많이 하시죠? 여러분 어디 전문적인 직장에 들어가실 때, 구영탄 만화를 보시나요? 아니죠. 만화의 유혹이 있더라도 덮어두죠. 그 분야의 전문서적을 읽죠? 저도 이 신부가 되려고 제 분야의 책을 읽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신앙인다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정이나, 연수나, 책을 통해서나 여러 신부님 강의를 통해서나 우린 그런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에 대해서 항상 신뢰심을 가지고, 거기에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외쳐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날 아모스를 불러주신 것이 아니고, 열두 제자를 불러주신 게 아니고, 바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을 파견하셨습니다.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말을 듣고 따르도록 여러분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외쳐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요.
가톨릭 방송을 봐야 하는 이유
교횡님이 다녀가신지 1년이 다 되어가죠. 한 때는 주교님이 늘 말씀하시죠. "내가 로마에 갔는데~~~~~" 그 말씀하시면 한 30분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님) 그런데 요즘은 교횡님에 괸힌 밀씀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시대입니디. 작년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서 교황님에 대해서 많이 접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매스컴은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색깔이 있어요. 사주가 누구냐에 따라서 입맛에 맞는 것만 내놓는다는 겁니다. 교황님에 대해서 모든 방송채널이 말했을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그들 입맛에 맞는 부분들만 내놓았을 것이고, 불편한 것들은 빼고 자기들이 좋은 것들만 내놓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가톨릭 방송을 봐야 합니다.
예민한 촉을 가진 신앙인이 되어야
저는 다음달 신심서적을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교황님 관련 서적을 한번 해봐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방송에서 대충 넘어간 것들 중에 더 중요힌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예민한 촉을 가져야 하는 게 신앙인들입니다. 여러분이 좀 더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멋지게 살기 위해서라도 이 시대 예언가로서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못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만 알려주시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
당일 신부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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