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

(2012. 12. 23. 만수리 공소 : 윤종관 신부)

The Lord is at hand

그러니 변해야지!





오늘은 대림절 제4주일이면서 주님 성탄의 거룩한 밤을 맞이하기 하루 전날입니다. 내일 밤에 성탄축제의 전례를 거행하게 됩니다. 성탄축제를 목전에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전례는 이렇게 다가온 주님의 강생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미 가까이 오셨으니 어서 경배하세하고 우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가까이 오셨다는 메시지를 영어 기도서에서는 “The Lord is at hand”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주님께서 우리의 손닿는 곳에 와 계신다는 말이겠지요.


이러한 주님의 오심에 대하여 우리는 오늘의 복음 내용으로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루카 1, 3945 참조).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엘리사벳이 큰 소리로 외친 인사말이 곧 오늘 우리 또한 감격적으로 고백할 깨달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바치는 기도인 성모송이 곧 그 내용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모든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이시라면서 그분의 태중에 계신 주님이 더욱 복되시다는 칭송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엘리사벳은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루가 1, 44)하고 실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엘리사벳의 실토가 곧 우리 자신들의 고백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에서부터 주님 오심에 대한 체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가 기뻐 뛰놀듯이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에 들어오시는 주님을 만난 기쁨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그 깊은 내면은 아주 조촐하고 작은 마음인 것입니다.


성탄절이 오면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흔히 외형적 행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우리 마음 안에서부터 일어나는 성탄절 사건이 있어야, 오시는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불우이웃을 도우러 밖으로 나간다든가 교회 공동체의 성대한 행사와 잔치를 벌일 수 있습니다만, 그런 것보다 더 먼저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야 할 일인 것입니다. 이미 마리아의 뱃속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마리아로 하여금 발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 동네로 향하게 하셨듯이(루가 1, 39 참조), 또한 그 예수 아기는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세례자 요한 아기를 뛰놀게 하여 엘리사벳의 감격적 체험고백을 표출케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두 영혼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 깨닫는 공감을 합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라는 두 여인의 영혼이 공감한 감격은 신시대와 구시대가 하나로 만난 감격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으로 부끄럽게 살아온 늙은 여인 엘리사벳이 뱃속에 품은 아기, 그리고 남자와 살아보지 않은 처녀 마리아가 뱃속에 가진 아기, 이 두 아기가 만난 감격의 뉴스를 오늘 루카복음서가 전하고 있습니다.


이 두 아기의 감격적 만남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저는 문득 며칠 전의 우리나라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그 결과를 연상합니다. 여태껏 지나온 과거의 우리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지겨워해 하던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면서 투표를 했지요. 그리고 그 결과를 보면서 51%의 사람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한편 48%의 사람들이 패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식으로 국민 중에 반절 조금 넘는 승리자 무리와 반절 조금 못 미치는 패배자 무리로 갈라놓는 해석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지요. 51%48%로부터 책임을 전해 받았고, 48%51%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게 되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선거 결과를 두고 함께 만든 결과라면서 축하와 위로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여, 졌다고 생각되는 48%가 이겼다고 생각되는 51%를 향하여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으니 격려를 보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겼다고 생각되는 51%가 졌다고 생각되는 48%를 향하여 도와달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곧 진정한 새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 축구 경기처럼 두 팀으로 갈라져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 위한 시합을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역할 분담을 하기 위하여 서로의 장끼 시합을 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른 발과 왼 발의 역할 점검을 해볼 필요성 때문에 선거라는 시험과정을 치렀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른 발이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가속 페달을 밟기만 하면 자동차는 사고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오른 발이 필요에 따라 가속 페달에서 적절하게 브레이크 페달로 옮겨 가 밟을 줄 알아야 하고 그럴 때마다 왼 발이 클러치 페달을 밟아주면서 동력 조절을 해주어야 자동차는 정상 운행을 할 것입니다.


