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수) 저녁 7:30 미사

성 보나벤투라 주교학자 기념일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오늘의 복음(마태오 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지혜롭다는 자와 지혜로운 자는 다르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께 아이처럼 의지해야



여러분 다 지혜로우시죠? 어리석은 분들 계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셨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 그리고 철부지들, 바로 어린이들 같은 이들, 철이 지난 지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바로 철부지들입니다. 저도 철이 지나는 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철부지는 어린이다움, 아이다움입니다. 하느님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죠. 아버지다움. 그래서 아이다움은 바로 이 아버지다움과 비로 직결됩니다. 뉴스를 보니까, 미국에서는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외출을 하거나 잠깐이라도 혼자 두면 구속이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에게는 부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부모에게만 의지해서 살아갈 수 밖에는 없는 존재이기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는 이 모든 것이 부모님이나 아버지에게 결부되어 있으며,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에 법으로 인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께 어린이처럼 의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하시는 '지혜롭다는 자'와 '슬기롭다는 자'는 '지혜로운 자'와 '슬기로운 자'와는 다른 것입니다. 지혜롭다, 슬기롭다는 것은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입니다. 바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입니다.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말하면서 거기에 갇혀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 괸점에서 보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지혜서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지혜서, 역사서, 예언서 같은 장르가 있잖아요. 그 지혜서에서 말한 지혜는 바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전달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겁니다. 내 지식이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지혜서의) 주된 내용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역사하신,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게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인지를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게 바로 지혜서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는 겁니다.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의지하는 지혜를 깨우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려면 어린이처럼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고 나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내 안에 다른 것을 채우고 있으면 하느님을 채울 수 없습니다. 내 안에 다른 게 많이 있으면 하느님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다른 게 많이 있어도 하느님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안의 다른 것들이 하느님을 담는 걸 방해하고, 다른 것으로 채우라고 유혹을 합니다. 우리가 배가 부르면 더 먹을 수 없고, 더 먹고 싶지 않듯이, 내 안에 다른것, 욕심, 이기심, 권력욕, 재산욕 등을 담고 있으면, 하느님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담고 싶지 않은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하느님을 크게 담을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15-7-15 (수) 저녁 7시30분 미사.
전민동성당 박지순 치릴로 보좌신부님 강론말씀 끝.

당일 신부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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