그렇듯 우리 사회는 우익이 있으면 좌익도 있어야 정상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익 사람들이 좌익을 일컬어 무조건 빨갱이라는 등의 욕을 해가면서 편 가르기를 하고, 표로 이겼다 해서 적게 나온 표를 무시한다면, “잘 살아보세를 표방하면서 함께라는 말을 빼버리고 내 편만 잘 살아보세하는 놀부 세상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도 되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사회는 막히지 않고 흐르는 강에서 물고기가 싱싱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살맛나는 국가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자마자 맞이하는 이번 성탄절을 즈음하여 광주 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님께서는 성탄 메시지에 박근혜 당선자는 48% 반대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난 자리에서 그 두 여인의 뱃속에 든 두 아기의 서로 알아봄을 감격적으로 전하는 뉴스와 연관 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고 기뻐하는 뉴스를 창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두 여인의 뱃속에 든 두 아기처럼 선거가 보여준 라는 두 가지 입장이 서로를 진정 알아볼 수 있는 입장으로 승화되는 경과를 창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두 아기란 그 두 여인이 품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렇듯 우리 사회가 보인 두 가지 입장은 곧 서로 만나 두 마음이 함께 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쁨을 오늘 두 여인에게서처럼 체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뱃속에 든 두 아기가 만나듯이 서로의 두 마음이 만난 기쁨인 것입니다. 그 두 여인의 모습은 곧, 주님 오심을 체험하면서 변화되는 우리 자신들의 영혼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 어떤 엉뚱한 곳에 계시는 주님이라기보다 우리 자신 안에 주님을 모시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듯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으로 이미 우리는 각자들의 영혼이 차지할 수 있는 행복의 최고치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왜냐면, 마리아의 모습으로 표상되는 교회 안에 주님이 계심을 우리는 엘리사벳처럼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엘리사벳처럼 우리 각자의 영혼은 교회를 통하여 이미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가 듣게 된 칭송을 우리 또한 서로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셨으니, 당신은 행복하십니다.”(루카 1, 45)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듯 진정 복된 여인 마리아는 그래서 그 행복에 대한 화답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오늘 복음 내용에 뒤따라 수록된 그 유명한 마리아의 노래’(루카 1, 4655)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처녀 마리아 개인의 노래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주님을 만나서 새 삶의 행복을 얻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노래교회의 노래인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마리아처럼 정녕 행복한 사람들로서 그 마리아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성탄절에 우리는 그런 행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듯 우리가 복된 까닭은 주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해서 이미 주님께서 우리 영혼을 차지하시고 우리 삶을 당신의 것으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의 참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삶으로 얻는 기쁨보다 더 넘치는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얻는 기쁨으로 다가온 성탄절에 우리 서로를 축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축 성탄!” 또는 “Merry Christmas!”라고 축하하는 내일 밤의 우리 서로 함께 하는 인사는 그래서 우리 각자의 영혼에게 보내는 기쁨의 확인인 것입니다.


그런 기쁨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 안에서 눈에 띄는 티끌까지 일일이 씻어내는 참회의 고해성사로 정결한 순백의 영혼을 회복했습니다. 그러한 순백의 영혼이 실제의 White Christmas를 우리 내면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럴 준비를 해온 대림절을 마치게 될 내일 밤 주님과의 고요한 만남을 체험하러 세상의 번잡함을 피하여 동네 밖 외양간 같은 오로지 주님만이 계시는 곳, 즉 우리 자신 마음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 마음의 외양간을 덮을 밤하늘은 그래서 소리 없는 합창 같은 찬미가인 듯 별들의 초롱초롱한 빛으로 반짝일 것입니다. 그 때 하얀 영혼 즉, 하느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평화가 있으리라고 저 하늘 높은 곳의 영광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합창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얀 마음의 포대기로 내일 밤 강생하실 우리 주님 아기 예수를 감싸 맞을 준비를 해야겠지요!


그 아기 예수 같이 욕심 없이 가난한 마음의 우리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탄 축복을 나눌 채비로 어서 하얀 우리 마음의 보자기를 깔아 놓을 말구유를 찾읍시다. 고해성사로 깨끗해진 우리 마음이라면, 아직 불우함의 어둠 속에 있는 이웃을 향한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작은 구유처럼 조촐한 우리 마음이어야 합니다. 동네 밖 마구간인 듯 가난한 이웃집에, 그리고 선거 결과로 우울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또 노력을 해도 해도 성공을 마주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노동자 농민들의 마음에, 베들레헴 밤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천사들의 기쁜 노래 소리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선행 소식과 정치사회 지도층의 참된 변화의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하는 성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가 성탄절에 예수 아기 같은 작은 모습으로 변화 된 모습을 이웃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내일까지 남은 대림절의 하루만이라도 그 작은 모습의 조촐한 우리 마음이 되어봅시다.


이 글의 출처는 하부내포 공식카페입니다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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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시흥 캠퍼스 생길까?


서울대학교는 대학 발전을 위한 중요한 중장기 프로젝트로 추진된 시흥 국제캠퍼스 조성과제에 대한 추진경과와 향후계획을 2012년 7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이 대학의 국제캠퍼스 조성사업은 2007년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2007-2025)’에서 제시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5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관련 업무를 추진해 왔는데, 그 추진 경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07 : 국제캠퍼스 위원회 구성

-2009. 6. : 서울대-시흥시 MOU 체결

-2010. 2. : 서울대-경기도-시흥시 MOU 체결

-2011. 9. : 시흥 국제캠퍼스 마스터플랜 수립

-2011. 12. : 서울대-시흥시 기본합의서 체결

-2012. 1-6. : 공동추진단 운영


군자배곧신도시의 부동산 열기로 이어지나


시흥 국제캠퍼스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군자배곧신도시 내에 약 20만평 규모로 조성된다. 이러한 조성계획과 관련해 서울대는 2011년 하반기에 캠퍼스조성 종합계획(Master Plan)을 수립했으며, 이후 시흥시와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군자배곧신도시에 국제캠퍼스를 조성키로 협의 했다고 밝혔다.


시흥시 배곧신도시는 약 149만평 부지에 21,541세대(약 56,000명) 수용을 목표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조성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이 중 20만평에 서울대 시흥캠퍼스가 입주한다는 계획이 있다. 



학생 4천명을 수용하는 기숙사가 생긴다


시흥 국제캠퍼스에는 미래형 교육기본시설, 글로벌 고급인재의 정주시설, 의료관련시설, 바이오 클러스터 연구시설, 산학협력시설,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을 위한 복합시설들이 조성될 예정이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4,000여명을 수용하는 학생 기숙시설, 600여 세대를 수용하는 교직원 아파트, 500병상 이상의 병원과 치과병원으로 구성된 메디컬센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부속학교, 컨벤션센터, 문화 및 스포츠클러스터, 산학협력 클러스터 등 지역과 함께 상생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구상되고 있다고 한다. 


먼저 기숙사와 교육시설, 병원이 생긴다는데


이와 같은 캠퍼스 조성계획은 첫번째 단계로 기숙사를 중심으로 한 핵심 교육 관련시설과 병원 등 의료-바이오 클러스터의 핵심 시설들이 조성되며, 이후 단계에서 교육시설을 심화 확대하고, 산학협력 클러스터의 범위를 확대하며, 기타 지역상생 프로그램을 뒷받침하기 위한 시설들을 확충해나간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무협의는 지속한다고 하지만


한편 이러한 계획에 따라 서울대학교와 시흥시는 2009년 6월, 2010년 2월 각각 상호 양해각서를 교환하였고, 이를 토대로 실무협의를 진행했는데, 2011년 12월 캠퍼스 구축을 위한 기본 사항을 담은 기본합의서를 채택했고, 2012년 상반기 동안 상호 실무협의를 지속하면서, 본 사업에 관심을 가진 잠재적인 시장참여자들과도 깊은 논의를 진행하여 왔다고 보도자료는 밝히고 있다. 


이 밖에도 2012년 7월 현재 토지공급조건 등 캠퍼스 조성을 위한 재정적 조건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의견접근을 이루어 가고 있으며, 조만간 이런 내용들을 중심으로 부속합의서 등 추가적인 합의서를 채택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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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

인간의 삶은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계속된다


- 미국 L.A. Orange County, Korean Martyrs Catholic Center (한인순교자천주교회) -


방윤석 베르나르도

(방경석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형님 신부님)


아버님(방재희 필립보) 장례미사 @ 미국 LA


오늘 이 시간 저의 아버님의 시신을 모시고 비통한 분위기에서 장례미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습니다. 사후의 세계가 어떻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도 없습니다. 죽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죽음은 또한 이 세상에서 쌓아올린 부귀, 명예, 물질과 헤어지는 아픔을 동반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과 맺었던 관계를 끊어야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죽음은 아무도 저항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죽음은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에 죽음 앞에서 인간은 깊은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저도 아버님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을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전에도 위급 상황이 많이 있었던 터이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했었습니다. 죽음은 무엇이고 과연 사람은 왜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런 <죽음>이란 문제를 놓고 많은 옛 성현, 철인들이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 '죽음'을 해결해주신 분


그러나 아무도 해결치 못했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아보였습니다. 그런데 단 한 분 이런 사람의 인생과 죽음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 주신 분이 계셨으니 그 분은 2.000년 전에 유대아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일컫는 분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삶은 죽음이란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과 같이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계속된다는 것, 내세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셨으며 당신 자신이 그 세계에서 이 세상에 파견되어 왔음을 설교하시고 몸소 당신의 몸으로 우리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명의 나라


그 세계는 현재 우리의 이승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 즉 인생 칠팔십으로 끝나버리는 유한한 삶이 아니오, 영원하고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명과 그 생명의 나라이며, 그 주인은 <하느님>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도 그분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그 나라에 입국할 수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이를 "복된 소리, 기쁜 소식"이라 하여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말씀을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 하여 글로 적은 것이 곧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생명에 대해 몸소 자신을 부활시키심으로써 우리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시기 전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시고 추위도 느끼셨으며 피땀이 흐르는 고민을 하셨으며 참을 수 없는 모욕도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시관으로 인해 몸에 상처가 나는 고통도 당하셨습니다. 


너희도 나처럼 될 것이라


결국 죽으시기까지 이렇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죽으셨다가 완전하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의 새 생명은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였으며 문이 닫힌 곳으로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들어오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나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죽음 후의 새로운 생명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실제로 죽었던 라자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차례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나라를 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저희 아버님께서도 이런 사정을 인정하고 굳게 믿으셨습니다. 열심하신 부모님에게서 태중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출생 후 즉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를 받으셨으며, 견진성사로 신앙을 굳게 하시고 일생동안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초자연적인 양식을 계속 모셨습니다. 종부성사와 병자 영성체로 고통 중에서도 힘과 용기를 얻으셨으며 지난 월요일 새벽에 선종하셨습니다. 저의 아버님께서는 자녀들에게 가장 귀중한 유산을 물려주고 가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입니다. 


8남매를 키우시며 기도의 모범 보여줘


어려서부터 저희 8남매를 키우시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과, 만과, 묵주신공을 바치심으로써 저희에게 기도의 모범이 되어주셨습니다. 순교자의 후손임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저희는 5남 3매 중 두 아들이 대전교구 사제가 되었습니다. 동생 신부(방경석 알로이시오)는 제가 주임으로 있는 대전 정림동 성당에 빈소를 차리고 한국을 담당케 했고 저와 고모 수녀님과 형님만 서둘러 이곳에 왔습니다. 





지난 목요일 오후 3시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님과 총대리 김종수 주교님이 사제단과 제 동생 신부와 함께 많은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미사를 지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이시던 아버님


저희 아버님께서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계시면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영세를 시키셨고, 밤마다 요일별로 자전거를 타고 동네마다 다니시면서 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처럼 전교에 모범을 보이신 분이었습니다. 이곳 미국에 오셔서도 노인분들을 상대로 전교활동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툥 사고난 후에도 불편하신 몸으로 한인경로당을 다니시면서 전교하시고 기력이 쇠진하셔서 거동을 못하실 때까지 전교에 힘쓰셨습니다. 제가 아버님만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져오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또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노력하셨습니다. 끝까지 세속의 세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시다가 정말 장하게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가족들을 신앙인으로 만드시고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가셨습니다. 이런 신앙의 유훈을 저희 자녀들은 깊이깊이 새길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조객 여러분! 특히 신자아닌 여러분, 죽음이 죽음이 아니오,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임을 여러분들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서 말하는 저나 여러분들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운명입니다. 죽음은 흥정이나 타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싫어도, 괴로워도, 몸부림쳐도 죽어야 합니다. 오늘은 고인 차례지만 내일은 우리의 차례입니다. 대전 산내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공원묘원 입구에 이런 비문이 있습니다.


오늘은 내 차례요, 내일은 네 차례다. 

나도 너와 같았으니 너도 나와 같으리라.


이왕이면 죽음 후의 새 생명을 여러분들도 하느님 안에서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이제부터 저희가 챙겨야 할 것은 불사불멸하는 고인과 영원하신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땅에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아버님의 영혼을 하느님께서 빨리 받아 주시도록 기도드리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즐겨하시는 제사인 미사 성제를 자주 지내야 합니다. 또 위령 기도를 많이 바쳐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교우분들이 합심하여 끊임없이 삼일 동안 열심히 위령 기도를 바쳐드린 것입니다. 연도바쳐주신 분들게 깊은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가신 분께 대한 마지막 최대의 효도요, 살아있는 유족들의 본분입니다. 저희도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조객 여러분께서는 고인을 위해 이 시간 열심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해 주시고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들도 나름대로 경건하게 고인을 위해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저의 아버님이 운명하신 후부터 지금까지 크게 배려해 주신 본당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상제례 봉사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앞으로 장지까지 가셔서 수고하실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천사들이여, 성인들이여, 저희 아버님을 위해 빌어주소서. 이 땅에서 살다가신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바오로 정하상과 101위 동료 순교자들이여, 아버님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수호성인이신 사도 성 필립보여, 저희 아버님을 위해 빌어주소서. 방 필립보의 영혼과 세상을 떠난 모든 믿는 이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안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2009.4.3(금) 오전 10:00 장례미사 강론 @미국 LA

방윤석 베르나르도 대전 정림동성당 주임신부


방재희 필립보  1922.4.29~2009.3.30(미국시간). 향년 87세.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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